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이야기

2004. 11. 14. 오후 2:39:05

글자
    맛없는 자장면

    종로의 한 중국집은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
    그 집에 어느 날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간 뒤라 식당에서는 청년 하나가
    신문을 뒤적이며 볶음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아이는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손은 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말 그대로 북두갈고리였다.

    아이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그릇에 자신의 몫을 덜어 옮겼다.
    몇 젓가락 안 되는 자장면을 다 드신 할아버지는
    입가에 자장을 묻혀가며 부지런히 먹는 손자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모양이었다.
    손자가 하도 자장면을 먹고 싶어해 모처럼 데리고 나온 길인 듯 했다.
    아이가 자장면을 반쯤 먹었을 때, 주인이 주방쪽을 보고 말했다.
    "오늘 자장면 맛을 못 봤네. 조금만 줘봐."
    자장면 반 그릇이 금세 나왔다. 주인은 한 젓가락 입에 대더니 주방장을 불렀다.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같지 않나?
    그리고 간도 잘 안 맞는 것 같애. 이래 가지고 손님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
    주방장을 들여보내고 주인은 아이가 막 식사를 끝낸 탁자로 갔다.
    할아버지가 주인을 쳐다보자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자장면이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자장면을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게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
    손자의 손을 잡고 문을 열며 나가던 할아버지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주인이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 고맙구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팔을 붙들려 나가면서
    주인에게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인은 말없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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