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계시
계시(啓示)라는 말은 '열다' '깨우치게 하다' '인도하다'라는 뜻을 가진 계(啓)자와 '보인다'라는 시(示)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라틴어로는 Revelat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휘장을 열어 제치다' '감추어진 것(비밀)을 알려주다'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계시라는 말의 일반적인 의미는 우리가 일상적인 체험이나 혼자의 힘으로는 알지 못하는 지식이나 깨달음을 의미하는데, 이 계시는 계시를 받은 사람의 마음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적 의미에서 계시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또한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일을 절대자(神)가 가르쳐 주어 알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계시를 구분하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절대자가 직접 알려 주는 직접적인 계시와 직접적으로 계시된 진리를 다시 전해 받는 경우인 간접적인 계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적인 계시와 사적인 계시가 있는데 공적인 계시는 계시된 진리가 어느 종교 집단 전체를 향해서 말하여진 경우를 말하고, 사적인 계시는 어떤 당사자나 종교 집단의 어느 특정 부류만을 위하여 말하여진 경우를 말합니다.
이러한 계시는 구약 시대에는 여러 예언자를 통해서 전해졌고,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하느님의 계시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드러난 계시가 새롭게 이해되고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계시가 처음으로 내려진 것은 지금부터 약 3천8백 년 전 (기원전 18세기)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으로부터입니다. 그 뒤 2천년 동안 아브라함을 시조로 하는 이스라엘 겨레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느님께 계시를 받았고, 그 받은 계시를 순수하게 간직해 왔는데, 계시의 절정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와서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셨을 때였습니다. 계시를 통해 하느님 자신, 즉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확연히 드러나고 완성되었기에 계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라고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과 기원후 100년 경 사도 요한의 죽음으로 공적으로 내리던 계시가 끝났다고 하는데, 이러한 계시들은 성경에 실려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있고, 그 외에도 하느님께서는 대자연과 온갖 만물, 특히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과 만물 속에서 당신을 계시하시는데, 우리는 생을 살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와 자연의 법칙 그리고 신비를 보며 때로는 자연의 아름다움, 우주의 광대함 등등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부분을 느끼곤 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의 질서를 새롭게 바꾸어 놓거나 생명 자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만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스리는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시이고,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이 지닌 양심을 통해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쳤다고 가정할 때 그가 훔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것이 알려질까 봐 불안과 공포를 지니게 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명랑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그리고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접할 때 그것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 도한 애처롭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언제나 선을 사랑하며 행하고, 악은 피하고 타이르는 마음의 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법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기에 우리는 이 양심의 소리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연과 여러 가지 만물, 그리고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무엇보다도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고 부르시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도 교회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하느님을 드러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보다 더 선을 지향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일 때 다른 이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그러한 모습의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