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다."
이 말은 절대로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말이 아니다.
마음이 들뜨고 얼굴이 발그스레하게 물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보,라는 말은 순수한 그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바보같은 사람은 자기 이익을 챙기는 계산을 할 줄 모르고, 남들에게
욕을 먹고 따돌림을 당해도 원망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바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은......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의 내 느낌은 이랬다.
"짱개영화가 웬 최루성 멜러? 놀구들 있군." (그렇다고 내가 중국어권
영화에 반감을 갖고 있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다. 10라 좋아한다.
그럼 중국 배우들을 혐오하는가? 아-니.
정이건[중화영웅]이 내 이상형이다.)
포스터를 보았다. 채널 V에서 가끔 구경한 듯한 평범한 얼굴이지만
동양적으로 찢어진 눈이 참으로 인상적인 ’임현제’와 예쁘기는 한데
백지영 뺨치는 가래끓는 목소리의(확인하고 픈 사람은 ’파괴지왕’을
보시라!) ’장백지’가 분위기 만땅으로 잡고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이 영화 망하지- 싶었다.
그러나, 흥행돌진! 100만 돌파!! 감성매진행렬!!! 따위의 전적은
비록 세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괜찮다 싶은 수익을 거두었다.
"하여간 우리나라 여자들은 우는 영화라면 다 좋아한다니까, 쯧쯧!"
... 세월이 흘러 TV에서 주말의 명화로(개나소나 명화냐) 그 영화를
때린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TV에서 트는 영화,
한 마디로 볼장다 봤다는 것 아니겠는가. 비디오 가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으며 진열대 구석으로 밀려나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
만지기조차 겁이 나는... 물론, 나는 다른 재밌는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저께 유선방송에서 틀어주는 그 망할 영화를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고스란히, 자리 한번 뜨지 않고 보고 말았다. 게다가, 게다가!
후반부에서 그만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그렇게 비웃던 그 영화를
보며 말이다!
너무나도 창피하지만 인정한다.
사실, 영화의 시나리오나 구성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최악이었다.
(특히 엔딩에서 임현제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장면의 특수효과는
정말이지... 전설의 고향을 능가하는 쓰레기였음을 알린다.)
그러나 푸르스름한 배경이 돋보이는 여러 비주얼 컷들은 좋았다.
수영장 씬 이라든가... 둘의 사랑이 순수하다는 느낌을 전달하는데
적절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매력은 그 평범하기 그지없는 임현제의
바보지수 레벨 1000은 너끈히 되어 보이는 표정과 행동들이었다.
정말 어찌나 바보같은지...
영화에서 양파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보거나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장애인이다. 그가 가진 것은 청력과 섹스폰 연주, 그리고 착한 마음씨
정도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기에는 충분했다.
장애인으로 연기한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의
순진한 표정은 매력만점이다. 게다가 늘 웃고 있는 얼굴이라는 점이.
후에 시력을 찾은 몸으로 세상에 왔을 때는 이런저런 어두운 표정을
짓지만 보이지 않았을 때는 미소가 얼굴에 그득하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고 했던가?
오랜만에 감동을 받아서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에 흔적을
남기게 된 점 사과드린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마음이 1mm라도 동했다면 그냥 그걸로 만족한다.
마지막으로 당췌 임현제가 누구야-를 연발하셨을 분들을 위해
사진 띄운다.
영화에서 캡쳐한 것 (위, 아래)

’중국의 윤계상’이라는 칭호를 내려줘도 손색이 없을 멋찐 세숫대야가 아닌가?! (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