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된 침묵

2006. 10. 27. 오전 7: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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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된 침묵


"전례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회중의 환호,

응답, 시편 교송, 대경, 성가와 함께 행동과 동작과 몸

가짐 등을 올바르게 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합

당한 때에는 거룩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전례헌장 30).

 

신도들이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하던 지난 1,500년 동안, 미사 때 신부 혼자서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면 신도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거나 묵주기도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앞에 보이는 성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습니다. 따라서 미사 전례는 신부 혼자의 예배, "일인극"에 머물고 말았던 것입니다.  신도들은 자연히 미사에 수동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미사중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이 미사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서는 그저 습관적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전례는 하느님 백성이 드리는 예배" 라고 새로이 자각한 현재, 교회는 하느님 백성을 이루는 모든 신도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고, 또 전례를 개정함으로써 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던 것을 자기 나라 말로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해서인지, 전례에서 신도들의 역할이 맣이 강조되고 또 전례의 활성화를 꾀하다 보니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들도 많이 부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미사 해설이 장황해지고, 신부들도 형식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미사를 드리려다 보니 군더더기말을 하게 됩니다. 또 미사 전례에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미사 참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사 참여를 방해하는 요소들로 변질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현대를 "초스피드 시대"라고들 합니다.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처럼 전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독서 경향도, 많은 양의 문학작품보다는 짧은 우화나 동화 또는 만화를 더 좋아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전례 안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꽉 짜여진 미사 시간표,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간 안에 미사를 마치기 위해서 주례자나 신도나 할것 없이 정해진 예식에 맞추어 일사천리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시대 조류를 거슬러 교회는 "거룩한 침묵"을 외칩니다. "잠시 머무어라. 하던 일을 멈추어라.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너 자신을 반성하고,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네 삶을 되씹어 보라."

 

이 침묵은, "난 너와 상관이 없어". "네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거부를 드러내기 위해 말을 안하는 침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하느님 말씀에 귀기울이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말을 안하는, 나의 목소리를 죽이는 것을 뜻하는 "창조적 침묵"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루에, 전례중에 얼마큼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까?

 

 

 

-'김인영 신부님'의 저서 「제대와 감실의 싸움」 전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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