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03. 11. 30. 오후 8:01:20

2
글자

나를 굴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이들에게...

 

 

빈 밤송이, 눈에 띄는 밤송이,

빈 컵, 바위, 나무, 담배, 잠수함,

 

햇빛, 꽃, 진흙, 세잎 클로버, 네잎 클로버,

불, 열매, 시든 풀, 지하철, 계절따라 변하는 나무,

 

잡초, 또 다른 잡초,

돌맹이, 그리고 또 다른 돌맹이...

 

어딜 가든 언제든

나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그대들...

 

가지런히 정리된 슬리퍼들에 담겨 있는

그대들의 마음과 사랑, 꿈을...

 

떠나는 순간까지, 떠나고 나서도,

피정을 진행했던 마리수산나 수녀님을

 

여러 번 감동시켰던,

우리 신부님과 그대들의 아름답고 정돈된 모습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

이 11월의 마지막 날 밤에 글을 남깁니다...

 

늘 아름답고 조용하게,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세레나 자매님, 율리 자매님, 그리고 총무님...

 

주일 오후 쉬는 날에도

축하미사에 함께 해 준 엘리사벳 자매님 부부, 말가리다 자매님, 데레사 자매님...

 

늘 아쉬울 때마다 힘이 되어 주고,

멋진 풍선 장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는 동균...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하게 친해진

안나마리 수녀님과 쎌 식구들,

 

어제, 늦은 밤까지 함께 해 주시고 밤길 달려가신 신부님,

오늘, 소박하지만 사랑 담긴 우리들의 축하를 기쁘게 받아주신 신부님,

 

모두모두 많이많이 감사합니다...!!

 

비록 몸으로는 함께 하진 못했지만,

마음으로 우리들과 함께 머물렀을 레지오 단장들 모두 기억합니다...

 

보랏빛 기다림 속에서

세상 사람들보다 먼저 새해를 여는 우리들의 복됨을...

 

이 모든 걸 허락하신 하느님께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각자의 마음 안에

사랑의 왕으로, 평화의 왕으로 새로 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행복한 대림절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좋아하는 시 한 편 올립니다.

 

-----------

 

편 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 쓰면 한 귀절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 김 남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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