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일
해가 거듭될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용서하는 일인 것 같다.
전에는 쉬운 것 같아 보였는데
갈수록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자주 느낀다.
한때는 신자들끼리 대립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충고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자신이 없어진다.
오죽하면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겠는가.
중국 사람들은 ‘너 살고 나 살자’며 싸우고,
일본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살자’며 싸우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며 싸운다고 한다.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그걸 누가 말리겠는가.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주사목을 담당하던 어느 주교님이 강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외국에 다니면서 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물론 싸우지 않을 수야 없지만 문제는 터무니없이 트집잡고,
괜한 것 갖고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의견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욕하고 소외시킨다면
누가 반대 목소리를 내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더이상의 발전과 성숙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실상 미운 사람이 생기더라도 넉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준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화해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보다 먼저 욕도 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다.
권상목 신부님(안동교구)

해가 거듭될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용서하는 일인 것 같다.
전에는 쉬운 것 같아 보였는데
갈수록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자주 느낀다.
한때는 신자들끼리 대립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충고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자신이 없어진다.
오죽하면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겠는가.
중국 사람들은 ‘너 살고 나 살자’며 싸우고,
일본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살자’며 싸우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며 싸운다고 한다.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그걸 누가 말리겠는가.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주사목을 담당하던 어느 주교님이 강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외국에 다니면서 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물론 싸우지 않을 수야 없지만 문제는 터무니없이 트집잡고,
괜한 것 갖고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의견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욕하고 소외시킨다면
누가 반대 목소리를 내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더이상의 발전과 성숙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실상 미운 사람이 생기더라도 넉넉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준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화해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보다 먼저 욕도 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다.
권상목 신부님(안동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