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의 전례 생활

2006. 10. 27. 오전 7: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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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전례 생활

 

주일 미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까닭에 주위 사람들은 제가 열심한 신자라고 여깁니다만

정작 저 자신은 습관적으로 미사에 참여할 뿐이지 거기서 어떤 감동을 느낀다거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습관적인 전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신학생 때 들은 농담 하나가 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할 때는 천사 같은 거룩한 마음과

감동을 지녔던 사람들이 졸업하여 신부가 될 때는 이미 악마로 변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장신부님이 새 신부들을 세상에 내보낼 때,

 "순한 어린양과 같은 새 신부들을 늑대들이 사는 세상에 보내나니, .." 라고 해야 원칙인데,

이제는 "어린양들 사이로 이 늑대들을 보내나니."라고 바꾸어 말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비슷한 농담이 개신교 신학교들 안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사제가 되고자 신학교에 입학하는 사람치고

 나름대로 거룩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백성과 하느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갸룩한 마음들로 충만해 있던 신학생들이

한 해 두 해 신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미사나 시간전례(성무일도)가

하나의 형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신학교에서의 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가슴에 찡하고 울리는 감동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학년이 거듭 될수록 가슴은 사하라 사막처럼 메마르게 되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사정은 수도원에 들어가 살고 있는 수산 수녀들에게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가정을 이루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마저 포기하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신부들과 수사, 수녀들이 이러할진대,

우리 평신도들의 사정은 어떠할지 쉽게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희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신앙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우리 마음 안에

뜨거운 감동과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무리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여 보았자 마음은

별반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함을 알게 되면서 차츰 미사를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하는 가운데 좀더 자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미사는 제쳐둔 채 기적, 이적 들에 눈을 돌립니다. 

또 일부 신자들은 개신교의 부흥회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신앙 생활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때때로 이단에 빠지게도 합니다.

 

"이 지역은 도로 사정이 안 좋아 위험한 것이니 속도를 늦추라"는 교통 표지판의 예를 들어봅시다.

이 표지판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안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표지판이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속도를 저절로 늦추어 주지는 않습니다. 

이 표지판 안에 어떤 마술적 힘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표지판을 보고 속도를 늦추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교통 신호를 잘 지키지 않던 사람이

이러한 안내판 하나의 명령을 잘 지킬 리는 없습니다.  좋은 운전 습관을 익힌 사람만이

그 표지판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고 또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안내하는 표지판: 미사, 전례

 

평상시 몸에 익은 좋은 운전 습관이 도로 표지판이 전해주는 안내문의 의미를 이해하게 만들고

운전자를 지켜 주듯이, 미사와 전례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우리에게 전해 주면서,

그리스도처럼 살 때 우리 또한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하나의 안내판,

신앙 표지판입니다.  그렇다면 미사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하자면 평상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올바른 신앙을 위한 평상시 훈련

 

첫째, 성서를 매일 읽어야 합니다. 미사와 전례는 도로 표지판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상징적 언어와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성서가 바로 그 의미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중심을 이루는 성서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이 그분의 뜻이 적혀 있는 성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성서를 매일 읽되 그 양은 각자가 조절 할 수 있습니다. 

하루 5분만이라도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몸에 밴 좋은 운전 습관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 잠자기 전 5분만이라도 묵상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우리 양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묵상은 그날 하루 동안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가운데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좀더 가까이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셋째,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합시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기도는 가족 구성원의 일치뿐만 아니라

공동체, 작은 교회로서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자기의 주관적 신앙에 빠질 위험을 덜 수 있습니다.

  또 정규적인 기도 습관은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신앙 생활을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도라고 해서 꼭 기도시에 나와 있는 것만 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잠자기 전,

가족 전체가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유산이 아닐는지요.



  넷째, 교회 출판물을 읽도록 합시다.  2,000년 전에 쓰여진 성서를 오늘 우리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가르쳐 주는 것은 교회의 공식 문헌과 신학자들의 글입니다. 

 이러한 글들의 도움 없이 균형있는 싱앙 생활을 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성서도 잘 읽지 않지만 교회출판물들은 더욱더 읽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때문에 타종파의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도한다고 합니다.

 

다섯째, 자신의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헌합시다. 개신교 신자들이

자신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칠 때, 그들 역시 돈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겠으나,

그러한 봉헌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합니다. 

행동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는 성서의 말씀에 따라

 각자 자신의 처지 안에서 신앙의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수단을 찾도록 합시다.

 

신앙은 끝없는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자신이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기쁨도 그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김인영 신부님'의 저서 「제대와 감실의 싸움」 전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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