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돈을 바쳐야 미사 효험이 ……

2006. 10. 27. 오전 7: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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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돈을 바쳐야 미사 효험이 ……


 




입시철이 가까울수록 부모님들은 더 바빠집니다.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보다 더 애태우는 분들이 부모님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죄인이 된 양,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고,

밖에서는 자기 아이의 시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해보고 싶어집니다.

점을 치러 간다, 효험이 있다는 부적을 산다.

또는 이 방면에(?) 영험을 갖고 있다는 소위 도사님들을 찾아다닙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가톨릭 신자들도 그다지 예외는 아닌 듯싶습니다.

수험생을 둔 어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그 어머니가 어느 날 본당신부님께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보통의 미사예물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그 어머니가 어느 날 본당신부님께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보통의 미사예물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이의 합격을 위해서”라는 지향과 함께! 그러나 불행히도 아이는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 어머니가 분개한 얼굴로 신부님을 찾아와서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신부님의 하느님은 능력이 없었으니까 내가 준 돈 도로 돌려주세요!”

많은 신자들이 미사예물의 뜻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고, 또 다른 이들에게 나쁜 표양을 주는 것 같습니다.

초기 교회 신도들은 봉헌 때 자기가 받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빵, 포도주, 우유, 꿀 그밖에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주례자(사제)는 이중에서 얼마를 떼어 미사 때 사용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보관하였습니다.

자신의 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사제의 생활과 교회의 운영 및 사제의 사목활동(특히 자선사업)을 돕는다는 뜻으로

신도들은 물건을 가져왔고, 이것이 9세기 이후에 돈으로 대치하여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같이 자기가 갖고 있는 물질의 일부를 바치는 것은

자기가 받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면서

동시에 교회의 활동을 경제적으로 돕는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이를 위해, 혹은 어떤 일의 성사를 위한다는 특별 지향을 갖고

사제에게 미사를 청하면서 예물을 바치기도 합니다만 그

렇더라도 그 본래의 뜻은 교회의 사목활동을 경제적으로 돕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사제는 이 같은 특별 지향을 위해서 혼자 기도할 뿐입니다.

미사예물의 정신이 이렇다면, 효험이 있다는 사제를 찾아다니거나,

미사예물의 액수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일입니까?

더더구나 미사는 “공동체”의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미사 지향을 둔 그 미사는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미사 지향판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고, 미사 중에 신부 입에서,

“이 미사는 누구누구를 위한 미사입니다”라는 말을 들어야만 만족해하는 신자는

혹시나 하느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단자는 아닌지요.

미사예물의 본뜻을 따르고자 한다면, 가난한 사제와 교회에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함이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생활이 넉넉한 도시의 교회에서 가난한 시골에 미사예물을 모아서 보내주는 식으로..

 

-'김인영 신부님'의 저서 「제대와 감실의 싸움」 전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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