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살아 있는 시계들’을 운용하는 방법

2016. 1. 20. 오전 12: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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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살아 있는 시계들’을 운용하는 방법

 

이 책은 확실히 우리의 일상적인 묵상의 주된 원천이 되므로,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겨냥해야 할 목표는 - 날마다 이 ‘시간들’ 중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실천하는 것이니, 그 시간대에 맞추어 나날이 새로운 시간을 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난의 시간들’ 전체를 알게 되고, 각 ‘시간’을 그것이 일어난 시간대에 따라 마음속으로 묵상할 수 있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끊임없이 우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노라면, 바로 예수님의 삶이 우리 자신의 삶으로 우리 안에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날마다 가정이나 모임에서 다른 ‘시간’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니, 이렇게 24일 동안 ‘24시간’을 마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많은 가정이나 모임에서 날마다 바치곤 하는 거룩한 묵주기도에 이어 실행해도 좋다. 좋은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 삶 자체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계속 모욕을 받고 계시니, 배상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24시간’ 가운데 한 시간을 맡아 날마다 묵상하기로 서약한, 24명의 구성원으로 하나의 모임을 만드는 것인데, (여기에 가족들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수난의 시계’가 매일 24시간 전체를 가리키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구성원들이 서로 동의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즉 두 주일이나 한 달 후에, 각자가 실천하고 있는 시간을 한 시간씩 앞으로 당긴다. 예를 들면, 아침 여덟 시부터 아홉 시까지의 시간 (‘매맞으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던 사람은 그 다음 시간, 곧 아홉 시부터 열 시까지의 시간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이를테면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지기로 동의할 수 있다. 이 모임에서 느낌을 나누며 서로 도움을 주고 특별한 지향으로 ‘24시간’ 중 한 시간을 함께 묵상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지향은 예수님 자신의 지향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성체에 대해 저질러지는 모욕에 대한 배상으로, 순결과 그 밖의 다른 것들을 거스르는 죄들에 대한 배상으로, 사제들을 위해서 교황의 지향대로 바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임들은 각 구성원이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책임지는 ‘천주 성의의 다락방’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그 묵상법을 알고 있거니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활화하는 것이 ‘천주 성의의 아들들’의 주된 일들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더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근무 중이거나 잠을 잘 필요가 있어서 낮이나 밤의 해당 시간에 이를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더 편리한 시간대로 옮겨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밤 ‘시간들’ 중의 하나, 곧 새벽 세 시에서 네 시까지의 시간을 맡아 있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미리 묵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따금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나는 희생을 함으로써 그러한 노력도 예수님께 봉헌하는 것이 좋겠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극심한 고뇌에 잠겨 계셨던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사도들을 이렇게 부드럽게 나무라셨음을 기억할 일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마르 14,27 참조 - 역주)

 

이 수난의 시간을 실천한다는 것은 이를 읽고, 묵상하고, 관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는 각자 내키는 대로 수난에 대한 글을 읽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친히 깨우쳐 주신 이 고유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뜻’ 안에 녹아드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그리하면 그분의 내적 삶이, 그 고통스러운 수난 동안 행하신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끊임없이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맡은 사람은 누구든지 날마다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 동안 같은 ‘시간’만 되풀이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주의를 기울여 이에 합당한 사랑을 온통 쏟으면서 행한다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임을 알고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좋다. 그 결과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은총과 사랑의 영구적인 원천이 되리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효과와 약속들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다.

 

이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로운 삶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삶이고, 더욱 좋게도 그분의 내적 삶이다. 그러면 머지 않아,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은 단지 이 ‘시간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점차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하루 종일 이것으로 가득 차게 됨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일을 바삐 하고 있을 때도 그렇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그렇다. 요컨대,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삶을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신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를 당신 자신으로 변화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뚜렷이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우 흥미 있는 일화(逸話) 한 가지를 소개한다. 1914년경, ‘수난의 시간들’이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에는 많은 여인들이 루이사를 찾아 오곤 하였다. 그들은 루이사를 에워싸고 교회 장식용 수예품이나 테이블 클로스 따위를 만들면서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곤 하였고, 그 여인들 가운데는 이를 외울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 무렵, 성 안니발레 디 프란치아가 루이사의 집에 와서, 교황을 알현했을 때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던 것이다. (그는 교황 성 비오 10세의 절친한 벗이어서 자주 교황을 만나곤 하였다.) 성 안니발레는 교황과 함께 있는 동안 그 당시에 그가 보급하고 있었던 책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교황에게 소개하고자 했고, 그래서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시간에서부터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갔다. 한 대목에 이르자 교황은 그를 중단시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부님,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니까요!”

 

천주 성의의 아들 사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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