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2013. 7. 3. 오전 7: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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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교리전례사목부 ‘성사학교’ 지상중계] (2) 고해성사·병자성사

 

“성사는 신앙의 길 완성하는 도구”

 
▧ 고해성사 - 정훈 신부(서울 아차산본당 주임)

고해성사는 하느님께 내가 저지른 죄악을 용서받는 황송한 자리다. 그러나 고해성사의 목적과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효력을 이용할 줄 모르는 신자들이 많다. 고해성사에 임하는 자세를 반성하기에 앞서 그동안 양심성찰을 어떻게 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신자들은 고해성사와 별도로 자기 나름의 양심성찰을 하는 일이 없다. 게다가 스스로 성찰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 갖는 사람도 없다.

양심은 사람의 외모처럼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다. 그러므로 양심성찰은 개인적인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양심성찰을 연마하고 깨닫는 과정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양심성찰이 완성되는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자신이 해야 하는 신앙적인 과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알맞은 양심성찰의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가장 쉬운 실천은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기도로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일상기도에서 양심성찰을 발전시키기에는 우리의 기초가 부실하다. 따라서 고해성사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 미사의 참회예식에서 자신의 양심성찰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미사의 참회예식은 구조와 기능으로 볼 때 고해성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을 반복하다보면 영적인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 흐름이 고해성사까지 이어질 수 있다. 고해성사는 일상에서 뉘우치는 습관과 참회 훈련의 집적(集積)이다. 일상의 양심성찰이 체험으로 자기화하는 교정을 반복하며 발전한다. 고해성사로 진정한 위로와 참된 기쁨을 느낀다.


 
▲ 정훈 신부
 

 
▲ 강진형 신부
 


▧ 병자성사 - 강진형 신부(서울 번동본당 보좌)

의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왜 병자성사를 하기를 원하는 걸까? 우리는 먼저 병자성사가 갖고 있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병자성사를 감기약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성사는 주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신앙의 길을 완성시켜주는 도구다. 병자성사는 신자들이 병마와 싸우며 하느님께 의지하고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또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한 이에게는 빈약했던 신앙을 살펴보고 다시금 불 지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우리들 삶의 중심은 신앙이다. 신앙의 파트너인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아프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파트너십을 깰 수는 없다. 병자성사는 지금 이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사다.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았다면 마지막까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을 필요가 있다.

병자성사는 삶의 중요함을 알게 해주는 성사다. 하느님과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의 드라마에서 힘겨운 순간과 마지막을 이끌어주는 힘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해 봐야한다.


정리 이지연 기자 (mary@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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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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