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주 이야기] 뭉툭해진 시어머니 묵주반지
모두의 어머니가 그러하듯, 우리 시어머니 역시 유독 힘든 세상을 살아내셨다.
결혼 후 시아버지는 군에 입대하고, 시어머니는 돈벌이를 위해 홀로 서울로
올라오셨다. 가끔 서울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안 해본 일이 없지…'하시며
여백 담긴 웃음을 짓곤 하셨다. 어머니의 서울살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렇게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다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벌써 8년 전이다. 그날도 달랑달랑 귤을 사 들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점심상을 물리고 앉아 귤을 까먹는데, 어머님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이거 묵주반지에요?"
어머니는 바른 손으로 묵주가 끼워진 손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묵주반지로 보기에는 밋밋하지만, 드문드문 뭉툭한 마디가 일정한 것으로 봐선
묵주반지를 닮은 듯도 했다.
"묵주반지 맞는데, 아이고 이젠 못 끼고 다니겠지?"
"그러게요. 왜 이렇게 뭉툭해졌어요?"
"반지를 빼고 일했어야 하는데, 잃어버릴까 봐 뺄 수가 있어야지."
순간 평생을 쉴 틈 없이 움직였던 어머니의 과거가 스쳐 갔다.
이렇게 철없는 며느리가 또 있을까!
느끼는 것, 이해하는 것, 또 보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모두 비슷한 듯 보이나
별개의 무게를 담고 있음을 알았다. 묵주반지를 앞에 두고 어머님과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 난 그냥 '어머니 고생이 많으셨구나…' 느끼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느낀다는 것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가벼운 느낌들은 '마치
그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다'는 착각마저 보탰다. 가슴은, 가벼운 착각에 빠져 연민
또한 쉽게 만들어냈다. 그렇게 철없는 며느리는 어머님을 감히 이해했다
생각했던 것이다.
삶 속에서 닳아 없어진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냉정하고 매정하게 말하는 듯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묵주, 그 묵주만이 제 몸을 녹여가며 어머니와 발걸음을
맞췄던 것이다. 함께 살아온 것이다.
가만 보니 뭉툭해진 묵주반지는 어머니의 지지대였다. 흘리는 눈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어루만져줬고, 물끄러미 서로 바라보며 '괜찮아 괜찮아' 고개 끄덕여주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따뜻한 위로가 돼주는가 싶다가도 때로는 냉정한 회초리를 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원을 그리며 살지. 고단한 오늘이 끝났다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다시 고단한 내일이 피어나는 것이고. 작은 원, 큰 원, 살아간다는 것은 수없이
원을 그리는 일인 거지. 원을 그릴 수 있는 게 희망인 거야.' 냉정하게 어머니
곁에서 읊조리는 존재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껏 그 묵주반지를 끼고 계신다. "이젠 못 빼지, 죽을 때까지 껴야지"
하며 반지를 쓰다듬는다.
그 지지대에 기대어 원 없이 원을 그리며 살아갈 힘을 얻으셨던 것이다.
동그란 힘, 묵주. 이즈음 그 동그란 힘이, 기도라는 걸 알아간다. 살아가는 일에
멀미가 날 때면, 어머니가 지닌 동그란 힘을 떠올린다. 동시에 내가 지닌 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닳을 준비가 됐다는 묵주반지가 수줍게 나를 올려다본다.
어머니를 버티게 해준 기도의 힘, 그 동그란 힘에 기대어 오늘 그리고 내일을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곧, 봄도 만날 것이다.
결혼 후 시아버지는 군에 입대하고, 시어머니는 돈벌이를 위해 홀로 서울로
올라오셨다. 가끔 서울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안 해본 일이 없지…'하시며
여백 담긴 웃음을 짓곤 하셨다. 어머니의 서울살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렇게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다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벌써 8년 전이다. 그날도 달랑달랑 귤을 사 들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점심상을 물리고 앉아 귤을 까먹는데, 어머님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이거 묵주반지에요?"
어머니는 바른 손으로 묵주가 끼워진 손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묵주반지로 보기에는 밋밋하지만, 드문드문 뭉툭한 마디가 일정한 것으로 봐선
묵주반지를 닮은 듯도 했다.
"묵주반지 맞는데, 아이고 이젠 못 끼고 다니겠지?"
"그러게요. 왜 이렇게 뭉툭해졌어요?"
"반지를 빼고 일했어야 하는데, 잃어버릴까 봐 뺄 수가 있어야지."
순간 평생을 쉴 틈 없이 움직였던 어머니의 과거가 스쳐 갔다.
이렇게 철없는 며느리가 또 있을까!
느끼는 것, 이해하는 것, 또 보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모두 비슷한 듯 보이나
별개의 무게를 담고 있음을 알았다. 묵주반지를 앞에 두고 어머님과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 난 그냥 '어머니 고생이 많으셨구나…' 느끼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느낀다는 것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가벼운 느낌들은 '마치
그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다'는 착각마저 보탰다. 가슴은, 가벼운 착각에 빠져 연민
또한 쉽게 만들어냈다. 그렇게 철없는 며느리는 어머님을 감히 이해했다
생각했던 것이다.
삶 속에서 닳아 없어진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냉정하고 매정하게 말하는 듯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묵주, 그 묵주만이 제 몸을 녹여가며 어머니와 발걸음을
맞췄던 것이다. 함께 살아온 것이다.
가만 보니 뭉툭해진 묵주반지는 어머니의 지지대였다. 흘리는 눈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어루만져줬고, 물끄러미 서로 바라보며 '괜찮아 괜찮아' 고개 끄덕여주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따뜻한 위로가 돼주는가 싶다가도 때로는 냉정한 회초리를 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원을 그리며 살지. 고단한 오늘이 끝났다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다시 고단한 내일이 피어나는 것이고. 작은 원, 큰 원, 살아간다는 것은 수없이
원을 그리는 일인 거지. 원을 그릴 수 있는 게 희망인 거야.' 냉정하게 어머니
곁에서 읊조리는 존재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껏 그 묵주반지를 끼고 계신다. "이젠 못 빼지, 죽을 때까지 껴야지"
하며 반지를 쓰다듬는다.
그 지지대에 기대어 원 없이 원을 그리며 살아갈 힘을 얻으셨던 것이다.
동그란 힘, 묵주. 이즈음 그 동그란 힘이, 기도라는 걸 알아간다. 살아가는 일에
멀미가 날 때면, 어머니가 지닌 동그란 힘을 떠올린다. 동시에 내가 지닌 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닳을 준비가 됐다는 묵주반지가 수줍게 나를 올려다본다.
어머니를 버티게 해준 기도의 힘, 그 동그란 힘에 기대어 오늘 그리고 내일을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곧, 봄도 만날 것이다.
- 조하연 안젤라 (동화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