새벽을 열며(05.07.09)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2005. 7. 9. 오전 8:39:55

글자
2005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기 49,29-32; 50,15-26ㄱ
그 무렵 야곱이 자녀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내 선조들 옆에 묻어 다오. 그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께서 묏자리로 쓰려고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째 사 둔 것이다. 거기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두 분이 묻혀 있고, 이사악과 리브가 두 분도 묻혀 있고, 나도 레아를 거기에다 묻었다.”
야곱은 이렇게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침상에 바로 누워 마지막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선조들 곁으로 갔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쩌면 요셉은 우리가 미워 우리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할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요셉 앞에 나가 빌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말씀을 요셉에게 전하라 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형들이 악의로 한 일이건 어떻게 마음을 잘못 먹고 한 일이건 못할 짓 한 것을 용서해 주어라. 네 아비를 돌보시던 하느님의 종들이 비록 악의에 찬 일을 했지만 용서해 주어라.'” 요셉은 이 말을 들으며 울었다. 형들도 울며 그 앞에 조아렸다. “이제 우리를 종으로 삼아 다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 대신 벌이라도 내릴 듯싶습니까?”하면서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에게 못할 짓을 꾸민 것은 틀림없이 형들이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도리어 그것을 좋게 꾸미시어 오늘날 이렇게 뭇 백성을 살리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형들과 형들의 어린것들을 돌봐 드리리다.” 이렇게 위로하는 요셉의 말을 들으며 그들은 가슴이 터지는 듯하였다.
그 후 아버지의 집안과 함께 이집트에서 살다 보니 요셉의 나이 백십 세가 되었다.
그는 에브라임의 후손 삼 대를 보았다. 그리고 므나쎄의 아들 마길이 낳은 아이들도 자기 무릎에 받아 아들 항렬에 들였다.
요셉이 일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을 터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어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올라가게 하실 것이다.”
다시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서약을 시켰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다. 너희는 그때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그리로 올라가거라.” 그리고 요셉은 죽었다.


복음 마태오 10,24-33
그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 해지고 종이 주인만 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주인을 가리켜 베엘제불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 하겠느냐?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단돈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런 참새 한 마리도 너희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보면 민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즉, 저는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그 사람은 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새벽 묵상 글 때문이지요. 새벽 묵상 글을 통해 저의 일상 모습을 다 드러내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새벽 묵상 글을 보시는 분들이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저에 대한 비밀은 한층 더 없어졌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도 있지만, 사실은 좋은 점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 제 자신을 반성할 수가 있으니까요.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어제 저녁, 동네의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은품이 보이는 것입니다(새벽 묵상 글 2005년 6월 27일 자 참조). 커다란 참치 캔 2개를 사면 밀폐용기를 하나 준다는 것이었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치를 많이 먹으니까, 저 큰 것을 사도 다 먹을 수 있을꺼야.’

그리고 장바구니에 넣으려는 순간, 그 참치 캔의 상표가 보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한번 구입해서 먹은 적이 있었던 상표로, 다른 참치 캔에 비해서 맛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밀폐용기 하나 더 주잖아. 더군다나 값도 다른 것에 비해서 싸고…….’

이런 생각까지 미치면서, 그 참치 캔과 밀폐용기 사은품은 저의 장바구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번에 썼던 새벽 묵상 글 생각이 났습니다. 사은품만 좋아하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반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은품에 눈이 멀어서, 별 맛도 없는 그래서 결국은 잘 먹지 않을 것 같은 참치 캔을 사고 있는 제 모습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결국 저는 그 참치 캔과 밀폐용기라는 사은품을 포기하고, 아무 사은품도 없는 참치 캔을 구입했습니다. 갈등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훨씬 잘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새벽 묵상 글을 통한 반성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 세상에는 이런 식의 일장일단(一長一短)이 늘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늘 단점만을 보려고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주님께서 주신 세상에서 힘들어하고 지쳐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부정적인 마음으로 힘들고 지쳐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세상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다고 지치게 한다고.. 두려워해봤자 바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 은총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고통과 시련만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길. 그 길은 이 세상 밖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 안에 함께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못 찾고 있을 뿐이겠지요.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름을 남기자(송 천호의 '마음을 채우는 두레박'에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겨 놓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고아원이나 양로원등에 물건을 기증하고
그 밑에 이름을 새겨놓고,
화환을 갖다놓고
기다란 리본에 이름 석 자를 크게 써놓으며,
각종 비를 세울때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는다.
모두가 위장된 모습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해서 애를 쓰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파상적이고
위선적이고
자신을 욕되게하고
불순물이 끼어있고
불쾌하다.
고인이 되어서도
이름 석자를 영원히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가슴속에 새겨둬야 한다.
이방법은 바로
오직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는
진실한 행동에 의해서만 가능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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