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1-26

2013. 6. 8. 오후 9:20:40

글자


차라리 죽었더라면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포로들이 함께 평온히 지내며
            감독관의 호령도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이나 높은 이나 똑같고
            종은 제 주인에게서 풀려나는 곳.

왜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가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이제 탄식이 내 음식이 되고
            신음이 물처럼 쏟아지는구나.
            두려워 떨던 것이 나에게 닥치고
            무서워하던 것이 나에게 들이쳐
            나는 편치 않고 쉬지도 못하며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고 혼란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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