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2007. 10. 9. 오전 11: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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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요나서 1,1─2,1.11

1 주님의 말씀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그 성읍을 거슬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나에게까지 치솟아 올랐다.”
3 그러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 마침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뱃삯을 치르고 배에 올랐다. 주님을 피하여 사람들과 함께 타르시스로 갈 셈이었다.
4 그러나 주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 5 그러자 뱃사람들이 겁에 질려 저마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안에 있는 짐들을 바다로 내던졌다. 그런데 배 밑창으로 내려간 요나는 드러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6 선장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이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소? 일어나서 당신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나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주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
7 뱃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자,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닥쳤는지 알아봅시다.” 그래서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혔다.
8 그러자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이런 재앙이 닥쳤는지 말해 보시오.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이고 어디서 오는 길이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느 민족이오?”
9 요나는 그들에게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나는 바다와 뭍을 만드신 주 하늘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 사람들은 더욱더 두려워하며, “당신은 어째서 이런 일을 하였소?” 하고 말하였다. 요나가 그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아, 그가 주님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11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지자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12 요나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당신들에게 들이닥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13 사람들은 뭍으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으나,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져 어쩔 수가 없었다.
14 그러자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아, 주님! 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부디 저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 주님, 당신께서는 뜻하신 대로 이 일을 하셨으니, 저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15 그러고 나서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 16 사람들은 주님을 더욱더 두려워하며 주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서원을 하였다.
2,1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다. 11 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분부하시어 요나를 육지에 뱉어 내게 하셨다.



복음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음식을 할 때, 단맛을 아무리 내도 더 이상 단맛이 나지 않을 때와 짠맛을 아무리 내도 더 이상 짠맛이 나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단맛을 더 내고 싶을 때는 설탕을 더 넣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을 간장을 조금 넣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단맛이 더 강해진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짠맛을 더 내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할까요? 간장을 더 넣는 것이 아니라 설탕을 아주 조금 넣어보면 짠맛이 짙어진 것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합니다.

같은 것이 아니라 반대의 것으로 오히려 맛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좀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습니다. 그런데 그때 과연 행복할까요? 사실 부유한 사람이나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 점은 부유한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은 오히려 나를 행복과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더욱 더 행복해지게 만드는 것을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의 실천에 있습니다. 그것도 나만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오히려 나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맛을 더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설탕이 아닌 약간의 간장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또한 짠맛을 더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간장이 아닌 약간의 설탕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 아니라 약간의 남을 위한 사랑의 실천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의 실천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당시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던 사제와 레위인을 등장시키지요. 다시 말해서 그들이 아무리 다른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들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멸종되어가는 나비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 얻어낸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나비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비와 공생 관계에 있는 개미도 보호해야 한다.’

이 세상에 자기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지요. 모두가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 역시 이웃과 친구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야 나를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그들도 행복하고, 그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이 차원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이웃 사랑의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있는 그대로(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 '인생수업' 중에서)

집에 돌아오는데 열여덟 살 된 아들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어요.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여자친구한테서 얻은 꼴사납고 색 바랜 티셔츠를 입고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아들이 그 옷을 입고 있는 걸 이웃 사람들이 보고 자식 옷도 제대로 못 입힌다고 흉볼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난 옷차람부터 시작해 아이를 야단쳤어요.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우리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그날 나는 당신의 워크숍에서 해 본 '삶과 작별하는 연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삶이란 나에게 잠깐 동안 맡겨진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영원히 내 곁에 두지는 못하겠지요. 문득 이런 가정을 한번 해봤어요.

'만일 내일 아들이 죽는다면, 난 어떤 기분일까?' 그러자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한 엄청난 상실감과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아이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상상해 봤어요. 나는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서 묻지는 않을 거예요. 정장을 입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 애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저분한 셔츠를 입혀서 묻을 거예요. 그렇게 그 애의 삶을 기리게 될 거예요.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겠구나.' 그 애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선물을 줄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에게 마음대로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아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그 애를 사랑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 나는 더 이상 아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걸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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