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

1999. 9. 19. 오후 11:03:20

글자

 

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

 

 

사도시대를 시대적으로 한계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부터 사도들이 모두 사망한 때까지로 본다.  따라서 사도시대의 종말은 계시시대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시대는 '계시의 사도시대'라 일컬어진다.

 

사도시대에는 두 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는 아직도 엄격한 유다교 사상에 젖어 생활하는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이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티나 지역 밖에서 개종한 그리스인, 헬레니스트, 비유다인으로 구성된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이다.

 

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전해주는 사도행전은 주로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행전의 저자가 유다계 공동체를 소홀히 취급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상대로 사도행전을 썼기 때문이다.  오늘날 비성서적 문헌들의 새로운 발견과 사용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70년까지 초창기 교회 안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립

 

(1) 유다계 그리스도교

 

사도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사도행전에 서술된 예루살렘 교회뿐만 아니라 유다 지방을 제외한 팔레스티나 본토와 요르단강 서안지역에도 있었다.  예루살렘 밖의 유다계 공동체로는 사마리아 교회, 갈릴래아 교회 등이 있다.

 

①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는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성령강림으로 시작되었다.  이 때 사도들은 성령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힘과 권한을 받았다.  사도행전에 전해지는 베드로의 설교(2,14-36; 3,11-26; 4,8-12)에서는 초창기 교회의 복음선포의 계획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복음선포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진술과 하느님이 하신 일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유다인들에게는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했다.  그래서 유다인들의 회개와 귀화를 촉구하는 호교적인 내용도 많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외에도 사도들의 가르침에는 예수의 생애, 즉 세례부터 승천까지의 예수의 일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들은 사도들의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특히 산상설교(마태 5-7장)의 내용은 중요한 복음선포의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복음선포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업적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직접 목격자인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과 신도들로 구성되었다.

 

② 사마리아 교회

 

사마리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사도행전에 언급되어 있다(8,4-25).  이 교회는 스테파노의 순교 후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헬레니스트들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특히 사마리아 출신인 필립보 부제가 자기 고향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사마리아인들은 필립보의 설교와 기적을 보고 개종하였다.

그런데 사마리아에는 마술로써 사람들을 매혹한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필립보에게 세례를 받은 후 필립보의 기적을 보고 놀랐다.  한편 사마리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성립되자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와서 세례받은 신자들을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였다.  이 때 시몬은 베드로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도 성령을 베푸는 권한을 달라고 청하였다가 크게 힐책당했다.

 

이 시몬사건은 사마리아 교회가 선교에 있어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되었고, 따라서 사도행전은 더 이상 자세하게 사마리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교회는 시몬사건 후에도 계속 존재하였으며, 49년 바울로 사도는 이 공동체를 방문하였다(사도 15,3).

 

③ 갈릴래아 교회

 

교회 초창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갈릴래아 지방에 전파되어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세 가지 사실로 추리되고 있다.

 

1. 복음성서에 유다 지방에서 전승된 요소와 갈릴래아 지방에서 전승된 요소가 명백하게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다.

 

2. 고대 유다계 그리스도교 비문(碑文)이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에서 발견되었으며 몇명의 사도들은 갈릴래아 지방과 가족적 연대를 가지고 있었다.

 

3.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시몬은 가나 출신의 열성당원으로 갈릴래아에서 로마제국에 항거하기 위해 기원전에 일어난 광신적 유다주의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열성당원이라고 불렀다(사도 5,37참조).  이는 갈릴래아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존재했음을 암시하며, 열성당원인 이 신도들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갈릴래아 농민과 어민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70년 예루살렘 멸망후 광신적 유다주의운동은 소멸되었고,  더욱이 바울로 사도의 선언으로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세속적 민족주의로 흐르는 유다주의와 결별을 고하면서 이 운동을 이단시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신약성서에는 더 이상 갈릴래아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신학생 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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