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 (루카17,7-10)

제1독서<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지혜2,23-3,9)
2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
3,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34,2-3.16-17.18-19(◎2ㄱ)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복음<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7-10)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지혜2,23-3,9)
지혜서의 첫째 부분은 1-5장으로 종말에 대한 숙고를 다룬다.
하느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어 사람의 속 마음까지 꿰둟어 보신다(1,6-7).
그것을 모르는 악인들은 나쁜 생각을 하고 제멋대로 산다(2,5-9).
악인들은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에 깊이 빠져 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고, 노인을 존경하지 않으며, 약한 이들을 짓밟는다(2,10-11).
또한 그들은 정도를 걷는 의인을 부담스러워하고 괴롭힌다(2,12).
이런 악인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생각과 행동으로,벌을 받게 될 것이므로,그들의 말로는 비참하다(3,10-12).
이와는 반대로 그들에게 박해받던 의인들은 죽지 않고(1,15),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시험을 거친 뒤에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3,1-9).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고,악인들이 행복을 누리는 모순이 있다 하더라도, 억울해 하거나 애석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3,13-4,20).
지혜서의 저자는 전통적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의 원리를 확신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지혜서의 저자는 코헬렛(전도서)처럼, 상선벌악의 원리가 현실에서 꼭 들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세에서의 사정이고, 내세를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의인들을 비웃고 박해하는 죄인들은 이 세상에서 득세하고 복을 누리겠지만, 죽음을 맞이할 때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의롭게 살고도 현세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 의인들은, 비록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더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어, 죽은 다음에 하느님 곁에서 평화를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불사불멸은 악인들에게는 해당하지 않고, 의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지혜서의 저자가 희망하는 것은, 죽은 의인의 부활이 아니라 의로운 영혼의 불멸이다.
지혜서의 저자는 악인이나 의인이나 구별없는 모든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지 않는다.
사람은 본디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으므로, 불멸하게 되어 있었으나, 악마의 시기로 죽음이 세상에 들어 오게 되었다(2,23-24).
따라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게 되고, 의롭게 사는 이들의 영혼은, 그 의로움 때문에,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 죽지 않게 될 것이다(3,1).
한편 상선벌악의 원리는 욥기에서 도전을 받고, 코헬렛에서 거부당했지만, 내세를 전제하는 지혜서에 와서 확고하게 정립되었다.
상선벌악의 원리와 의인의 불사불멸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동전 자체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3,9)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3,1-4)
지혜서 2장 21-24절은 불멸성의 중요성과 악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모두 강조한다.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셨다(지혜2,23).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단지 악마의 시기 때문이다(창세 3장 참조).
불멸성 또는 하느님께 사는 영원한 생명은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이며, "흠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 이다(지혜2,22).
이것은 하느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악인은 이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지혜서 3장 1-12절까지는 의인의 운명과 악인의 운명 사이의 대조가 계속된다.
악인이 죽음을 인간 실존의 끝으로 상상한다 할지라도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지혜3,1)는 확신에 근거한다.
사악한 물질주의자들은 의인이 고통, 죽음의 말로, 파멸과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의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3,4).
의인들이 견뎌 내는 고통은 시험이었다(지혜3,5-6).
의인들은 죽은 뒤에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들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지혜3,7).
그들은 하느님께서 지배하시는 영역에 들게 되고,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의 자비와 자비로운 돌보심을 받는다.
이런 묘사(다니엘12,1-3참조)는 불멸성의 특성이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부활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지혜서 3장 7절의 '찾아 오신다'는 단어는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거나 적어도 의인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지혜서에서 계속 발전시키는 불사의 희망은 도덕적이고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에 목적과 방향을 준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은 올바르게 산 데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무죄하게 고통받는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죽는 순간 그리고 최후의 심판 때까지 늦추어진다.
의인들이 현재 겪는 고통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덕을 시험하시는 것이며 그들이 올바로 살도록 이끌어 주는 훈육의 원천이다.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17,7-10)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종의 위치에 두시면서 당신이 교훈하시고자 하는 핵심을 말씀하신다.
종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와 같이 한 후에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다.
여기서 종은 루카 복음 17장 8절에 나오는 데로, 자신에게 맡겨진 바깥 일만을 끝마쳤다고 해서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깥 일은 바깥 일일 뿐이며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는 집안일을 해야만 했던 노예였다.
특히 '허리에 띠를 매고'는 띠를 풀고 쉬는 상태와 반대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철저하고 겸손한 봉사와 전적인 헌신만이 제자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 제도에서 가장 하부 구조를 차지했던 종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신 것이다.
본절인 루카 복음 17장 10절에서 종을 수식하는 '쓸모없는'에 해당하는 '아크레이오이'(achreioi; unworthy; unprofitable)는 '무익하고 가치없음'을 의미한다.
왜 이 종은 자신에 대해 '쓸모없는 종'이라고 일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들에게 겸손하고 당연한 자세로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을 교훈하고, 또한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무조건적 순종이 따라야 함을 명확히 해 주시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봉사와 헌신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요,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봉사와 희생을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지배하고 내리누르며 무시하는 것이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신분 제도가 있던 시대와 달리 종과 주인이 구분되지 않지만, 오히려 돈과 권력과 지위 같은 가치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갑과 을을 나눕니다.
이러한 기준으로는 나보다 약한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하여도 상관없고, 자신의 욕구 불만이나 짓눌린 감정을 아무런 관련이 없는 힘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분출하거나 화풀이하여도 괜찮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마르 10,45 참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스승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와 봉사와 희생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좋은 평가를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거나 서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곧 겸손하게 섬기는 종의 자세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봉사와 희생은 우리 자신을 향하여 있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을 향하여 있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의(義)의 종’일 때는 아들이 된다.
복음(루카17,7-10)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없음의 존재다. 흙의 먼지일 뿐이다.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하느님의 숨이 빠진 인간은 존재가 아니다. 온 세상이 추앙하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 이들이나, 나라를 위한 독립투사, 혁명가들이나, 모든 이들이 싫어하는 감옥에 있는 강도, 살인범, 범법자 등~ 모두 하느님 앞에 쓸모없는 종(奴)임을 아는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쓸모있는 의(義)의 종이 된다. (로마3,20-25)
*종(奴), 헬라어 ‘둘로스’는 주인의 부속품, 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자칼(씨)과 네카버(그릇)처럼 하나로 묶여있어 주인과 하나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죄의 종’이란, 단순히 죄가 시키는 대로 죄만 짓는 사람이라는 의미 보다는(그러면 자꾸 죄에게 책임전가 시키게 되니까) 그냥 죄 자체를 가리킨다. 죄와 연합이 되어서 죄의 한 부분, 그 죄로 존재하는 ‘죄의 종, 둘로스’다. 죄의 종 이라하면 죄라는 나쁜 놈이 있고, 그 나쁜 놈이 시키는 대로, 마지못해서 하는 덜 나쁜 나, 이렇게 이해하면 안 된다.
그의 모든 행위와 사유는 다 죄일 수 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착해 보이는 일을 해도 ‘죄, 둘로스’의 상태에서 자체가 죄가 된다. 죄의 종, 죄의 부분이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16,8)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반면에 ‘주의 종’이란 하느님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을 때, 그분의 부분, 부속품인 둘로스(종)는 아들이 된다. ‘둘로스, 종’은 종(奴)인데 ‘의(義)의 종’일 때는 아들이 되고, 죄(罪)의 종일 때는 죄, 그자체가 되는 것이다. (각 부분, 부속품이니까)
독서(티토2,14)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선행(善行), 좋은 일, 착한 일, 모두 ‘토브’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토브)” 하신 생명을 창조하신 그 진리의 일에 동참하는 열성을 기울여야한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의(義), 진리, 은총으로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종으로, 그분 안에서 하늘의 새 생명을 사는 새 것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2코린5,17 갈라6,15)
*기억(記憶)해야 할 성구(聖句)~
(시편143,11) 11 주님, 당신 이름을 보시어 저를 살리소서. 당신의 의로움으로 제 영혼을 곤경에서 이끌어 내소서.
(이사45,24)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바룩1,15-16) 15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16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로마10,10) 10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필리3,5-9)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 흠 잡을 때 없는 참 신앙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 의로움은 받아 지니는(지키는) 것이지, 인간의 행(行)함이 아니다. 받아 지닌 그 하늘의 의(義)를 진리로 전해주는 것이 선행, 착한일이다.
진리,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믿음의 신앙을 깨닫고 믿게 하소서. 인간의 길, 선악의 법, 그 감옥에서 탈출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