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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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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6,18-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19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20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22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3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애, 많은 나이에서 오는 위엄, 영예롭게 얻은 백발, 어릴 때부터 보여 온 훌륭한 처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법에 합당하게 고결한 결정을 내린 다음, 자기를 바로 저승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복음 루카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저는 어제 오랜만에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다. 평소에도 자전거를 타기는 하지만, 본당 신부라 동호회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주로 혼자 탔거든요. 그래서 동호회 분들이 저를 위해 특별히 휴가까지 내서 어제 시간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추운 날씨였지만 좋은 분들과 함께 타는 자전거의 맛이 너무나도 좋았지요.
어제 자전거를 탔던 곳은 서해에 있는 어떤 섬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가 그 섬의 아름다움을 자전거로 구석구석 맛 볼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자전거 여행의 막바지에 저희는 산의 임도(임시도로. 비포장이 된 차가 지나갈 정도의 소방도로를 말합니다.)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땅의 곳곳이 많이 파헤쳐 있으며 작은 돌들이 많아서 자전거 제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사고 나겠다. 혹시 내가 넘어져서 다치는 거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위험한 부분을 거의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제가 정말로 넘어진 것입니다. 물론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무릎이 까지고 얼굴에도 약간의 상처가 났지요. 동호회 사람들이 제게 말합니다.
“아니, 위험한 곳 다 지나서 왜 여기서 넘어지세요?”
왜 넘어졌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마음속으로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생각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부정적인 일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일만 꼭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긍정적인 생각 역시 그대로 이루어지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시기에, 우리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지 않는 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따라서 기왕 하는 생각이라면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이 아닌,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키도 작았고,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죄인이라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연결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강한 의지가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캐오의 모습과 우리들의 다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면 바로 우리들은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캐오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내가 이 나이에 불구하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노력을 해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말을 함으로써 예수님 뜻에 가장 부합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기왕 하는 생각이라면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세요.
자신의 한계는 자신이 만든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벼룩 여왕’으로 유명한 미국의 루이저 로스차일드 박사는 어느 날 벼룩의 점프력을 실험했다. 벼룩을 탁자에 놓고 그 옆을 손바닥으로 한 번 치자 벼룩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그런데 그 높이가 약 30Cm로 벼룩 자신의 키보다 몇 백 배가 넘었다. 벼룩에게는 일종의 단백질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높이의 점프가 가능했다.
그는 한 무리의 벼룩을 실험용 대형 용기에 집어넣고, 투명한 유리로 덮었다. 그러자 뛰어오르는 습성이 있는 벼룩들이 유리 덮개에 부딪혀 ‘탁탁’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뒤 소리가 잦아들자 그는 유리 덮개를 열었다. 벼룩들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모두 뛰는 높이가 유리 덮개 근처까지로 일정했다. 충분히 용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데도 벼룩들은 덮개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한 가지 실험을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벼룩이 들어 있는 용기 밑에 알코올램프를 두고 불을 붙였다. 5분도 안되어서 용기는 뜨거워졌다. 모든 벼룩들이 자연스레 생존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벼룩들은 머리가 유리 덮개에 부딪치든 말든 최대한 높이 뛰어 모두 용기에서 빠져나왔다.
인간의 습성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습관적으로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적응한 채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닌가. 용기 밖으로 뛰어나온 벼룩처럼 우리에게도 발밑의 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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