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으로 기도를 시작할 때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 블라 블라..."
서두, 시작을 그렇게 한다.
즉 우리의 하느님은 모든 능력의 하느님,
하느님과 힘의 연결은 자동적이다.
하지만 이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실 때
의심할 여지 없는 가장 힘없는 분으로 보내셨다.
이 사실을 오늘 복음은 우리게 완벽하게 알려준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는 진정 누구인가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가 필요하다고 고백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입으로 두 번이나 고백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왜? 위대한 예언자인 그가 이런 고백을 하는걸까?
자기 앞을 걸어오는 예수님이
가장 평범한 얼굴,
나자렛의 별 다를 것 없는 목수의 모습...
현인, 위대한 예언자인 그마저도 알아 보지 못했다.
하느님께서 요한의 눈을, 마음을 열어주셔야 했다.
가장 평범한 모습의 예수님에게서
위대함을 볼 수 있도록...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버리고
허약한 사람으로,
사회적으로도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호화로운 왕궁이 아니라 구유에 태어나기를
왕중의 왕이신 그분께서 선택하셨다.
그의 약함이 그의 가장 강렬한 힘이다.
하느님의 힘은 강제하는 힘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힘이다,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자렛의 예수님은 겸손과 자연스러움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다.
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알아보지 못함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말한다
가난하고 힘 없고 보잘 것 없고 무시 받는 사람들
그들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아니, 그들이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고백한다, 신앙 안에서.
하지만
그들이 우리들 곁으로 실제로 다가 올 때
나는 예수님을 보았는가?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아니다......
무시했고
나 몰라라 했고
냄새난다고 고개 흔들었고
다른 사람에게 그를 맡기고 꽁무니를 뺏다.
"여기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
난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세례자 요한처럼 고백한다.
"나도 저 분을 알지 못했소."
하느님의 특별한 개입이 내게도,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가장 평범한 내 곁의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가장 힘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겸손, 평등 그리고 무력한 사랑이 나의 사랑이라는 인정이
바로 하느님의 계시이다.
기도하자,
하느님, 저희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제 삶의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월 3일 복음 묵상) - 하늘바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