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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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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마카베오 상권 2,15-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복음 루카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이제 며칠이 지나면 교회력으로는 새해라고 할 수 있는 대림시기입니다. 엊그제 간석4동 성당으로 발령을 받아서 온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과 함께 어제 새벽 묵상 글의 마지막에 썼던 루시우스 세네카의 말이 다시금 떠올려 집니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말이 떠올려 지면서, 내년에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를 계획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았지요. 교회일지를 한 장씩 넘기면서 올 한 해 어떤 일을 했는지 보았습니다. 사실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고 자부했고, 또한 다른 분들도 제게 “신부님, 그렇게 일을 많이 해서 어떻게 해요.”라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간석4동 성당에서 참 많은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일지에 나타난 실제로 한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사랑에 비해서, 제가 1년 동안 해 온 일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미미한 일이었습니다. 즉, 입으로는 늘 “바쁘다 바빠.”를 달고 살 뿐, 실제로 한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이러한 착각 속에 빠질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낫다는 착각,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다는 착각, 나는 누구보다도 올바르다는 착각, 그런데도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착각,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다는 착각……. 이러한 착각의 홍수 속에서 주님과 내 이웃을 얼마나 많이 원망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왜 눈물을 흘리실까요? 하느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도성 자체에만 만족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이 도성이 원수들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어 무너져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과거의 이스라엘 사람처럼 스스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내게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에 주님께서는 오늘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 눈물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주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 눈물이 아니라, 웃음을 선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쁘다는 말을 하지 마세요. 이 말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못합니다.
리더는 실패로 빚어진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한 젊은이가 새 은행장으로 이제 막 선임되었다. 그는 퇴임하는 전 은행장의 사무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은행장님께 조언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은행장님처럼 성공적인 은행가가 될 수 있을까요?”
전임 은행장은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두 단어지요. 좋은 결정!”
젊은 신임 은행장은 고마워하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나 그는 이내 발길을 돌려 다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내린 결정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전임 은행장이 말했다.
“한 단어지요. 그것은 경험!”
젊은이는 나오다 말고 다시 전임 은행장 앞으로 갔다.
“그럼 말이죠, 제가 어떻게 하면 그 경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두 단어지요. 나쁜 결정!”
좋은 결정은 여러 사람의 노력을 하나로 모이게 한다. 좋은 결정에는 책임 있는 실천이 뒤따른다. 위대한 리더는 실패를 통해서 좋은 결정을 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던 어린아이가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1,500번 이상을 넘어지고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인생이란 수천수만 번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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