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지켜 본 증인인 동시에, ‘참회의 성녀’로서 수많은 전설에 의해 덧씌워져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을 매료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지위에 대해 재검토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복음서에 총 13차례 등장한다.
갈릴래아 호수 서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막달라는 염색업과 직물업이 발달한 도시로서 특히 다른 지역들보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곳이었다. 이러한 곳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마리아 막달레나의 생활에 대하여 성서에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20세기에 나그함마디 사본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 복음서》, 《토마스 복음서》(도마 복음), 《필립보 복음서》(빌립 복음서)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영지주의 외전들 속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와 친밀한 관계일 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대등한 예수의 제자로 등장한다. 그녀만큼 중요한 제자가 《사도행전》에서 사라진 이유는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질투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막달레나 마리아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베드로와 경쟁을 하게 되자 베드로는 “마리아에게 저희 곁에서 떠나라고 하소서”라고 예수에게 간청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로 인해 최근의 성서 연구학에서는 예수와 동행하였던 여인들의 역할이나, 마리아 막달레나의 지위를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자코모 다 바라라제의 《황금전설》 등에 의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매춘부 출신으로 한동안 쾌락에 탐닉하다가 예수를 만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막달레나에게는 창녀도 의미하는 ‘죄의 여자(the Sinner)’라는 별명이 주어지고, 르네상스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의 회개를 주제로 하는 회화나 조각이 많이 제작된다. 이는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창녀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이후 1400년 가까이 마리아 막달레나는 매춘부로 낙인찍혔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591년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였다고 강론했다. 이 이미지는 로마 가톨릭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지적되었으며, 1988년에서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격상시켰다.
옛날에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마르타(막달레나의 여동생)를 동일 인물로 보았었다. 한편 동방 정교회에서는, 이미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만년에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스에서 살다가 죽어, 훗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유해가 이장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로 바뀐 것은 교회가 조작한 것이며, 마리아 막달레나의 지위를 복권해야 한다는 일부 여권주의 수정론자들의 주장이다. 예수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최초로 예수의 부활을 지켜본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의 오명을 쓰게 된 데에는 그가 남성 중심적인 기독교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단으로 분류된 한 복음서에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와 경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남성들이 중심인 교회에서 질투의 대상이었으며 남성으로 이루어진 성직자들이 여성인 그녀를 창녀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소설 《다빈치 코드》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소설 이전에 헨리 링컨, 리처드 레이, 마이클 배이전트가 공저한 《성혈과 성배》(ISBN-89-54403-42-5)라는 책을 통해 나름대로 가설과 논리, 증거를 제시하며 제기된 바 있다.
예를 들어, 고대에는 신성한 왕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왕족인 신부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는데,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기름 붓는 여인(신부)은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이들은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가 성적 의미도 담고 있다고 본다. 남근의 상징인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이는 여신의 대리자인 여사제로, 이 이야기는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사건 중에서 에로스를 가장 깊이있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던 기간에 예수의 피를 잔에 담아 배를 타고 서유럽으로 가져갔다는 전설도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된다. 알렉산드리아로 피난한 뒤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라는 프로방스로 가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이 지역의 여성들만큼은 중세 시대에 상속권을 인정받아 남성들처럼 많은 봉토와 영지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권리를 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예수의 신성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로마 교황청이 이단 심문을 통해서 수천 명의 프로방스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진위 여부를 두고 논란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