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헌금함에 예물을 봉헌하는 사람들을 보시다가 가난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렙톤은 금도 은도 아닌, 정확하게 얼마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매우 낮은 단위의 쇠로 만든 화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칭찬하십니다. 당시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함께 생활 보호 대상자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봉헌한 액수가 비율적으로 부자보다 더 높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친 돈’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의탁을 드러내는 그 ‘여인의 행위’ 때문에 칭찬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가지고 있던 돈이 모두 해서 렙톤 두 닢이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궁핍하고 가난한지를 말해 줍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당장 살아야 할 내일의 불안도, 하루하루 자신의 고단한 삶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봉헌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생존 욕구보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이 더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에서 헌금을 바치는 것은 ‘적선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바치는 ‘봉헌 행위’입니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나 봉헌할 때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많이 계산하고 거래를 하고 있는지요? 체면을 세우거나 생색을 내려고, 또 뒤에 자신에게 돌아올 보이지 않는 유익을 따지며 봉헌을 하지는 않는지요? 그런 돈은 아무리 액수가 크더라도 가난한 과부의 헌금보다 못합니다. 아름다운 봉헌은 삶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늘 감사하고 삶을 주님께 의탁하며 바치는 헌금이 가난한 과부의 봉헌과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