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9일 토요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매일 복음 묵상

2007. 10. 9. 오전 10:26:47

글자
 2007년 9월 29일 토요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가톨릭 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통하여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 대해서는 유권적인 결정을 내린 일이 없다. 다만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이외의 다른 천사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천사들에 대한 축일도 오늘과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만 제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장하고 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탄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을 때, “누가 감히 하느님처럼 구느냐?”라고 호통을 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 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성경에 나오는 3대 천사의 하나입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권세’, ‘하느님께서 당신을 권세 있는 분으로 드러내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 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 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Amen, amen, I say to you,
you will see heaven opened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의 영혼을 읽으시고 그를 칭찬하신다. 나타나엘 역시 예수님을 알아본다.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누구나 삶이 깨끗하고 정직하면 어디서나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천사들도 만날 수 있다

 

☆☆☆

 

 미카엘 대천사는 천사들의 지도자입니다. 성화에서는 흔히 칼을 들고 있는데, 이는 용과 싸우는 모습입니다(묵시 12,7-8 참조).
가브리엘 대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알렸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천사도 가브리엘이었습니다(루카 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는 토빗기의 여러 군데에서 의인 토빗을 도와주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누군가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남몰래 시작한 좋은 일이 돈 때문에 겉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즈음에 전혀 생각지도 않은 분이 찾아와 좋은 일에 쓰라며 돈을 두고 갔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분께 참으로 감사드리며, 살아 계시는 하느님, 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분명하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다른 천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 우리 역시 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천사     

-김인한 신부-


 천사를 소재로 다룬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곁에서 천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들어주며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홀로 있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이가, 함께 마음 아파하는 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보면 천사란 나와 함께 아파하는, 그리고 나와 함께 기뻐하는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할 때,
그것은 기계적으로 우리가 늘상 받아보는 세금고지서나 전화비 통지서 같은
전달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마음 아파하고 마음 부대낀
그런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천사란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모습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사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입니다.
그런 눈이 우리에게 늘상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천사가 받지 못하는 존귀의 관까지도 우리에게 내리시는
주님을 찬미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위로

-변진흥(새천년복음화연구소 소장)-


 선천적으로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싸우려면 가슴부터 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말도 잘 안 나오고 겁부터 나는 것입니다. 천성이 착한 것인지 아니면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모르지만`….
A 역시 그런 사람에 속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싸움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동네 꼬마대장 노릇을 한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 속에서도 한 학년 밑의 아무개가 싸움을 걸어와 개천까지 내려가게 되었지만 결국 싸움을 못하고 대장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싸움을 걸거나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삶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30년에 걸친 그의 사회생활을 헤아려 보면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직장을 다섯 차례나 옮기게 되었습니다. 평균 3,`4년 만에 직장을 떠나게 되었고, 길어야 5,6년이었습니다. 그나마 제 뜻으로 직장을 떠난 적도 없습니다. 항상 직장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를 가장 슬프게 만든 것은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으로 도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등뒤에서 그를 격렬히 헐뜯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무도 그를 두려워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껏 짓밟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슬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며 하신 말씀, 곧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 위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천사들을 본받아 사는 신앙인

-경규봉 신부-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다(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 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 그러나 천사의 본질과 역할, 계급과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 등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또한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고(745년, 라테란 공의회), 삼대(三大) 천사의 축일과(9월 29일) 수호천사의 기념일(10월 2일)을 제정하여 천사공경을 장려하고 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란 뜻으로 구약성서에 2번이 등장하며(다니엘 10,13이하; 12,1), 신약성서에도 두 번 언급되었다(유다 1,9; 묵시록 12,7-9). 이 천사는 외경에서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자로 나타난다.

미카엘 대천사 공경은 처음에 프리지아에서 발단되어, 서방교회로 확산되었고, 교황 젤라시오의 재임기간에(492-496) 북이탈리아의 가르가누스 산에 발현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발현 장소에 기념 성당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흔히 미카엘 천사는 악랄한 용과 싸우는 칼로 표현되며,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이고, 1970년에는 그의 축일이 가브리엘과 라파엘의 축일과 합쳐진 것이다.

가브리엘이란 ‘하느님의 강함’ 또는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으로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다(다니엘 8,16-26). 그는 즈가리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고(루가 1,11-21),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하였다.(루가 1,26-38)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란 뜻이다. 주님 앞에 서 있는(토비트 12,12-15)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아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에 의하여 파견되었다. 라파엘은 이 땅을 치유하는 천사로 알려져 있다. 요한복음(5,1)에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에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던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주님의 천사’가 라파엘 대천사라고 한다. 라파엘 천사는 맹인의 수호천사이다.

9월 29일은 로마의 살레리아노가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 봉헌 기념일로서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이었는데, 1970년에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축일까지 통합하여 지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감각의 대상인 세상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을 예배하고, 시중드는 존재들이다(묵시 5,11-12; 8,3.4). 또한 땅 위에서는 주님을 위하여 심부름하며 하느님의 일을 행한다(민수 22,22; 마태 13,41).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신자들을 인도하며(사도 8,26), 돕고, 보호한다(1열왕 19장, 다니 6,22). 그리하여 천사들은 하느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시며, 창조된 모든 것은 곧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며 돕는다.

그러므로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천사들처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신앙인이 되자. 우리 삶의 중심에 언제나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자...........◆


 

-전주교구 김병환 신부-


 나타나엘은 필립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필립보의 안내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필립보가 먼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나타나엘에게 가 그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극찬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당시에 보기 드문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보셨다. 그리고 나타나엘 역시 필립보가 찾아오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사실을 알아맞추시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다. 그리고 즉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다.

나타나엘은 누구인가? 나타나엘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바르톨로메오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가나 지방 출신이었으며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난 이후 나자렛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았고, 즉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훗날 나타나엘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요한 21,2)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처음 뵙고 믿음을 고백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은 사실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하였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심으로 보았지만 그분을 이스라엘에 국한시켰다. 곧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로 보았다.

이에 예수께서는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나서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훗날 있을 당신의 부활과 승천을 암시하시면서 인류를 위한 하느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나타나엘을 통하여 당신은 인류를 위해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하신다. 따라서 나자렛 출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왕이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왕이신 예수께 깊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새벽을 열며

 

 신학생 때의 일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 1학년 때의 일로 아마 총장배 체육대회 중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체육대회는 신학교의 큰 행사 중 하나로 각 학년은 자기 학년의 명예를 걸고서 정말 열심히 경기에 임합니다. 당시 저희 학년은 전 종목에 걸쳐서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특히 포기했었던 농구가 결승에 오르는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학부 3학년과 대학원 1학년인 우리 반의 농구 결승전. 누가 봐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당연히 학부 3학년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결승전이라고 전교생과 학교 교수 신부님들이 관람하고 있는 가운데 결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점수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팀에서는 봐주면서 하는 것 같고, 우리 팀은 이 정도만 되어도 성공했다는 듯이 즐기면서 농구를 합니다.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때 제가 승부욕이 엄청나게 강했거든요. 따라서 이러한 모습을 그냥 볼 수가 없었지요. 점점 과격해지면서, 상대방의 약한 파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교수신부님들과 전교생이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큰소리로 욕을 하며 화를 내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의 승부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저희 학년이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의 일입니다. 저랑 농구를 할 때면 사람들이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 반의 승리를 가져오는데 보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게 된 것이지요.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공격적인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성공은 늘 단명으로 끝나지요. 반면에 그들이 저지른 해악은 자신과 남에게까지 널리 미치는 것 같습니다. 경쟁이 지나치면 결국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고, 자신도 불쾌해지며, 욕을 먹게 되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대학원 1학년 때의 저처럼 말이지요.

반면에 경쟁심을 버린 사람은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자기 식을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속상해하거나 움츠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천사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천사야.”라는 말을 자주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나 스스로는 그 천사와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천사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스스로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데 더 익숙해 하면서 천사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 역시 천사들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천사는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있으며, 나 역시 내 이웃의 또 다른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천사 축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빠다킹신부

 

 이 시대 천사

-양승국신부-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리도 자주 불평불만을 털어놓게 될까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렇습니다. 남을 너무 의식하다보니 그렇습니다. 남보다 못한 내 모습이 불만족스럽고, 기대보다 못한 현실이 괴롭다보니 불평불만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내부를 향해 방향을 바꿔, 스스로를 개선시키는 에너지로 승화되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불평불만은 밖으로 튀어나와 세상과 남을 향합니다. 내 삶에 대한 불만족이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상대나 세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성숙한 자기방어수단이 불평불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평불만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적당한 불평불만은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불평불만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분들과 함께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합니다.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불평불만에 아무런 응대 없이 가만히 있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본의 아니게 위로 차 함께 불평불만에 동조합니다. 덩달아 ‘불평꾼’으로 변해갑니다.


반면에 만났다하면 기쁨을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쁨의 도구는 바로 칭찬이며 격려입니다. 활짝 핀 미소입니다. 균형 잡힌 유머감각입니다.


요즘 웃음치료가 유행입니다. 자꾸만 웃음을 잃어가는 이 시대, 참으로 바람직한 시도입니다. 웃음을 준다는 것은 건강을 준다는 것입니다. 웃게 한다는 것은 생명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미소를 짓게 한다는 것은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이웃들의 얼굴에 미소를 감돌게 하는 사람들, 이웃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 이웃들의 등을 기분 좋게 두드려주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발길 닿는 그 어디든 하느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 그 사람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이웃관계를 조성하는 사람, 맑고, 풍요롭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사람, 그들은 어쩌면 이 시대 천사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천사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위치한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는 말마디 그대로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입니다. 이 존재의 역할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한 정당의 대변인이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것 보셨습니까? 대변인은 오직 당 대표의 말을 전하기만 합니다. 당을 대신해서, 당의 입장에서, 당의 뜻에 맞게, 당을 위해서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어떤 면에서 하느님의 대변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팔, 하느님의 분신이 천사입니다.


오늘날 이 천사의 역할은 누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봐도 날개달린 천사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천사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천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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