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11.28) -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2007. 11. 29. 오전 8:31:58

글자
2007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엘 5,1-6.13-14.16-17.23-28

그 무렵 1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2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시려는 것이었다.
3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곧 하느님의 집에서 가져온 금 기물들을 내오자,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 5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13 다니엘이 임금 앞으로 불려 왔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나의 부왕께서 유다에서 데려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인가? 14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6 또 나는 그대가 뜻풀이를 잘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대가 저 글자를 읽고 그 뜻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겠다.”
17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선물을 거두시고 임금님의 상도 다른 이에게나 내리십시오. 그래도 저는 저 글자를 임금님께 읽어 드리고 그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23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여진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복음 루카 21,12ㄴ-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저는 요즘에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사제관 안에서 처박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 미사 때 신자들에게 “요즘 춥지 않지요?”라는 말을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지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니 추운지 안 추운지를 잘 몰랐던 것이지요. 아무튼 제가 왜 사제관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을까요? 사실 이틀 동안 소설책을 3권이나 볼 정도로 책 읽는 것에 푹 빠져 있어서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책의 마지막을 보고서는 아쉬움과 함께 또 다른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책의 마지막에는 의미심장한 말이 이렇게 적혀 있었거든요.

“4권에서 계속됩니다.”

알 수 없는 4권의 내용. 그 내용이 과연 어떨지를 상상하면서 큰 기대감과 더불어 아쉬움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4권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들에게 다가올 미래 역시 이러한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길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매 순간을 기쁘고 활기차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미래는 절망으로써 다가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희망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바로 미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면서 미래 역시도 그러한 절망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지레 겁을 먹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똑같아 보이지만, 정말로 똑같은가요? 주님께서는 똑같은 삶을 우리들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오늘이 어제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새로움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박해를 당하는데,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우리를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라는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들의 미래는 이렇게 어둡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닙니다. 그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고, 어떤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시지요. 또한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서 생명을 얻어라.”라는 말씀으로 새로운 희망을 건네주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성인 성녀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 박해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의 복음이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려면 산고를 겪듯이, 박해를 통해서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느님 나라가 태어나는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미래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시간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함께 하는 한, 그 시간은 항상 활기찬 희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보세요. 주님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힘차게 오늘을 사세요.



내 안의 보물을 찾아라(이숙영, ‘성공의 길은 내 안에 있다’ 중에서)

우리는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 한 가지를 보인 사람을 두고 성공했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 사람은 전문인은 될 수 있지만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만약 한 회사의 오너라면 그 회사의 매출이 높다고 그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 성공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려면 그가 직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 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들이 인정해 주는 객관적인 성공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돈이 많으면 남들은 나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명예가 있으면 남들은 나를 성공한 사람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 차원 높은 성공을 꿈꾼다면 남들이 인정해 주는 객관적인 성공에 주관적인 성공을 더해야 한다. 주관적인 성공이란 ‘자신이 느끼는 만족’이며, 자신의 일에서 ‘자신만의 소명’을 발견하는 경우를 말한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면 객관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반쪽짜리 성공일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자신만이 지닌 재능을 찾아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당신의 나이가 얼마든, 상황이 어떻든 당신은 분명 기존의 성공 방식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성공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길지 않다. 외적인 성공을 원하는가? 그리고 스스로가 만족하는 내적인 성공도 함께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재능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야 한다. 당신조차도 알 수 없었던 그 재능이 당신 안에 숨겨져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 가서 보물찾기 했던 장면을 상상해 보라. 보물을 찾으러 다닐 때는 분명 어딘가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믿음을 갖고 출발하게 된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찾으러 다닌다. 보물이 아무 데도 없을 거라 의심하는 마음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게 될 테니까.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먼저 자신 안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래야 전력을 다해 찾게 된다. 그리고 게오르그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의 이 명언을 꼭 기억하라.

“다르게 변한다면 더 나아질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더 나아져야 한다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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