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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꼬 복음은 6장에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와 더불어
여기에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빵에 관한 기적 이야기는 그 형식이나 내용에서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6장과 달리 오늘 읽는 복음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이 팔레스타인 밖의 지역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특히 오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라고 하시며 그들을 먹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흘 동안 당신 곁에 머물며 하느님이 전하는 영적 양식을 받고 영혼의 위로를 받았던 그들에게 주님은 육신의 양식마저 주어야 한다고 제자들을 가르키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우리가 육신의 양식을 만들어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시자 제자들은 빵 “일곱 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7”은 완전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먹어야할 몫이고, 받아야할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 움켜쥔 빵, 자신 안에 간직한 사랑을 나누어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일곱 개의 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충분한 영적 은총과 육신적 양식마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만나는 삶의 자리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위로와 평화를 전하는 영적 유산만이 아닌 실천적인 나눔의 문제도 또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만남은 그렇게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섬긴다며 가족이나 형제자매 혹은 이웃에게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정작 사흘 동안이나 꼬박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온갖 영적 유산을 다 듣기는 하지만 그가 하느님을 찾아 나섰다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지치고 기진할 뿐일 것입니다. 간혹 그런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밖에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천사 같은 사람이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데, 집에만 들어오면 말도 없고, 조금만 잘못해도 화와 짜증을 내서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내와 자녀들은 그 모습 때문에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그런 이중적이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고 반발하게 되죠. 결국 본인도 사랑에 굶주리고 가족들도 사랑에 허기진 황량한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은 좋은 말을 듣고 혼자 기뻐하며 행복을 만끽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디서 커다랗게 많은 것을 구해다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곱 개의 빵”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쓸려고 마음 먹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기적을 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을 찾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 받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눈을 돌려 주위을 돌아보십시오. 자기 주변의 사람들도 또한 그렇게 여러분에게서 위로 받고 싶어 하고, 행복을 얻고 싶어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강요하고 있었고,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변하고, 함께하는 가족이 변하며, 세상이 변하는 기적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의 힘은 분명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일곱 개의 빵”으로 시작합니다. 그 은총을 나누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이미 충분히 당신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을 나누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님, 제게 있는 일곱 개의 빵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마음을 열어 주소서. 아멘.” |
[강론] 일곱개 있습니다[이회진신부님] /2007.02.12
2007. 2. 12. 오전 10: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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