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제5권(통권40권) * 천 원의 가치는?

2005. 7. 13. 오후 2: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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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제5권 : 삼위일체 대축일 - 연중 제18주일 >

 

 

천 원의 가치는?

 

4월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수업시간

한 학생에게 요한바오로2세의 장례식과 관련된 교훈과 느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29세의 만학도로 중간시험을 잘 치루지 못해 떨떠름했던 처지였든지 투박

하게 대답했습니다. “텔레비전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인내롭게 유도했습니다. “어쨌든 교황의 선종 소식에 대해서는 뭔가 들

었을텐데 들은 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몇 가지 얘기할 수는 있겠지요!” 그는 잠시 생

각하더니 말을 시작 했습니다. “사실 저는 교황 서거 소식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

었습니다. 저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학교 공부가 끝나면 곧 밤일을 해야 하는데, 어느

날 저는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자려는데 누가 TV를 크게 틀었어요. 잠 좀 자려는데 시

끄러워 엎치락덮치락 하는데 누가 한 마디 하더군요. ‘아니 저 사람이 뭔데 이렇게 야

단법석이야!’ 잠이나 자게 TV 소리나 줄여주시오” 이 때 학생들은 “와!” 하고 웃었습

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하고 궁리하면서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나는 그 학생에게 “어쨌든 한 사람의 죽음

이 전세계적 사건, 곧 보편적 사건이 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까요?” 라고 다시 인내롭게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어

한마디 던졌습니다.

 

“저는 경영학과 학생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어쨌든 사람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힘

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최고입니다. 결국 돈과 권력이 모두입니다.” 학생들은

“와!”하고 또 웃었습니다. 대화의 핵심이 자꾸 빗나가니 어이없었지만 어떻게 합니

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 젊은이들의 현주소이니 말입니다.

 

다시 나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렇지요.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힘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인도의 데레사 수녀가 무슨 큰 권

력과 힘이 있어서 온 세계를 움직였을까요” 그랬더니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데레사

수녀는 1918년생(실제로는 1910년 출생인데, 이 학생은 1918년으로 잘못 알고도 확

신을 갖고 얘기했습니다.) 유고 출신이며 수도자로서 한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헌신한 모범적 신앙인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임을 언급하면서 데레사 수녀를 극찬하

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그는 이어 “어쨌든 데레사 수녀에게도

매력이 있었습니다. 매력, 결국 그것도 힘이 아닙니까?” 하고 말을 맺었습니다. 학생

들은 “와!” 하고 또 웃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학생, 졸업한 후에 어떤 일에 종사하고 싶습니까? 혹시 연

예인, 개그맨인가요?”하고 다그쳐 물었다. 그는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학

생은 웃지도 않고 많은 이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으니 틀림없이 개그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것을 잘 살리며 사세요.

 

그런데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종일관 웃기기만 하면 참된 메시지는 전

달되지 않습니다. 참 메시지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청이 있는데 시험지 마지막에 언급한 학생 개인의 신상에 관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얘기해 줄 수 있겠습니까?”하고 나는 말했습니

다. 그는 시험 문제에 제대로 대답을 쓰지 못해 나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환경을 적

나라하게 기술했습니다. 사실 나는 그 내용을 공개하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좀 망설이다가 내가 계속 재촉하니까 마지못해 응하는 태도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사실 저는 시험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습니다. 중간고사는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타

난 종교사회관, 인간관, 신관, 세계관을 쓰라고 했지만 그 분량이 엄청나서 제대로 읽

지도 못했습니다. 어쨌든지 명작이니 내용은 좋은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명작을 많

이 읽으세요!” 여전히 삐딱한 설명에 학생들은 계속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습니다. “사실 저는 네 식구를 봉양해야 합니다. 학교공

부가 끝나면 저는 학원에 가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어느 날은 밤 1

까지도 학원에서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보통 하루에 4-5시간 밖에 잘 시간이

없습니다. 제 전공 점수는 C가 대부분이고 가끔 D도 있습니다. 결국 CD인 셈이지요”

이렇게 웃기던 그가 이제는 어투를 바꾸어 진지하게 뼈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꼭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토론도 하고, 미팅도 하고 싶고, 여가시간을 즐기고 싶습

니다. 그리고 늘 친구들 하고 어울려 학교 캠퍼스에서 젊음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그

러나 저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옆을 바라볼 시간도 없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

들이 너무 많습니다. 단돈 천 원이 없어 밥을 굶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천

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굶는 사람에게는 천 원은 엄청난 돈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합니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시어 천 원도 없어 고

생하고 굶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계속 웃고 있던 학생들이 이제는 그 누구도 웃지 않

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만일 이 학생이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아마 이 학생을 그저 삐딱하

게 웃기는 분으로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학생이 여러분을 웃기는 그 이면에

는 이러한 아픔과 절규 그리고 진지함이 있습니다. 이 모두를 연계해서 생각하면 참

으로 큰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습니다.”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한 여학생이 질문했습니다.

“선배님, 영어교사이니까 묻고 싶은데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 주세요!”

숙연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고 난 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글쎄,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산속에 토끼와 여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여우가 토

끼보다는 더 잘 뜁니다. 그런데 여우가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토끼는 재빨리 피

해 달아납니다. 그 뒤를 여우가 쫓지만 결국 여우는 토기를 잡지 못합니다. 더 잘 뛰

는 여우가 토끼를 붙잡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토끼는 붙잡히죽습니다.

생존이 걸려 있으니 토끼는 최선을 다해 그야말로 죽어라고 뜁니다. 반면 여우에게

토끼는 그저 한 끼니의 먹이감일 뿐입니다. 한 끼니의 먹이를 위해 뛰는 여우와 목숨

을 걸고 뛰는 토끼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토끼처럼 생존을 걸고 뛰

고 있을 뿐 입니다.” 어색한 질문에 너무도 진지한 대답이었던지 교실 분위기는 다시

숙연해졌습니다.

그날 나는 교황제도에 대한 역사적 진전과정을 설명하면서 누구에게나 순기능, 역기

능, 장단점이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단돈 천 원이 없어 허덕이는 이웃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새삼 생각하며 보장

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잠시나마 깊이 생각했습니다. 신부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5년 5월 8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후원회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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