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사도직을 할 때였다. 교우 한 분이 당신네 반에 환자 할아버지가 대세받기를 원하니 그 댁을 방문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방에 누워 계시고 옆에 할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앉아 계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방안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돌아누우시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는 세례받으실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붙이자 할아버지는 느닷없이 “나는 염치가 없는 사람이오. 내가 젊어서 많은 잘못을 하였는데 이제 다 죽게 되어 구원받자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염치가 없지요”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인즉 할아버지는 유학자셨는데 할머니를 버리고 다른 부인을 얻어 재산을 다 탕진하고 병이 들어 본처인 할머니를 찾아온 지 이제 겨우 6개월이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우셨으며 신자가 된 지 1년이 채 안 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76세, 할머니는 74세셨다. 할머니 말씀이 “내가 하느님을 안 이상 어떻게 찾아온 사람을 버릴 수 있겠어요. 자비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을 믿는데…”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아름다운 마음에 할말을 잊었다. 할머니를 통해 만난 예수님은 늘 내 마음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나의 편견과 판단 모두를 “걷어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집으로 오면서 주님의 놀라운 일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일상 안에서 사람이나 사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주님께서는 이 사건을 떠올려 주신다. 주님은 자비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이심을.
-이정희 수녀(성심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