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의 트라이애슬론 아이언맨 코스완주기(펌글)

2005. 9. 3. 오전 11:51:11

글자

+찬미예수님

 

트라이애슬론 아이언맨 코스 완주기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폭이 있게 마련이다.
그 기폭은 행복할 수도 있겠고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내 삶에서는 어려운 순간이 더 오래 기억되고는 한다.
대학 입시의 낙방과 재수생활, 부모님의 타계, 직장 퇴출 등...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기폭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20대 후반부터 월급쟁이 노릇을 했으니 부서이동이나 진급 그리고 보직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음고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장 마지막 마음고생은 50대 중반에 보직을 놓을 때였다. 혹시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정작 당하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가 여간 힘든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소위 우울증이라는 늪에서 헤매었지만 용케도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운동요법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우울증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운동 수단으로 아침 신문배달을 시작한지 2년만인 1997년 가을 춘천마라톤대회에서 하프 코스를 완주하였다. 이듬해 봄에는 경주 동아마라톤대회 풀코스에 출전하여 그야말로 고생 끝에 제한 시간 내에 완주를 하였다. 마라톤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야말로 혼자서 무지몽매한 방법으로 훈련을 하여 무릎 부상을 평생 달게 되었고 기능성 운동 용품이란 것도 전혀 모르는 채 무조건 달리기만 하였던 것이다.

달리기를 통해 아니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직장에서의 나이 먹은 평직원의 자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직장의 업무 보다는 점차 달리기에 집착하게 되었다.

덕분에 호노룰루마라톤대회와 보스턴마라톤대회에도 다녀왔고 소위 100 km 울트라마라톤도 완주해 보았다.

요즘처럼 취직하기 어렵다는 시기에 직장의 근무가 61세까지로 정년에 이르게 된 것도 어쩌면 다른 이들에 비하면 여간 고맙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다.

주위의 먼저 퇴직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퇴직 후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이 경제적 자립과 일거리라고 했다. 많은 선배들이 퇴직 전후로 그 동안 미뤄두었던 질병으로 몸을 상하고 경제적 지출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 정년이 내게 다가 온 것이다. 겉으로 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퇴직 이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못 이룰 때가 종종 있게 되었다.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환갑이라는 나이에 이르게 된다. 애써 외면을 하려해도 장성한 자식들이 부모의 환갑을 짚고 넘어가려고 하니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환갑에 이르는 해에 나는 불연 듯 새로운 도전을 선언하였다. 트라이애슬론에 대한 도전이다. 트라이애슬론이라면 수영, 자전거, 달리기 3 종목으로 달리기는 마라톤 풀코스를 30회 이상 완주하였으니 백지상태인 수영을 위해 새 해 벽두부터 수영강습에 들어갔다.

세상에 수월한 일이 있으랴 만은 나이 들어 배우는 수영이 물에 대한 공포심과 유연성 부족으로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나는 새벽반 강습에 이어 점심 시간에도 그리고 퇴근 시간 이후 자유 수영까지 합해 하루에 3 번씩 열심히 수영을 습득하였다.

자전거도 제법 큰 비용을 들여 구입해 2월부터 도로 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4월의 보스턴마라톤대회 참가로 3주일 동안 북미주를 여행중이어서 수영과 자전거 훈련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5월의 통영트라이애슬론대회 참가를 하게 된 것이다. 올림픽 코스이니 수영 1.5 km, 자전거 40 km, 달리기 10 km 였다. 그러나 수영 훈련이 부족하여 수영에서 첫 번 째 모퉁이를 돌아서 코스를 이탈하여 코스 안쪽에서 헤매다 실격을 당하고 말았다.

참가자의 안전을 위해 내려진 조치였겠지만 무척 서운했고 더욱 분발하여 한 달 뒤의 속초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여 무사히 첫 완주를 할 수 있었다.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소위 아이언맨 코스에 도전하기 마련이다. 내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수영 3.8 km, 자전거 180 km, 마라톤 42.195 km.

수영과 자전거 훈련과 5월부터의 각종 대회 참가 프로그램의 조화를 이루며 내 딴에는 열심히 훈련을 하였다. 아이언맨 대회 참가를 위한 사전 실내 수영장 3.8 km 수영 심사에 겨우 통과하였고, 아이언맨대회를 앞 두고 최종 바다 수영 3 km 인 올림픽 코스의 2 배인 대회에서도 무사히 완주를 할 수 있었다.

8월 28일의 제주 아이언맨대회 참가를 위해 나는 20개월을 벼려온 것이다. 더러는 이 대회 참가를 위해 1년을 기다린다고 했지만 나는 이 대회 참가를 위해 인생 61년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트라이애슬론 대회 참가에 임박하면 나도 모르게 신경과민이 되는 모양이다. 첫째 바다 수영에서 살아 나와야 한다는 것과 자전거 경기의 안전이 늘 걱정이기 때문이다. 작년 5월 장거리 자전거 훈련에 나섰다가 기량 미숙으로 자전거 전복 사고로 의식을 잃고 119 신세를 졌던 공포심이 늘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30년 동안 내 삶의 동반자로 대회를 앞둔 내 모습의 불안에 아내가 더 마음 고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내외는 애써 무심한 척 하다가도 자주 다투고는 한다.

이런 아내를 위해 나는 제주 아이언맨대회 참가를 위해 여정을 느긋하게 잡았다. 금요일 제주에 도착하여 콘도미니엄에 숙소를 정하고 대회장에 들려 전야제에 참석했다. 이튿날 대회 등록 후 그 동안 몇 차례 벼르다 날씨와 일정으로 가지 못하였던 마라도 관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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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후 대회설명과 자전거 거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저녁 식사를 하고 화북 성당에 미사를 보러갔다. 대회 일은 가톨릭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 성인의 날이다. 내 세례명이 아오스팅인 것은 성인 가운데 8월 생으로 내게 천주교 교인으로 사표가 되실 분을 정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이 대회일과 겹쳐 토요일 특별히 미사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아내와 대회 참가와 경기에 대해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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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들어와 밤 늦게 스페셜 푸드와 지참물을 챙기고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2시 가까이 되었다. 취침 약 3 시간 정도. 나는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행장을 챙겼다. 아내도 진작부터 잠이 깨었다가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다. 아내는 대회 참가하는 나를 위해 찰밥을 지었다.

숙소인 콘도미니엄에서 대회장까지는 약 30여 km 떨어져 있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새벽 5시 15분 경이다. 아직 참가자들이 그다지 도착하지 않았다.

스페셜 푸드와 러닝용품을 맡기고 자전거에 보충식을 테이프로 매달았다. 물통도 채우고. 운동 시작 1년 여로 제법 낮 익은 참가자들과 인사와 덕담을 건넸다.

아침 7시. 중문 해수욕장 백사장. 나는 힐끗 뒤를 돌아 아내의 모습을 바라다 보았다. 아내에게 수영 경기를 마치기까지 최소한 1시간 30분이 걸릴터이니 출발 이후 편한 장소를 찾아 쉬라고 당부하였지만 아마 아내는 1000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의 물장구 속에서 남편이 나를 구분하려고 되지도 않는 노력을 기울이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을 것이다.

출발 200여 미터 전후에서 앞 선수의 발차기에 그만 수경이 벗겨지고 말았다. 요행히 입영을 배운 덕분에 수경을 고쳐 쓸 수 있었다. 몸 부대낌이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전방 부표 확인을 하면서 코스 이탈도 거의 없었다. 중문 앞바다는 무척 맑았다. 겁 없이 노니는 물고기, 해파리 등에 취한다. 주위가 좀 한가해지자 자는 문득 성 아우그스티누스 축일을 기억했다. 그리고는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첫 바퀴를 마치고 백사장에 올라섰다. 한 번에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내는 나를 찾느라 연신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시집 간 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아내를 불렀다.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는가.

두 번째 랩은 그야말로 한가하게 오른쪽으로 코스 로프를 끼고 여유 있게 팔을 휘저었다. 몸이 가볍게 미끌어져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물고기와 해파리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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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마치고 백사장으로 올라서니 아내가 카메라를 들고 함께 따라 나섰다. 샤워를 마치고 바꿈터에서 느긋하게 자전거 경기 차림을 하였다. 자전거를 향해 달려가며 나는 아내에게 다시 7시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어디서 휴식을 취하다 돌아오라고 당부하였다.

수영에서 살아나왔다는 안도감인가 몸이 가벼웠다. 중문을 벗어나는데 승용차가 다가오며 응원을 한다. 아내가 주위의 도움을 받아 렌트카로 대회장인 월드컵축구장으로 이동하면서 응원과 촬영을 하는 것이다.

서귀포를 빠져 남원, 표선에 이르는 바닷가 코스는 일품이었다. 그 동안 훈련으로 에어로바 잡기를 한 것이 경기 운영에 무척 도움이 되었다. 60 km 지점에 이르러 나는 처음으로 보급소에 들렸다. 그 동안  나는 자전거에 매단 보충식과 물로 경기를 진행했다. 90 km 지점의 스페셜 푸드 제공 장소에 이르러 나는 황당한 상황에 처했다. 내 스페셜 푸드가 없는 것이다 아내가 정성들여 준비한 찰밥에 부추김치, 오이김치, 삼계탕, 잣죽 등등....

내 황당한 모습을 지켜보던 서포터즈가 동호인들을 위해 마련했던 죽이랑 김치를 내게 건넸다. 포항철인회 자매님들이었다.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도 주었다. 제대로 감사의 인사도 전하지못하고 서둘러 자전거에 올랐다.

자전거 코스를 달리며 문득 생각을 해본다. 코스 디자인 참 멋지게 했다. 모든 경기 주로의 곁 길마다 대회 관리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그 이름도 유명한 돈네코 언덕. 이틀 전 차량으로 방문은 하였지만 13도 경사의 긴 오르막이다. 먼 발치에서도 자전거에 내려서 걸어 올라가는 참가자들이 더 많았다. 나는 천천히 갈짓자로 페달을 밟았다. 경기를 하면서 터득한 방법으로 오르막에서는 유바를 덮치듯 몸 무게 중심을 앞으로 이동하여 잡는 것이다. 돈네코 오르막을 자전거를 탄체 오른 것이다. 실제로 걷는 것과 타는 것의 이득을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그 동안 대청호 인근 피반령 고개 훈련의 덕을 본 것이 분명했다.

그 이후는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보니 오르막에서 오히려 강했고 평지에서 약한 것 같았다.

그래도 약 4시간 가까이 90 km의 거리를 자전거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고 급수와 급식을 나꿔 채 가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는 내가 신기했다.

내 자전거 훈련의 최장 거리는 100 km를 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문을 지나니 마라톤 코스에 많은 참가자들이 달리기가 한 창이다. 문득 자전거 타기의 피로가 엄습한다.

바꿈터에 도착하여 자전거를 맡기고 탈의실에 들렸다. 두 종목에 10 시간 가까이 걸린 것이다. 나머지 마라톤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했다. 나의 이 번 대회 원칙은 트라이애슬론 아이언맨 코스를 완성하는 것이다. 달리기에 있어 내 무릎은 지난 봄 진찰시 한 달 간격으로 30 cc의 관절액을 배출해야했다. 대회를 앞 두고 대회 참가 여부를 위해 다시 진찰을 받은 결과 대회 참가를 묵인하겠다는 판정으로 나는 대회에 참가했지만 퇴행성관절염과 골극 현상의 진행인 내게 10 시간의 수영, 자전거 경기 후 마라톤 42.195 km의 경기 운영은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은 경기 시간인 7시간을 모두 사용해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로 결정했다. 시속 6 km. 9분 페이스. 마라톤 코스는 14 km 3 랩이다. 급수 보충대가 다섯 군데 있었다. 나는 1랩 왕복을 하면서 이 다섯 군데 보급소에 모두 들렀으니 10번을 들린 셈이다. 그리고 반환점에서 스페셜 푸드를 들면서 다시 휴식을 취했다. 달리기 스페셜 푸드에는 자전거 내 스페셜 푸드가 함께 보관돼 있었다.

첫 랩을 달리다 걷다로 치뤘지만 두 번째 랩부터는 근전환이 되었는가 꾸준히 달릴 수 있었다. 그래도 매 랩마다 아내를 스쳐지나갈 수 있으니 서로가 무척 다행이다.

마지막 피니쉬 세레머니를 위해 나는 대전에서 준비해간 한 연구소의 엠블렘을 아내로부터 전해 받았다. 10년 아래 객지 벗이 기관장인 그에게 10 여년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우정의 선물인 것이다.

15시간 45분 13초를 소진하고서 나는 아이언맨으로 제련된 것이다.

수영 3.1 km : 1:33:22
자전거 180.2 km : 7:55:54
마라톤 42.195 km : 6: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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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거 주사와 맛사지 그리고 수프 한 그릇을 비우고 나는 바꿈터의 자전거와 짐을 챙겨 30여 km 떨어진 숙소를 돌아왔다.

4 시간 가까이 잠을 잔 뒤 평상시처럼 나는 6시 전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가벼운 운동복을 세탁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듬뿍 쏟아지는 콘도미니엄에서 아내와 아침 식탁에 마주 했다. 아내에게 고맙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해야할지 모르겠다.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성산의 우도 관광에 나섰다. 아내와 커플 바이크를 빌려 타고 섬 일주에 나선 것이다. 생전 처음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아내와 한적한 해변가를 달리며 나는 노래를 불렀다. 푸는 바다를 곁에 두고 나는 ‘그대 그리고 나’를 목청껏 불러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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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숙소를 중문에 정하고 마지막 시상식에 참가하여 나는 제주 아이언맨 대회의 시작과 끝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비행장으로 오는 길에 이시돌 농장의 성삼위일체 대성당 예수 수난 야외 조각품을 관람하고 제주항 입구의 식당에 들려 갈치국으로 요기를 했다. 작년에 들렸던 식당으로 천연두 자국이 인상적인 주인 아주머니의 인사가 깎듯하다.

청주 공항에 도착하여 내 소형차에 짐을 실으며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다시 발견하였다.

그래 트라이애슬론 아이언맨 대회를 치뤘지만 세상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그저 내가 살아온 61년의 하루 일과에 불과한 것이다. 내 인생의 한 기폭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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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이 풀리며 나는 내 년 대회를 위해 다시 훈련을 벼리리라.

댓글 3

  • 2005년 9월 3일 오전 11:51

    감동 그자체네요. 인생이나 달리기나 !!!!!!!!

  • 2005년 9월 3일 오후 12:13

    재욱아!!!!!! 이건 책 이잔어.....읽다가 잠들어부렸다.......ㅎㅎ

  • 2005년 9월 10일 오후 4:47

    정말 책이네요~

*^^*한마음출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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