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7.21) -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2005. 7. 21. 오전 8: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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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출애굽기 19,1-2.9-11.16-20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석 달째 되는 초하룻날, 바로 그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이 그곳 산 앞에 진을 친 다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말하는 소리를 이 백성이 듣고 또 너를 길이 믿게 하기 위하여 이제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나타나리라.”
모세가 백성들의 말을 또다시 주님께 아뢰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여라. 옷을 빨고 셋째 날을 맞을 준비를 갖추게 하여라. 셋째 날 주님은 온 백성이 보는 가운데 이 시나이 산에 내리리라.”
셋째 날 아침,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시나이 산 위에 짙은 구름이 덮이며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지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모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만나 보게 하려고 진지에서 데리고 나와 산기슭에 세웠다.
시나이 산은 연기가 자욱하였다. 주님께서 불 속에서 내려오셨던 것이다. 가마에서 뿜어 나오듯 연기가 치솟으며 산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하느님께 말씀을 올리자 하느님께서 천둥소리로 대답하셨다.
주님께서 시나이 산 봉우리에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산봉우리로 오르라고 하시었다.


복음 마태오 13,10-17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일찍이,‘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 하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





어떤 선비가 좀 배웠다고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상스러운 말보다는 고상한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스러운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늘 고상한 말만을 하는 자신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지요.

어느 날, 이 선비는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중에 강을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지고 만 것이에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이 선비는 허우적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사람 살려”라고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내가 이런 상스러운 말을 부끄럽게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죽더라도 이렇게 상스러운 말은 할 수 없지.’

그러면서는 그는 “사람 살려”라는 말보다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인간 구제! 인간 구제!”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서 이 선비를 구하러 왔을까요? 가까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 구제’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한 사람도 달려오지 않았답니다. 결국 이 교만한 선비는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선비가 그냥 쉽게 “사람 살려”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농부들이 즉각 와서 구해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상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끝까지 교만하게 “인간 구제”라는 어려운 말을 고집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이지요.

사실 우리들은 이 체면이라는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는 듯한 말은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라면 자신을 낮추는 말이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 그것 역시 커다란 용기가 아닐까 싶네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당연히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늘 어려운 말로써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달랐습니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지요. 이러한 차이 때문에 제자들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어려운 말로써 자신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것이지요.

앞서 그 선비가 고상한 말만을 하다가 결국 망해버렸던 것처럼, 우리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다가는 이렇게 쫄딱 망할 수 있습니다. 대신 예수님처럼 모든 이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어 나갈 때, 우리들은 주님께 더 큰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미워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최효섭, '사랑밭 편지' 중에서)

미국 역사에 특이한 인물이 있다. 로버트 리(Robert Lee)이다. 그는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군의 사령관이었으나 북군과 남군이 모두 좋아했고 남부인과 북부인에게 모두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역사가인 로퍼(Roper)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장군의 편지, 일기, 연설, 성명서, 기타 작은 노트까지 면밀히 조사했는데 그는 북군이나 북부인을 향하여 적(enemy)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는 미워하기를 거부한 사람이다. 이 점이 미국인들이 오늘날까지 그를 존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흑과 백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편에 서기를 요구합니다.

판단은 각자가 할 일이지만 마음의 미움이나 판단으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진리에 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미움이 사라질 때 판단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쉽지 않는 일이나 하루에 한번씩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충분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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