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1/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15. 6. 19. 오후 2:22:34

글자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마태10,7-13)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숲속의 땅’이라 불리는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는 인구 1천3백만의 소도시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산지대로 살기가 좋은 곳인데 중남미 국가 중 가장 치안이 불안한 국가입니다. 일일 평균 약 20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출산에도 불구하고 인구증가는 없다고 합니다. 문맹율이 80%가 넘는 가난의 고통이 너무도 큰 나라입니다.


 


이곳에 선교사제로 파견되어 있는 홍 가브리엘신부는 사제생활비 1천불이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되어 버림받은 어린이 10명을 데리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커졌습니다. 150명이 숙식할 수 있는 고아원 ‘천사의 집’과 250명의 배움을 감당할 수 있는 ‘미리내 초등학교’를 건립하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신부는 미국 뉴저지에 피정을 겸한 후원회원을 모집하러 나섰다가 공항에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처지가 되었는데 검진결과 “영양실조”였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려면 그들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먼저 쓰러지면 그들은 어쩌란 말인지요? 신부님은 또 하나의 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설에 올 수 없는 그야말로 오지에 버려진 어린이들을 위해 살고 싶답니다. 항공요금이 비싸서 3 년에 한 번 겨우 한국에 나오면서 신부님은 말합니다. “한 번도 굶어 본 적이 없고, 돈 걱정을 해본 적도 없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을 주님께서 채워 주셨고 앞으로도 채워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앞으로도 그 믿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 것이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않았고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않은 채 주님을 차지한 홍 신부님은 ‘한 눈 팔지 않고’ 가야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열성으로 그는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8.)는 말씀에 따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몸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내어놓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잠시 관리자로서 관리하는 것일 뿐인데 왜 욕심을 부리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를 몸으로 받아들이며 희생의 삶을 사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도의 열성으로 선교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면서...... 하느님을 차지하는 기쁨에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교황 강론의 전문을 다음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평화라는 말은 우리가 방금 읽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여러 번 울려 퍼집니다. 평화는 강력하고 예언적인 말입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꿈이며 인류를 위한, 역사를 위한, 모든 창조물을 위한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사람에게서 그리고 악한 존재들의 반대에 직면하는 계획입니다. 우리 시대조차도 평화를 향한 열망과 평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헌신은 이 세상에 현재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현실과 부딪힙니다. 그 무력 충돌들은 조금씩 진행되는 일종의 3차 대전이며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우리는 전쟁의 기류를 감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이런 기류를 선동하고 조장하기를 바랍니다. 주로 다른 문화와 사회 간의 충돌을 원하는 사람들과 무기를 팔려는 목적으로 전쟁에 투기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난민 캠프에 있는 아이들,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전쟁은 파괴된 집과 거리와 공장들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전쟁은 산산이 부서진 삶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것을 경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얼마나 많은 파괴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경험해 왔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하느님 백성의 외침, 선의를 가진 모든 남성과 여성의 외침이 다시 한번 이 도시에서 울려 퍼져 나갈 것입니다. 결코 다시는 전쟁은 안 된다!


 


이 전쟁의 기류 속에서 구름을 뚫고 나오는 한줄기 햇빛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에서 울려 퍼집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마태오 복음 5,9) 이 말씀의 힘은 언제나 모든 세대에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평화를 설교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평화를 선언하는 것은 심지어 위선적인 방법 또는 정말로 기만적인 방법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됩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즉 그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것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하고 인내와 경험과 강인함을 요하는 일입니다. 행복하여라, 매일 매일 그들의 행동으로 자애, 형제애, 대화, 자비의 실천과 마음가짐으로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 이들은 진실로 “하느님의 자녀로 불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에서 평화를 씨 뿌리시기 때문입니다.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평화를 누리도록 이 세상에 그분 아드님을 씨 뿌리셨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것은 매일, 한걸음 한걸음 결코 지치지 않고 해나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어떻게 이 일을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낼까요? 예언자 이사야는 우리에게 간결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37,17). 불가타 성서의 Opus justitiae pax(“정의의 결과는 평화”)는 교황 비오 12세가 선지자적인 영감으로 채택한 중요한 모토가 되어 왔습니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입니다. 이곳에서도 그렇습니다. 선언되고 상상하고 계획된 정의가 아닌…… 오히려 실천하는 정의, 살아 내는 정의. 복음은 우리에게 정의의 궁극적인 완성은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오 복음 22,39 로마서 13,9).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진실로 이 계명을 따를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이 변화하는지요! 우리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내 원수가 사실은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같은 마음,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바라 보는 사람들. 우리는 하늘에 계신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는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7,12 참조)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콜로새서 3, 12- 13)


 


이 마음가짐들은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 가는 바로 그곳에서 평화의 아르티장(artisan,장인)이 되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속여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잘못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도덕적 반성에 빠질 수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마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영과 함께 이러한 마음가짐들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기실 수 있고 우리를 그분 평화의 진정한 도구로 삼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과 화해되기만 한다면 인간은 평화의 아르티장(artisan,장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주님께소박한 마음의 은총을, 인내의 은총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일하는 은총을, 자비로워지며 평화를 위해 일하고 전쟁이나 불화가 아닌 평화를 씨 뿌리는 은총을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이 행복을 가져오는 길이며 이 길이 주님 축복을 받는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바티칸 라디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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