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제3권(통권38권) * 사순절의 성찰

2005. 7. 13. 오후 2:42:25

글자
                                                                   < 가해 제3권 : 주님 수난 성지주일- 예수부활 대축일>

 

사순절의 성찰

 

지난 2월 9일은 재의 수요일과 음력설이 묘하게 겹친 날이었습니다.

글쎄 이러한 일치가 100년에 한 번 있을지 계산해 봄직 합니다.

사실 이날의 미사전례 거행에는 좀 고민이 있었습니다.

단식과 금육일인 재의 수요일은 속죄의 날이고 음력설은 기쁨의 명절이니

우선 그 의미가 대립되어 처음에 무척 고심했었습니다.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재의 수요일을 아예 1주일 늦추어 그 다음 수요일에 거행했으면 하고

생각했었는데 주교회의는 전례위원회의를 통해 각 교구장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결론을 전해주었고 이에 서울교구의 경우는 두 축일의 상충된 의미는 별로 고민하지도 않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난감한 처지에서 뿌옇게 단식과 금육은 관면되니

 재의 예식은 알아서 하라는 식의 공문을 보내고 주보에도 공지했습니다.

단식과 금육이 관면되었다는 것 외에 폭넓은 사목적 배려는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대구의 친구를 만났는데 거기서는 이틀 뒤인 금요일(11일)에

재의 예절 미사를 봉헌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럽, 남미 등에서는 재의 수요일 전에 카니발(carnevale) 축제가 있으니

대구의 경우에는 그런대로 음력설과 재의 예식을 문화적 또는 사목적으로 잘 연계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재의 수요일에 그날의 1,2독서와 복음을 읽고 재의 예식을 거행하면서

동시에 앞서가신 조상, 부모, 형제자매, 친척, 은인 등 사랑하는 모든 가족과 이웃 등을 기억하면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화답송으로는 아예 연도의 시편을 바쳤더니 자연스럽게

이 두 축일의 의미가 연계되었습니다. 사실 조선시대의 전통에 의하면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자식은 죄인이라 하여 베옷을 입고 3년 동안이나 상 기간을 지냈어야 했습니

다. 따라서 재의 수요일의 속죄의 의미와 조상들을 기리는 차례를 통한 기억의 교훈은

나름대로 상통되고 재의 수요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고

조상들을 기억하면서 불효했던 점을 반성하고 그리고 이마에 재를 받으면서 정화의 과정을 거쳤으니

 하느님 안에서 큰 은총과 기쁨을 함께 확인한 셈이 되었습니다.

또한 미사 자체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는 장엄한 행위이고

속죄와 기쁨이 교차하는 전례 기도였기에 애초에 염려했던 재의 수요일의 속죄와 음력설의 축제가

꼭 부딪히는 것만은 아닌 함께 지낼 수 있는 축일임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깊은 고민이 없는 일종의 혼합종교적 형태인지 또는 적극적의미로 참된 토착화인지는

 앞으로 더 깊이 연구하고 또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확인되리라 생각됩니다.


지난달에 언급했던 대로 올해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을사늑약 100주년(1905년)

그리고 감격의 해방 60주년(1945년) 또한 최근에 문서 공개로 알려진 너무도 부끄럽고 어이없는

한일협정 40주년(1965년) 그리고 박정희의 말 한마디가 법이었던 긴급조치 9호와 이른바 인혁당

 관계 인사 8명의 억울한 죽음 30주년(1975년) 또한 광주민중항쟁과 김재규 부장의 희생 25주년(1980

년), 끝으로 남북공동선언 5주년(2000년) 등 참으로 민족사 안에서 획을 그을 수 있는 사건들을 기념

하는 해입니다. 그 중 단연코 해방 60주년 기념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회개와 은총의 이 사순시기에 출애급 해방과 바빌로니아 유배에서의 귀환 등을 연계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늘 출애급 해방 당시 백성들이 사막에서 배고프고 목말랐을 때 모세에

게 대들었던 내용을 상기하곤 합니다.


“차라리 에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죽일 작정이냐.”(출애16,3)


더구나 만나를 먹고도 한다는 소리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고기 좀 먹어봤으면, 에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 늘 눈앞에 선한데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민수11,4-5)


유다인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예 근성과 배은망덕의 한심한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유다인들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사제로서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지녔던 생각과 그동안의

행업을 되돌아본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노예적 삶과 배은망덕의 삶을 살아 온 장본인들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민족사 안에서 성찰할 때에도 우리는 많은 경우에 과거 인습에 안주하는

노예적 삶에 매몰되었을 뿐 고난과 투쟁을 통한 자유와 해방의 삶을 추구하지 못했었습니다. 교회권

력자 앞에서 침묵하고 눈치나 보고 비굴했던 모습, 불의한 정권을 애써 외면하거나 현실에 대해 눈감

았던 일, 더구나 우리는 모두 일제치하에서 숨죽이며 살았던 비겁한 민족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도 결국 미완이었고 1945년 해방될 당시 해외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분들

은 고작 3천여명 내외였다는 것이 한 국사 전문가의 결론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전체 인구 2천여만

명과 비례하여 나눈다면 결국 2만명 중 3명만 목숨을 걸고 일제와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곧 7천명 중 한 명만이 목숨을 걸고 싸운 셈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신자들은 그리고 우

리 사제들이 그 당시를 살았었다면 과연 어떠했을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고 깊이 성찰할 일입니다.


사실 주일미사는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예수님께서 현실 안에서 철저하게 사셨던 고민과 갈등, 마

마찰과 분쟁의 살아 있는 기억 그리고 참으로 ‘위험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사는 별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때로는 졸면서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죽은 행업’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무딘 마음을 후려치고 우리의 심장을 찢는 참으로 결단과 결전의 때입니다.

순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신부님들과 함께 같은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2005년 2월 13일 사순절 첫 주일에

기쁨과 희망사목연구원가족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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