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족보

2015. 6. 20. 오전 8: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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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 궁금증] 83. 성경에서 족보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구약, 혈통보다는 신앙의 맥 잇는 '계보' 예수 족보에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 담겨


얀 호사르트, '성모와 아기 예수', 1527년경,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성경에는 여러 개의 족보가 나온다. 길게 이어지는 족보를 읽다 보면, 족보가 그저 무미건조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성경 속에 기록된 족보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 저자의 신학적 의도가 담겨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신앙 사건과 체험을 중심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계심을 알게 하려고 역사나 족보의 기록을 사용하고 있다.

유다인들은 예로부터 족보를 '탄생의 책'이라고 부르면서 무척 중요시했다(창세기 5장). 족보는 이스라엘의 기원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됐으며, 또한 그들이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임을 보여준다(창세 1-11).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다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은 뿌리가 하찮은 노예 민족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거룩한 자손'임을 밝혀주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들은 보통 직선적인 족보 형태로 세대별로 한 명씩 기록했다. 이런 족보의 목적은 맨 마지막에 거론되는 사람이 적자의 권리를 상속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족보는 성경의 사건을 담기 위한 그릇이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약의 족보는 혈통보다는 신앙의 맥을 잇는 계보로써 중요하다. 구약성경에서의 족보는 신앙의 계보를 밝히고 이스라엘 종족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간접적인 신앙생활 지침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성경의 마태오 복음(1장)과 루카 복음(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기존 족보와 기록 방식이 다르다. 신약 성경의 족보는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계시로써 약속해온 메시아임을 밝히고 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들려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마태 1,16-17).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나서 여인들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다. 마태오는 여인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언급해 다윗의 후손이 끊기려는 순간마다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마태오 복음에 등장하는 족보에 이미 하느님의 섭리는 남녀를 초월해서 모든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처럼 신약성경의 예수 족보에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참 가족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인간의 혈통보다 더 중요한 새로운 신앙 공동체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35). 하느님의 구원을 위해 믿음의 족보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실 수석비서)




[복음 이야기] (40) 예수님 족보 (상)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이시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라는 신앙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림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예수 탄생’.


유다인들은 조상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다. 그들은 같은 피를 가진 것은 같은 혼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유다인들은 가문의 영속성, 순수성, 권위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계율을 만들었고 율법도 이 원칙에 따라 발전했다. 또 ‘조상 없는 나는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성경 시대 유다인들은 그들 조상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었다. 유다인 풍속을 기록한 예로니모 성인은 “유다인들은 마치 자기 이름을 대듯이 조상의 이름을 댄다”며 “조상을 모르고 지내는 자는 상놈 취급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유다인에게 가족이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그 의미가 훨씬 넓다. 가족을 뜻하는 아람어와 히브리말 ‘아하’는 형제뿐 아니라 사촌과 친척까지도 포함했다. 유다인들은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어떤 행운을 만나면 모든 가족이 기뻐했고, 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면 온 집안이 슬퍼했으며, 불명예스러운 일이 있으면 온 식구가 치욕을 느꼈다. 그래서 유다의 랍비들은 “형제간에 책임을 느끼지 않는 자는 마치 카인과 같은 자”라고 가르쳤다. 가문의 영속성을 지키고 혈연을 유지하는 것은 유다인들 특히 유다인 남자들에겐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1,1-17)로 시작하고, 루카 복음서도 예수님의 족보(3, 23-38)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족보가 어느 누구에 의해 마음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태오와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가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다시 설명하겠지만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명한 성경학자 라그랑주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으로서 흠숭받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참된 인간이다. 그는 로마 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헤로데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산 유다인이다. 그 출생과 일상 생활의 관습 및 지적 행동에 있어서 유다인이었을 뿐 아니라, 그 영적 사명의 근원도 이스라엘 땅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이 사실은 그의 신성한 독창성을 조금도 퇴색시키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프랑스 시인 샤를르 페기는 “그리스도는 유다인, 그것도 평범한 유다인, 당신들과 같은 유다인, 당신들 가운데에 있는 유다인이었다”고 노래했다.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의 양친이 유다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밝힌다.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로마 9.5). 또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의 저자도 “우리의 주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은 명확합니다”(히브 7,14)라고 고백한다. 아울러 묵시록에서도 “나는 다윗의 뿌리이며 그의 자손이고 빛나는 샛별이다”(22,16)라며 예수님께서 유다인이며 참 사람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 저자들도 예수님에 대해 자주 ‘다윗의 자손’(마태 1,1. 20 ; 마르 10, 47; 루카 18, 38)이라 부르며, 예수님께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갈라 4,4), 그 율법에 따라 여드레째 날에 할례를 받으시고 (루카 2,2), 성전에 봉헌된 후 유다인 공동체에 드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말처럼 “그분의 원천은 하느님 안에 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보고 온 도성이 술렁거리며 “저분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군중이 “저분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마태 21,10-11)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요한 복음사가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적 존재 안에서 예수님의 근원을 고백한다. “한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18).

이는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다’라는 고백이다. 이처럼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는 신앙 고백으로 시작된다.



[복음 이야기](41) 예수님 족보 (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시다

예수님의 족보는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 안에서 이해돼야 한다. 그림은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모와 아기 예수, 16세기, 유화 캔버스, 페슈 미술관, 이탈리아.


예수.
메시아이신 주님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를 잉태하기 전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다(루카 2,2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천사가 알려준 주님의 이름 예수는 우리말로 “야훼는 구원이시다” 또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신앙고백과 같은 말뜻을 지닌 이 이름을 많은 유다인들이 사랑했다. 이 이름은 가나안 정복 때 아모리족을 물리치기 위해 해와 달을 멈추게 한(여호 10,12) 여호수아뿐 아니라 집회서의 저자로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와 시라의 아들이(집회 50,27), 그리고 서기 37년부터 70년 사이 4명의 이스라엘 대사제가 사용했다. 또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조상 중에도 엘리에제르의 아들이 이미 이 이름을 갖고 있었다(루카 2,29).

주님이신 예수님은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의 표현처럼 ‘단지 영 속에서가 아니라 육 속에서 당신의 역사와 당신이 걸으셔야 할 길을 이룩하셨다.’ 그 영원한 시작과 ‘시간 안에 육체로 있음’ 사이에는 육화의 신비가 있다(과르디니, 「주님」, 바오로딸 참조). 그래서 마태오와 루카는 복음서에 ‘예수님의 족보’를 서술해 말씀이 사람이 되심을 증언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다윗과 일련의 유다 왕을 거쳐 요셉까지 42명의 이름이 이어진다(마태 1,1-17). 루카 복음은 예수님을 기점으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열거해 다윗과 유다, 야곱, 이사악, 아브라함뿐 아니라 태고 시대 노아, 라멕, 에녹을 거쳐 아담까지 77명의 인물을 나열하고 있다(루카 3, 23-38). 두 족보를 비교하면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마태오는 다윗 왕조의 이름이 족보로 내려오지만, 루카는 나탄에서부터 스알티엘까지 다윗의 아들이지만 왕조가 아닌 다른 아들을 통해 족보가 내려온다. 아울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후대가 또 갈라진다. 마태오 복음에는 즈루빠벨이 아비훗을 낳고 그 후손이 요셉의 아버지 야곱까지 내려가고 있으나, 루카 복음에는 즈루빠벨의 아들 레사에서 요셉의 아버지 엘리까지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가 차이 나는 것에 대해 성경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은 법률상 요셉의 족보를, 루카는 혈통상 마리아의 족보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장남이 대를 잇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형제 중 미혼인 한 사람이 형수와 결혼해 첫 아들을 낳아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게 했던 이스라엘의 대를 잇는 전통 방식인 ‘레비라식 결혼법’(신명 25,5-10 ‘후손에 관한 규정’)에 따라 친부와 법적 아버지의 이름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서 내려온 마탄이 에스파 사이에서 야곱을 낳았고(마태오 복음), 다윗의 아들 나탄에서 내려온 후손 마탓이 형 마탄이 죽은 후 에스파와 결혼해 아들 엘리를 낳아(루카 복음), 야곱과 엘리는 아버지는 다르나 어머니가 같은 동복형제고, 엘리가 아들이 없이 죽어 야곱이 엘리의 부인을 아내로 삼아 요셉을 낳았기에 친부인 야곱과 법적 아버지인 엘리의 아름이 족보에 등재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오와 루카의 족보를 서로 틀리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족보에는 타마르(창세 38장)와 라합(여호 2장), 룻(룻 1-4장),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2사무 11장) 등 4명의 여인이 나온다. 타마르와 라합은 가나안 사람, 룻은 모압인, 밧 세바는 히타이트 사람으로 4명 모두 이방인이다. 이들은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이스라엘 율법을 깨고 유다인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이 네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 것은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이어져 내려오는 이름들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어 당신께 주어진 길을 걸으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러내 준다.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구세주 강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웅변했다. “그분은 인류의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위대한 것, 강성한 것, 혼란된 것, 가련한 것, 어두운 것 그리고 악한 것들 위에 현존하시면서 그분께 들이닥칠 이 모든 것들을 당신의 성심 안에 받아들이시어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당해내고자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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