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었더라면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포로들이 함께 평온히 지내며
감독관의 호령도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이나 높은 이나 똑같고
종은 제 주인에게서 풀려나는 곳.
왜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가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이제 탄식이 내 음식이 되고
신음이 물처럼 쏟아지는구나.
두려워 떨던 것이 나에게 닥치고
무서워하던 것이 나에게 들이쳐
나는 편치 않고 쉬지도 못하며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고 혼란하기만 하구나.
욥기 3,11-26
2013. 6. 8. 오후 9:20:40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