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형성
- 안토니오와 빠꼬미오 요약 -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정립에 커다란 공헌을 한 대표적인 두 사람을 꼽으라면 수도승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또니오와 회수도회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빠꼬미오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각자 고유한 수행방법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을 뿌리내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둘의 영성을 먼저 소개하고 그 차이점을 살펴보겠다.
1. 안또니오의 생애와 영성
성 안또니오가 전적으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사막으로 투신한 첫번째 수도자는 물론 아니다. 또한 어떤 수도단체의 창립자도 아니다. 그는 정확하고 사소한 어떤 규칙(Regula)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또니오 성인은 초기 에집트 은둔수도자 그룹의 전형이었고 그의 고귀한 품행으로 인해 수많은 수도자들의 귀감이 되어 왔다. 그래서 그는 "수도승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고, 그가 시작한 영성운동은 온 그리스도교 세계에 널리 퍼졌다.
안또니오는 250년경 에집트 중부 Heracleopolis 근처 콥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양친은 부유한 농부였고, 안또니오의 문화생활은 순박하고 한정된 것이었다. 그의 성장기는 외부세계의 문화와 철저히 분리된 생활로 특징지워진다. 그래서 그는 부모와 자기 집밖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래의 아이들과 사귀거나 글을 배우려 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박해 말년의 그리스도교 가정의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8-20세 사이에 고아가 된 후 어느날 성당에서 부자청년에 대한 말씀(마태 19,21 참조)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 물려받은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집을 떠나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안또니오는 빈 무덤에서 35세가 될 때까지 살며 하느님을 섬길 준비를 하고, 다시 사막으로 들어가 Pispir라고 하는 산악지방에 있는 허물어진 성에서 20년간 머물며 마귀와의 투쟁을 벌였다. 그후 그는 제자들을 맞아들였고, 이로인해 사막 수도승생활이 시작되었다. 박해시에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자들을 위로하고 다시 돌아와서는 오늘날 성 안또니오 산이라 불리는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여기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보내며 제자들을 독려하고 수행의 길에 정진하였다.
안또니오에 대한 몇 가지 자료가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다. "안또니오의 생애"에서는 귀신들과의 투쟁하는 모습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금언집"에서는 수도승의 아버지가 될만큼 영웅적인 수도생활이 그려지기보다는, 오히려 겸손하고 수련하기를 좋아하고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수도원 앞으로 보낸 7통의 편지들은 개성이 강하고 깊이있는 한 원로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신빙성있는 편지들로부터 안또니오의 영성을 종합해 보면,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생활을 거룩한 역사안에 가득찬 우리들의 청원과 하느님의 응답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 역사는 비극적인 추락으로 시작되어 세기를 통해 영향을 미치나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인간을 방문하신다. 이 방문의 절정의 순간이 바로 육화(incarnatio)의 신비이다. 이 방문에 직면해서 인간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완전한 성덕을 얻도록 수행생활에 힘써야 한다. 이것은 구세주께서 오심이 인간을 단죄하는 기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안또니오가 제시하는 완덕의 이상은 무질서하고 영을 거스리는 욕정들을 지닌 원죄와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 사이에서 본래의 의로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 여기서 수행은 완덕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 된다. 즉 온 생활을 거룩한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지상에서부터 천사들의 생활에 재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욕의 움직임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수도승의 수행노력에 영감을 주시고 주관히시고 끊임없이 함께 하신다. 수도승은 다만 완전무결한 정화를 향한 열의를 갖고 꾸준한 준비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수도회사 세미나 때 준비한 자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