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의 선물을 받아 가지려면 이를 알고 원해야 한다.
1922년 7월 16일 (제14권)
“너의 뜻은 나의 뜻 앞에서 사라져야 한다.
내 뜻의 거룩함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에는 길이나 문이나 열쇠나 방이 없다.
그것은 만물에게 두루 퍼져 있으니,
누구든지 숨을 쉬기 위하여 마셔야 하고 또 마실 수 있는 공기와 같다.
즉, 이를 원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의지가 영혼이 호흡하는 공기가 되어 영혼에게 생명을 주고,
이 의지의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처럼 거룩한 삶의 방식을 - 피조물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사람들이 어떻게 좋아하며 원할 수 있겠느냐?
다른 덕행들의 성성에 대해서는 온 교회 안에 충분히 알려져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
내가 그와 같은 지식의 증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과 이것이 내포하는 효과와
가치 내 창조적인 손이 사람을 나와 닮은 모습으로
그리기 위한 이 마지막 붓질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가 너에게 말해 온 모든 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의 뜻을 억제하고 나를 삼키려 드는 불꽃을
내 안에 가두며 나로 하여금 창조된 만물이 내게 빚져 있는
완전한 영광의 반환을 지연시키게 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질서 정연하게 출간되기를 바란다.
낱말 또는 구두점이 하나라도 빠져 있거나
문맥이 잘 맞지 않는 구절이 있어도 나에 대한 빛이 아니라
어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내게 영광과 사랑을 주는 대신 아무 관심도 없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주의해야 한다. 내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빠뜨리지 말고 써라.”
그래서 나 (루이사)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전부 종이에 옮겨 적으려면 저에 대해서도 쓰지 않을 수 없어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함께 하나의 길을 만들어 왔는데 이제 와서
나 혼자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냐?
더군다나 내 뜻 안에서 사는 길을 내게서 배우며 익혀 온 사람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달리 누구를 가리키며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겠느냐? 딸아,
그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