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행 단상

2005. 4. 25. 오전 11:15:10

글자

+ 그리스도의 향기


山에 가보세요.

이른 봄의 북한산은 탱탱합니다. 무언가 음모를 꾸미던 레지스탕스가 거사일을 앞두고 실핏줄까지 팽팽하게 당기는 긴장감을 즐기 듯 모든 것이 부풀어 터질 것 같다고 해야나요. 흙은 흙대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숨을 가득 들이마신 허파처럼 부풀고, 나무는 가지마다 땅 속의 물을 잔뜩 끌어올려 눈깔사탕 가득 문 볼때기처럼 두툼합니다.

그 부풀어옴이 한계에 이르면 틈이 벌어지고 그 틈을 비집고 잎과 꽃이 나오지요. 한창 봄 물이 오르고 있는 북한산도 부풀어오름을 견디지 못하고 그 틈새로 어린 싹들이 머리를 내미더군요.


생명을 토해내는 자연은 이런 점에서 사람과 흡사해요.
산모가 어린 것을 잉태하면 온 몸이 부풀어오지요. 기다림의 절정에서 '응~애' 하며 핏덩이를 쏟아낸 위대한 어머니의 몸은 생명을 잉태해낸 훈장처럼 튼 자욱이 잔뿌리마냥 얼기설기 남아 있더이다. 훌쭈그러든 산모의 배에 남아 있는 '흉터'.
이런 말씀은 애시당초 꺼내지도 마세요. 세상의 어머니는 다들 하느님이세요. 생명을 창조하잖아요. 교리선생 말에 따르면 창조자이신 하느님의 보조자래요. 생명을 창조하는 엄청난 일을 훌륭하게 치루어낸 세상의 어머니들은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다시 봄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틈새를 비집고 돋아난 어린 싹의 생김은 톱니를 닮아 있어요. 산자락에 무성한 물박달나무의 새 잎도 그렇고 그루터기부터 잘려나간 노린재나무의 새 순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얇아졌다지만 겨울을 버텨온 쥐색의 나무가지 거죽을 뚫으려면, 또한 야물게 얼어있던 흙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려면 그 정도의 무기는 갖춰야 하나 봅니다. 톱니처럼 삐죽하게 날선 새순도 차츰 어린 아기의 앙증맞은 고사리 손으로 바뀌겠지요.


지지난 주, 형제봉으로 올라가는 산길의 초입은 아직은 음습한 산그늘에 눌린 쥐색의 나무들이 한적했지만 오를 수록 산 그늘 사이로 노랗게 생강나무 꽃잎이 생뚱맞게 여기저기 피어서 눈을 홀리더라고요. 쟂빛과 갈색으로 먹을 친 수묵화 속에 노란 채색화가 들어온 탓인가 홀연 북한산도 깊은 침묵을 버리고 아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능선을 타고 올라온 안개가 어깨에 걸려 아련한 대동문루 마당을 지나면서 얼핏 김밥 냄새를 맡은 듯 했습니다.
아직은 꽃봉우리가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진달래능선을 내려오면서 내주에나 꼭 쥔 주먹을 펴려나. 전 눈치를 챌 수 있었습니다. 연분홍 꽃 어지러이 흩날리는 화사한 진달래 축제가 막 산 밑둥치에서 올라오고 있음을. 봄비에 곱게 젖은 백련사 앞마당은 복사꽃이 매듭마다 꽃봉우리가 도톰하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이다. 베낭을 풀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다리쉼을 했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지요. 이 비가 그치면 부신 햇빛 아래 소리없이 핀 작디 작은 풀꽃들이 녹두알만 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겠지요.
잘 보세요. 땅끝에 억센 뿌리를 얽어내리며 여린 꽃을 내미는 일년초가 얼마나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지. 천지에 이름모를 풀꽃들이 펼치는 꽃잔치를 누구는 '꽃들의 섹스'라고 하더이다. 무척 육감적인 표현이라지만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치열한 생명의 본능을 이름한 거 랍니다. 멀리 더 많은 씨앗을 흩뿌리기 위해 화장과 분칠을 하고 벌과 나비를 꼬이는 찬란한 섹스의 현장이 봄볕 아래 펼쳐지겠지요. 연분홍 루즈와 보라빛 아이새도우를 칠하고 잘 먹은 파운데이션 위로 상큼한 그늘도 만들고, 샤넬 넘버 파이브로 마감한 샘많은 꽃들의 자랑을 무심히 보셨다면 그대가 죄 많은 게지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이 없음을 고백하는 꼴이잖아요. 사람도 그러한가요?


이따금 비가 오고 바람이 풀밭을 스쳐지나가겠지요. 그 많던 꽃들이 그만 우수수 떨어지면 꽃 진 자리에 차마 더렵혀진 제 발을 내밀 수 있을까요. 어지러이 흩날리는 풀꽃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차고 맑은 슬픔이 산 가득히 내려앉고. 비 내리면 개울물 소리 졸졸졸 그 푸른 심줄 터져 흐르는 소리. 눈을 어지럽히던 풀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이제 지는 꽃은 보지 않겠습니다. 피는 꽃만 보지요.
이런 욕심, 이런 소망, 이런 이기심으로 진정 부활이 가져다 주는 생명의 의미를 알아챌 수야 없겠지요. 후두둑 빗방울을 떨구고 스쳐지나가는 봄바람처럼 마음을 비워야 하겠지요.

봄비가 종일토록 추적추적 내리는 북한산. 계곡을 타고 엷은 안개가 자욱이 올라가고 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봄 산행길의 끝매김은 늘 백련사 앞마당 바위턱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불어 마시며 내려온 산을 올려다 보는 거지요.
백련사 계곡에도 한창 매화꽃의 진홍색과 진달래의 선홍색 꽃잎이 참아온 생명력을 터트리네요. 톡~, 톡~ 겨우내 참아온 기다림이래도 그리움이래도 좋습니다.
그대는 생명의 계절 부활주간에 사순시기를 지내며 소망해왔던 그 무엇을 터트리고 있나요? 부활은 이렇 듯 그 무엇을 소망하고 참고 기다려온 인고의 기억까지 톡 터트리는 생명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을 잘 보내셨다면 생명을 터트리는 그대의 떨림이 진홍색 포도주를 머금은 투명한 크리스탈 잔 소리같을 거예요. 또한 그대의 맑은 영혼은 얼마나 예쁘게 피어날까요.

저 때문에 백련사를 다녀와서 속았다고 따지던 분이 있을 정도로 봄이오고 진달래가 필 때면 제 마음은 늘 백련사 앞마당에 머물지요. 공갈기와라고 시멘트로 틀을 짠 조잡한 기와 위에 퍼런 패인트 칠한 새마을회관같은 절이 무슨 정취가 있겠습니까. 아마 북한산에는 절이 백여 개가 넘지 않을까요? 고풍스러운 삼천사, 승가사, 소림사 , 도선사, 영화사, 일선사, 백화사.... 다 젖혀두고 하필이면 날림 공사한 듯 초라한 백련사에 맘을 빼앗겼느냐 하시면 드릴 말씀 없지만 '하얀 연꽃' 아님 '백송이 연꽃'이란 말인지 하여간 절 이름이 멋 있지 않나요. 아뭏든 백련사 앞마당에 복사꽃이 가지가 휘청일 정도로 만발할 때면 목련은 우아하던 꽃잎을 다 떨구고 그 뒤로 숨가쁘게 펼쳐올라가는 초록의 물결이 진달래 능선과 맞닿는 그 푸르름 속에 외로운 섬 백련사를 전 사랑할 수 밖에 없답니다. 투명하게 울리는 풍경소리는 덤으로 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바위턱 앞의 우물가, 앵두나무 가지끝에 영롱한 빗방울이 싹이 트는 매듭마다 수정처럼 달려있네요. 아무리 궁리를 해도 황홀하게 가슴을 적셔 주는 봄비가 연출하는 방울방울의 보석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를 집어낼 수 있을까요. 수정, 크리스탈, 다이야몬드....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갖다대보아도 무심한 광물질과 비교할 게 아니잖아요.
이 영롱함, 빛남, 기쁨.....환희. 오~ 주님,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 어느 것 하나 당신이 불어넣어 주신 숨결과 절묘한 배려, 어느 것 하나 빠트리신 게 있을까요.


".....우리가 느리고 쓸쓸하게 걷고 있는 동안 나무는 지루한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찬란한 꽃잎으로 바꾼다. 한순간에 핀다.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자만이 봄의, 사랑의, 환희의 탄성을 지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얼굴엔 목련이 핀다."
산행길에서 돌아온 나를 기다린 것은 내 뜨락, 눈 부시게 봄이 옴을 일러주던 목련이 봄비에 젖어 그 많던 꽃잎을 떨구고 말았네요. 우아할 수록 추락은 더욱 비참했어요. 어느 순결한 영혼을 지닌 분이 떨어진 꽃잎을 거두어 땅 깊이 묻어 주었으면 해요.
부질없는 짓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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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댁, 서울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한 벌 맞춰? 별궁리 다 떨다가 에~잇 말어할까 걱정스럽네요. 

바햐흐로 서울은 꽃들의 섹스가 질펀한 야리꾸리한 곳이지요. 한창 목련이 피었다가 지금은 다 떨어지고 산수유도 벚꽃도 끝물이랍니다. 이제는 향그러운 라일락이 연보라빛으로 정원을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고궁에라도 가면 젊은이 서넛이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누가 불러도 사람이 두엇이상 모여서 부르는 합창은 아름답기 그지없어요. 맑은 슬픔이 가신 봄비 온 후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웰컴 비엔나댁! 향그러운 티롤의 장미향기 가득한 얼굴로 뵈옵기를...

댓글 1

  • 2005년 4월 25일 오후 5:13

    아이구 저보고 실망하실 분들 줄 설 것 같아, 제가 나가기가 무섭네요, 저 그냥 아줌마이옵니다, 그냥 호박꽃 상상해 주시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