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승복합니다.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걸 보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다는 말에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의 지난날을 이야기하셨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표현은 나타나엘의
‘과거를 이야기하셨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말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시골에서 무슨 걸출한 인물이 나오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문화 시설이 전무했던 나자렛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로마 문화가 판을 치던 시대에 예루살렘 말고는
그 어디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어쩌면 나타나엘은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읽으셨고, 그의 소년 시절과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표현입니다.
그러자 나타나엘은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
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였습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꿈을 이루어 주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어 주실 분이십니다.
그분의 제자로서 제대로 살아가면 우리가 바라는 많은 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