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낡은 노트 -- ( 5 )

2006. 6. 23. 오후 9:57:20

글자
 

        -공감대님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





 


고통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고통중에 서로 돕고 의지하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구원은 이론에서 실천으로 옮겨 감으로서 성취됨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이론이나 변명으로 고통을 피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덜어 주려고 애쓰는 사람,

곧 그리스도의 후계자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서로 남의 짐을 져주는 사람” 입니다.


세상 끝날 최후의 심판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부자였는지, 유명인 이었는지 묻거나

무슨 학교,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보다는 우리 가까이 오셔서,


“내가 굶주리고 목 말랐을때 너는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냉수 한 그릇 준적이 있느냐?”


“내가 가난하고 집없이 뗘도는 난민이었고, 막벌이꾼 이었을때

  너는 나를 받아 준적이 있느냐?”


“내가 감옥에 있을때 찿아 온 적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굶고, 억압박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위로 받기를 바라십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요.


“사랑이 없는 봉사는 고통이요, 사랑이 있는 고통은 희생이요,

  사랑이 없는 희생은 비극이다“ 라고 어느 성인은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웃을 위해 봉사 하더라도

마지못해 하거나, 또는 체면이나 명예를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신앙적인 차원에서 볼때 무가치할 뿐 아니라, 헛수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 하셨습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라고 인사하지만

이 수고와 고통에 사랑이 동반 할때, 비로써 희생의 봉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희생도 자기 만족이나, 자기 이익을 위해 하게 될 때,

하나의 비극이 된다는 것을 저나 여러분들은 명심 하여야 겠습니다.

아울러, 명예를 추구하고, 인정 받기를 바라며,

어떠한 댓가성를 바라는 마음은 불평 불만을 하게 되어,

공동체의 친교 분위기를 훼손하기 쉽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서로가 형제.자매로써 생활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받고 소외받는 이들과 연대감을 가지고

곁에 함께 있어 주기를,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사랑이신 성모님과 함께 풍요로움을 맛 보게 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은 영원할수도, 절대적일수도 없는 썩어 없어지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탐하지 말고,

영원히 썩지 않는 천상에 재물을 많이 쌓아 놓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댓글 2

  • 2006년 6월 24일 오전 12:40

    잘!! 읽고갑니다

  • 2006년 8월 20일 오후 10:42

    천상에 벽돌 한장 쌓아 놓을까요, 돼지 저금통에 동전 하나 더 넣을까요 ?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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