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과 신앙생활
이창욱(가톨릭대학교 교수/ 성바오로수도회 신부/ 신약학)
I. 뉴에이지란 무엇인가?
1. 뉴에이지의 발생 상황
현재까지 우리의 사회는 과학과 기술 면에서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 덕택으로 인간은 과거에는 무지했던 분야에 있어서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신앙의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자연 환경과 사회적 제약의 지배와 온갖 미신 형태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학 발전은 우리 삶의 많은 조건을 제약시키며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이를테면 지구의 오염, 핵 전쟁의 위험, 늘어가는 실직, 인공 수정, 빈부의 격차 등에서 오는 사회 불평등의 증가라는 결과들이다.
이외에도 사회는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토대로 전쟁 준비를 야기시키는 등 삶의 의미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답변을 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의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는 한편, 익명성과 집단성으로 자꾸만 빠져들어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구 공간은 함께 살기 어렵게 자꾸만 좁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아니면 이성주의의 논리로 종교의 필요성을 제거하려는 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적어도 새로운 형태의 종교, 즉 강력한 주관주의적인 경향과 무정부적이고 비체제적인 색채를 띤 종교를 원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뉴에이지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17세기 프랑스 개혁 종교 공동체의 목사인 Gillos Castelnau인데, 그는 이 표현으로써 우리 사고방식의 개혁을 의미하려고 하였다. 요약컨대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볼 때, 뉴에이지라는 표현은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 즉 개인 선의 추구가 중심축을 이루는 세상을 묘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신문, 잡지에서 개인적인 활기와 환경 적응을 위한 아주 다양한 제안들을 접하게 된다. 예컨대 신체 이완(혹은 여가 선용; relaxation), 묵상, 운세, 점성술, 숫자학(우리 삶안에 미치는 숫자의 영향), 진정제, 영매주의, 심령술, 텔레파시, 초능력, 중국 체조, 야채주의, 요가, 최면술, 환생설(윤회설), 원죄주의, 수상 스포츠 등 많은 정신 수양 및 건강 유지를 위한 이론들이 판을 치고 있다. 실로 이러한 많은 제안들이 요구하는 실행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뉴에이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만든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뉴에이지는 현대인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영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사상의 조류와 합일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실로 19세기 이후에는 이성주의가 한계에 봉착하게 됨에 따라, 기술과 과학의 진보에 따른 많은 위험 요소가 대두되었다. 그와 동시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었다. 이 새로운 관점은 고대의 의식이나 관습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근본 사상은 인간 개체를 우주를 형성하는 모든 에너지 안에서 전체성을 이루는 존재로 여기는 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 선을 충만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우주적 균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내용을 표현한 전문 용어가 바로 '전체주의'이다. 즉 인간과 우주는 우주적 조화 안에서 역동적 관계를 가진다는 새로운 관점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과 우주 안에 존재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자각한다는 것은 우주와 자연 전체 안에서 인간 감성을 통한 영적인 결합 혹은 합일을 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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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뉴에이지의 뿌리
3. 뉴에이지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II.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태도
1. 뉴에이지와 하느님
2. 뉴에이지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
<사목 207호(1996년 4월), pp.2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