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제1권(통권36권)

2005. 7. 13. 오후 1:34:34

글자
 

다시 시작하며

 

<가해 제1권: 대림1-4주일-주님 공현 대축일>

 

온 세계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았습니다.

11월 3일 오전, 미국 시간으로는 11월 2일 오후 투표가 한참 진행되는 동안에만 해도

케리가 우세하리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이 빗나가고

부시가 우세하고 오후에는 부시 당선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전해졌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전쟁을 선호하며 꽉 막힌 그야말로

폐쇄적 사고의 부시보다는 그래도 다소 진취적이며 열린 사고를 가진

케리를 미국인들이 선택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달랐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일 뿐 부시를 지지한 사람은 정 반대로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선거 결과로 인해 저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내 나라 우리 대통령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제단 위의 십자가를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앞에 뭐 우리가 할 말이 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배우고 선포한 원리, 부활이란 바로 십자가와 고통의 수락,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락하는 것이라고 수없이 되새기고 외쳤던 그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뭐 별 다른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란 어차피 있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는 수밖에 없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합니다.

왜? 라는 물 음을 제기하는 이 자체가 바로 성숙을 위한 과정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과 현실, 그리고 하느님과 대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라크를 침략한 부시가 북한도 같은 모양으로 압박하거나 침략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은 주변에 중국, 러시아와 인접해 있어 이라크와는 지정학적으로 전혀 다른 조건에 있지만 그래도 ‘핵무기 제조’라는 매우 민감한 주제를 안고 있는 당사국이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부시의 분별 없는 행동이 염려가 됩니다.

 

사실 저는 전 세계인들의 반대와 더구나 교황이 특사까지 파견하면서 전쟁만은 안 된다고 부시에게 호소했을 때 부시는 엄포만 할 뿐 결코 그렇게 무모한 그리고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해에 이미 아프카니스탄 침공이라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었기에 같은 우를 어떻게 연이어 반복하겠는가 하고 상식적으로 추론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시는 상식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대통령에게 영향을 받는 그야말로 약소국의 국민입니다.

100여 년 전 열강의 노리갯감이 되었던 비운의 조선말기 대한제국의 운명이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저 염려만 할 뿐이니 말입니다.

성서에 언급된 그 숱한 전쟁과 침략 그리고 에집트의 종살이와 바빌론의 유배가

한낱 말씀의 전례의 기억이 아닌 바로 우리 현실의 사건일 수 있다는 이 사실에서

 우리는 참으로 깊은 성찰과 큰 긴장감을 지녀야 합니다.

 

대림절, 새롭게 옷깃을 여미며 시온산으로 오릅니다.

그리고 참으로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 희망을 안고 하느님을 기다리는

그리하여 새 하늘, 새 땅을 바로 이 땅에서 이룩하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다시 “adsum”으로 대답하며 제단으로 오릅니다.

 

미사봉헌 때의 마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신부님들과 함께 뜻을 같이 합니다.

 

2004년 11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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