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뜻은 나의 뜻 앞에서 사라져야 한다.

2016. 1. 20. 오전 12:42:03

글자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의 선물을 받아 가지려면 이를 알고 원해야 한다.

 

 

 

1922년 7월 16일 (제14권)

 

“너의 뜻은 나의 뜻 앞에서 사라져야 한다.

내 뜻의 거룩함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에는 길이나 문이나 열쇠나 방이 없다.

그것은 만물에게 두루 퍼져 있으니,

누구든지 숨을 쉬기 위하여 마셔야 하고 또 마실 수 있는 공기와 같다.

즉, 이를 원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기만 한다면

하느님의 의지가 영혼이 호흡하는 공기가 되어 영혼에게 생명을 주고,

이 의지의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처럼 거룩한 삶의 방식을 - 피조물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사람들이 어떻게 좋아하며 원할 수 있겠느냐?

다른 덕행들의 성성에 대해서는 온 교회 안에 충분히 알려져 있으니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

내가 그와 같은 지식의 증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 뜻 안에서의 삶이라는 성덕과 이것이 내포하는 효과와

가치 내 창조적인 손이 사람을 나와 닮은 모습으로

그리기 위한 이 마지막 붓질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가 너에게 말해 온 모든 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의 뜻을 억제하고 나를 삼키려 드는 불꽃을

내 안에 가두며 나로 하여금 창조된 만물이 내게 빚져 있는

완전한 영광의 반환을 지연시키게 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질서 정연하게 출간되기를 바란다.

낱말 또는 구두점이 하나라도 빠져 있거나

문맥이 잘 맞지 않는 구절이 있어도 나에 대한 빛이 아니라

어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내게 영광과 사랑을 주는 대신 아무 관심도 없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주의해야 한다. 내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빠뜨리지 말고 써라.”

그래서 나 (루이사)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전부 종이에 옮겨 적으려면 저에 대해서도 쓰지 않을 수 없어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함께 하나의 길을 만들어 왔는데 이제 와서

나 혼자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냐?

더군다나 내 뜻 안에서 사는 길을 내게서 배우며 익혀 온 사람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달리 누구를 가리키며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겠느냐? 딸아,

그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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