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 (루카13,18-21)
제1독서<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8,18-25)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화답송 시편126(125),1-2ㄱㄴ.2ㄷㄹ-3.4-5.6(◎3ㄱ)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복음<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루카13,18-21)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21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제1독서 (로마8,18-25)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합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8,18.22-25참조)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8장 1~17절에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하느님의 자녀는 천당 영복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로마서 8장 17절 말미에서 이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이어지는 로마서 8장 18~25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종말론적 영광에 대한 희망을 가질 것과 희망 중에 인내해야 할 것에 대해 권고를 주고 있다.
로마서 8장 18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현재 피할 수 없는 고난에 대해 로마서 8장 17절에 이어 다시 한번 언급하며 그와 대조적으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사람에게 예비된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종말론적 영광에 대한 강조는 로마 교인들에게 어떠한 핍박과 환난과 박해가 닥치더라도 그 고통을 넉넉히 인내하여 극복하게 하는 힘을 줄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8장 18절에서 '생각합니다'라는 '로기조마이'(logizomai; I concider)라는 동사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간주하다','신중히 생각하다','논리적인 결론을 가지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도 바오로는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고난을 어떤 시각으로 보며,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그것을 다만 유익 없는 고난으로만 보게 되면,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고, 불평이나 원망만 생기며, 낙심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신중한 생각을 따라 일체의 고난이나 시련을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서 볼 수 있다면, 그럴 때에 고난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로마서 8장 18절에서 말하는 영광은 장차 '나타날' 영광이다.
여기서 '나타날'로 번역된 단어 '아포칼륍테나이'(apokallypthenai)의 원형 '아포칼륍토'(apokallypto)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덮다'(루카8,16),'가리다'(2코린4,3)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칼륍토'(kallypto)의 합성어로서 '가려진 것을 제거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본래 베일에 가려져 있거나 덮혀 있는 것을 열어 젖히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로서 성경에서 '계시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을 계시하는데(마태11,27; 갈라3,23; 1베드1,12),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영광도 바로 이런 차원과 성격의 것이다.
이 영광은 현재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으나 때가 되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자녀가 하느님을 직접 대면할 때 이루어질 것이며,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때 변화된 위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영원히 복된 상태의 삶으로 들어갈 것이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19)
로마서 8장 19절부터 22절까지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피조 세계도 고통 가운데서 하느님의 자녀들의 종말론적 영광 및 피조물 자신의 영광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인법을 사용하여 아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는 인간을 제외한 만물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자기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하루 속히 그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인간 이외의 피조물이 이러할진대 하느님의 자녀들이 구원받아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를 기대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간절히'로 번역된 '아포카라도키아'(apokaradokia; earnest expectation)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머리'라는 뜻을 가진 명사 '카라'(kara) 및 '생각하다'라는 뜻과 더불어 '보다'라는 의미도 갖는 동사 '도케오'(dokeo)의 합성어로서 '머리를 길게 빼고 지켜보다'라는 뜻을 가진 '아포카라도케오'(apokaradokeo)에서 유래한 것으로 '간절한 기대'나 '큰 희망'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사도 바오로는 '기다리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아펙데케타이'(apekdechetai)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바라다'(히브11,10)라는 뜻을 가진 '엑데코마이'(ekdechomai)의 합성어로서 '열심히 기다리다'라는 뜻이 있는 '아펙데코마이'(apekdechomai)의 현재형이다.
따라서 이 동사는 명사 '아포카라도키아'와 함께 그 기다림의 강도가 얼마나 큰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강조적 표현을 사용하여 인간을 제외한 다른 피조물 역시 타락과 구원의 결과들에 있어서 인간과 똑같이 참여하므로 죽음의 저주로부터 구원되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에 동참할 것을 지향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은 바로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영광에의 입성을 의미한다.
여기 '나타나기를'로 번역된 단어 '아포칼륍신'(apokallypsin)은 '감추어져 있던 것의 나타남'이란 뜻으로서 로마서 8장 18절의 동사 '아포칼륍테나이'와 어근이 같으며 그 의미도 같다.
모든 피조물들이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재림때에 변화된 위상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간절히 바라며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피조 세계가 그들 자신과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인간의 종말론적 영광을 그토록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로마서 8장 20절과 21절에 나타나 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20)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21)
여기서 '허무의'로 번역된 '마타이오테티'(mataioteti)는 '마타이오테스'(mataiotes)의 여격 단수이며 '무익함','쓸데없음','목적없음' 등을 나타낸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 '헤벨'(hebel)의 역어로서 허무하고 의미없는 인생사를 묘사하는 용례로 쓰였다(욥기14,1; 시편103,14; 코헬렛1,2).
대체로 학자들은 이것을 자연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제지하고 있는 생명력의 결핍과 자연의 세력이 목적을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 당면하고 있는 좌절이라고 보며, 이것은 죄로 인한 하느님의 저주의 결과로 된 것이다(창세3,17.18).
그런데 피조물이 이와 같은 것의 '지배 아래 든 것은'으로 번역된 '휘페타게'(hypetage)는 명사가 아닌 동사이며 '휘포탓소'(hypotasso)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예속되었다','복종당했다','굴복당했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부정 과거 시제는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의 죄로 인한 창세기 3장 17절과 18절의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피조물들은 창세기 3장 17절과 18절에 묘사된 땅으로만 제한되지 않고 모든 자연 만물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과거에 그렇게 된 상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만물을 회복시키는 종말의 날까지 속 된다. 자연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허무의 지배 아래 들게 되었는데, 태풍, 지진, 기근,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들 및 동식물의 죽음, 부패 등 모두가 그런 현상이다.
그러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로마서 8장 20절에 나오는 데로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다.
여기서 어떤 미래적 희망을 바탕으로 해서 허무의 지배 아래 들게 하는 존재를 나타내는 '톤 휘포탁산타'(ton hypotaksanta; the will of the one who subjected it)는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느님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는 분(시편8,7.8; 1코린15,27.28)으로서 비록 한시적 기간 동안 피조물을 허무의 지배 아래 들게 하시지만, 회복의 희망 안에서 그렇게 하신다. 이 회복의 희망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토대로 말미암은 것이다.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
복음(루카13,18-21)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의 눈에는 겨자씨와 같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그것을 자기 정원, 곧 자기 뜻대로 심어(받아) 커다란 나무로 심었다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과(善惡果)로 먹은 사람(아담)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 대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이름을 날리려는 바벨의 사람이다.(창세11,3-4)
본문이 사탄에게 묶여 허리가 굽어 땅만 바라보는, 곧 삶의 중심이 땅(세상) 나라의 것만을 바라며 살도록, 그래서 자기 나라를 구축하려 선악의 가르침으로 스스로 자신의 뜻, 의(義)를 위한 신앙에 시달리던 여자가 씨(말씀)로 하느님의 나라로 오신 예수님의 손(진리)의 덮으심으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똑바로 일어서다. - “아나스타시스”(부활), 곧 부활의 삶을 살았다는 어제 복음 말씀에서 이어진 오늘 말씀이다.
겨자씨(말씀)를 내 나무로 키우면, 내가 높은, 푸른 나무로 자라면 절대 안 된다.
(에제17,22-24) 22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
= 짐승들의 먹이 통에 어린 아기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23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24 그제야 *들의 모든 나무가 알게 되리라.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 들, 인간들의 뜻, 방법으로 심어 키운 높은 나무는 낮추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신다. 곧 세상의 힘을 부수신다는 말씀이다. 왜? 살리시려고, 그대로 높고 커진 상태로 있으면 영원한 죽음이니까.
선악의 가르침, 인본주의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 속에 겨자씨로 출발해서 자라나 새들이 깃드는 커다란 나무로 발전 된다고 인간의 뜻, 의로움을 위한 가르침을 준다.
오늘 비유 말씀이 앞에서 본 에제키엘 17장의 말씀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대조로 에제키엘 31장1절 이하에서 세상의 힘을 갖은 높은 나무, 푸른 나무를 베어 버리게 하신다.
(에제31,13-14) 13 그 쓰러진 등걸 위에는 하늘의 모든 새가 살고 그 줄기들에는 들의 모든 짐승이 자리를 잡았다. 14 이는 물가의 어떤 나무도 다시는 키가 높이 솟아 그 꼭대기를 구름 사이로 뻗지 못하게 하고, 물(말씀)을 흠뻑 먹으며 자라는 어떤 나무도 높아져서 구름과 마주 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 사이에 끼여 구렁으로 내려가는 이들과 함께 죽음에, 저 밑 세상에 넘겨졌다.
= 인본주의에 빠지면 그들과 함께 저 밑, 지옥(地獄)에 넘겨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 밀가루 서(3)말 속에, 곧 밀이 갈아져(죽어) 생명의 빵, 양식이 된 그리스도의 몸 안에, 하느님의 생명,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야 한다. 힘의 원리인 세상의 목숨을 위한 것으로 드러나는 그 헛된 부풀림이 되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하느님 나라에게 우리(나)가 점령 당해야지 내 나라를 구축하기 위해 하느님 나라를 이용하는 것이 되면 안 된다. 이 세상 나라도 구축하고 하느님 나라에도 갈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점령 당하지 않으면(커진 내가 죽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곧 내 뜻, 의로움, 영광을 드러내는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의로움, 영광이 이루어지는 신앙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다음 23절 아하, ‘많은 사람들이 원하며 추구하는 높고, 푸른 나무의 반대의 길인 ’좁은 문(門)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루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좁쌀보다 작은 겨자씨가 1.5-3미터 크기의 큰 나무로 자라나 새들이 가지에 깃들이듯 미소한 것이라 해도 하느님을 품고 있습니다. 또 백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빵을 구울 수 있는 밀가루를 부풀리게 하는 누룩처럼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극히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을 통해서도 하느님 뜻이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가 썩어 없어지고,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리고 흔적 없이 사라짐으로써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봅니다. 스마트폰에 눈과 손을 고정하며 살아가는 디지털 정보사회에서 사람들의 뇌도 깊은 성찰과 분별없이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되어간다고 하지요. 내 이익과 관련되거나 자극적인 것들이 아니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이런 피상적 관심 속에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가시적인 능력이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만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아무것도 없지요.
우리 삶에서 겨자씨와 누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작은 배려, 보이지 않는 선행, 부드러운 말씨, 고통 받는 이들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불평등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절규에 함께하는 행동 그런 것들이겠지요. 그런 마음과 손길이 모아질 때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눈에 가치 없어 보이고 사소한 것을 이용해서도 엄청난 선과 사랑을 이루시며,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 나의 작은 생각, 하찮아 보이는 사람, 평범한 말과 행동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한편 겨자씨가 자라나 하늘의 새가 깃들일 정도의 큰 나무가 되려면 씨는 땅에 묻혀 썩어 없어져야 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변화와 성장은 희생과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헌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내가 죽어 모두를 살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오늘도 사소한 일상사와 하찮아 보이는 이들 안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씨앗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의미와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이 변화되고 희생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누룩이 되도록 힘쓰는 창조의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진만 안젤로)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비유는 각각 겨자씨와 누룩을 은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두 비유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한 쌍의 비유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 대한 전반부 이야기(9,51―13,21)가 마무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팔레스티나 지방에 사는 주민들에게 친숙한 식물인
겨자씨를 가지고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작은 씨앗이 자라서 새들이 둥지를 만들 수 있는 나무로 성장하는 현상을 예시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당신께서 갈릴래아에서 보여 주신 ‘현재’의 모습이
하느님 나라에서 보게 될 ‘미래’의 모습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이어서 누룩의 비유가 소개됩니다.
이 비유는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서 덩어리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설명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는 감추어져 있지만, 하느님 나라가 지닌 생명의 힘은 세상 전체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빵을 만드는 데 밀가루는 꼭 필요한 재료이지만 누룩이 없다면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룩의 비유로 하느님 나라의 필연적 성장과 그 역동적 현상을 강조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비밀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지성을 초월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이해하려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겨자씨의 성장은 신비로운 신적 권능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통치가 가져올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이는 신비를 이해할 수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비유로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마르 4,11-12 참조).
여러분은 하느님의 신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 같다.
복음(루카13,18-21)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 *나무- 히브리어 스타오로스(계약)로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계약인 십자나무이다. *밀가루(서말)-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밀이, 자신의 몸을 잘게 부수어 양식이 되듯 생명의 양식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매일묵상 사제 글 중에서~
‘겨자씨와 누룩은 맨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지닌 힘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작은 씨앗이 나무가 되고, 또 누룩은 밀가루를 온통 부풀어 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시는 이유는 하느님 나라가 지닌 역동성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이상-
오늘 비유말씀은 사람과 여자, 그 둘의 비유임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사람은 완성된 존재를, 여자(테무트)는 미완성인 무엇인가 담아야 할 빈그릇(테무트)을 뜻한다.
먼저 사람의 겨자씨-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뜻한다.(마르4,14) 그래서 앞6절 이하로 가보면 밭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리라’ 하시자 재배자인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으로 ‘당신이 거름이 되어 살리시겠다’는 말씀이 있었다.
(루기13,8)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무화과)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 '그냥 두시지요'(아피엠- 용서하다. 면죄하다) 포도 재배인인 예수님께서 손수 땅으로 들어가 썩어(죽어) 거름이 되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니 ‘그냥 두시지요(용서하시지요)’ 하신 그 대속의 사랑이 ‘구원에 필요한 마지막 한 닢’이라 묵상 했었다.
그 예수님의 대속의 말씀이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겨자씨인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잘 보이지 않는, 곧 깨달을 수 없는 말씀(씨)이 자라나(1코린2,13~) 구원의 열매를 맺는 큰 나무(계약)가 되어 쉴 곳이 없는 하늘의 새(죄인)들이 쉼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요한1,14) 그러니 겨자씨 비유는 하느님께서 완성하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여자, 먼저 누룩은 가르침을 뜻한다. 그 누룩을 여자가 그냥 밀가루 속에 넣은 것이 아니라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다’ 이다. 곧 서(3)말은 하늘(3)을 뜻하며(3-하늘) 그 하느님의 뜻, 가르침 그대로 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헛 바람이 들어간 부풀림이 아니라, 참 가르침의 이루어짐, 진리의 완성, 진리로 채워짐을 나타내고 있다.
(루기13,10-13) 10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11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12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13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말씀을 하시고, 말씀을 얹으시자 사탄에 묶여 쉼, 곧 하늘의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여자가 하늘 안식의 나무를 향해 똑바로 서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 21절의 여자가 밀가루 서(3)말, 즉 하늘(3)의 예수님의 말씀, 가르침 그대로 넣었던 것이다. 하늘의 뜻, 밀가루 서 말이 아닌, 그냥 땅의 밀가루에 누룩을 넣었다면 믿음이 없는 인간의 뜻인 헛됨으로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요한5,44 16,8 로마10,1-4참조) 예수님께서 그 누룩을 조심하라’ 하셨다.
(마르8,15) 15 예수님께서 그들(제자)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율법)들의 누룩과 헤로데(세상)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 성경 어디에도 누룩을 좋은 의미, 좋은 뜻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율법의 가르침(누룩)이나 세상의 가르침, 모두 그릇된, 헛 된, 빈 부풀림이기 때문이다.
밀가루 서 말, 그 하늘의 가르침만이 진리의 누룩인 것이다. 겨자씨가 자라 나무(스타오로스)가 된 그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인 십자나무가 진리다. 모든 죄인들의 죄로 십자나무에 대신 달리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길이 구원의 진리라는 것이다.
(요한14,6-7)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 안식, 구원, 그 진리가 땅에서 부터 이미 이루어 졌다는 말씀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내 말'- ‘밀가루 서 말'인 생명의 말씀이다.
☨보호자 성령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겨자씨 와 누룩
독서(로마8,18-25)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 모든 피조물과 사람은 고난 중에 희망을 사는 존재라는 것, 하느님의 뜻이란다. 영광과 자유를 위해서....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 기다리는 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그 말씀이 자라나 믿는 그 과정, 곧 성장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에페4,15-16)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아야 희망할 수 있다. 그래야 인내할 수 있다. 곧 인내할 수 있는 고난, 탄식 거리를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앞16절로 가보면~
(로마8,16-17)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 우리의 고난속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있음으로 ‘인내하라’ 하신다. 성령께서 보호자로 함께 하심으로 인내의 힘이 되어주심이다. ‘눈물이 환호로 바뀌리라.’
<화답송>(시편126,3-.6)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복음(루카13,18-21)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21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 하느님 나라를 두 가지로 비유로 주셨다. 두 가지 비유 중 ‘참’을 분별하라 하심이다. 곧 하느님의 축복과 저주로 내 놓으시기 때문이다.(신명11,26-28)
겨자씨는 하느님의 말씀(축복), 누룩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사람의 말(저주), 밀가루 서말(3-하늘의 수), 곧 하늘의 빵인 생명의 말씀을 누룩으로 부풀려 공갈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느님나라의 양식으로 믿는다. 그것은 참생명의 빵을 먹지 못하게하는 저주(詛呪)다. 하느님의 씨(말씀)를 폐기하는 죄(罪)다.
남자의 씨는 나무로 자라나 가지에 깃드는 새들을 품는다. (하늘의 새들은 부정함- 루가8,5 사도11,6) 여자의 누룩은 부풀어 올랐다.-온통 허무다.(하느님나라를 벗어난 것), 곧 남자는 축복의 일을 하신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뜻하고(마태13,37) 여자는 나무 가지에 깃드는 일을 하는 저주의 부정한 피조물인 우리를 뜻한다.
남자의 씨는 저주를 품는 나무로~
(요한15,5-6)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여자의 누룩은 버려야 할 자만, 위선~
(탈출12,20) 20 누룩 든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루가12,1) 1 그러는 동안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 자신들의 뜻을 채우려는 누룩이다. 곧 자신의 욕망을 위한 말씀 연구와 지키는 행위는 위선(僞善)이다.(로마10,1-4)
(1코린5,6-8)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 명심하자, 누룩을 좋게 말하는 가르침을 받지 말자. 그것은 하느님의 뜻, 말씀이 아닌 것이다. 적은 누룩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가르침을 주는데 누룩은 절대로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씨(말씀)가 자라나 사람을 변화시킨다. 부정한 죄를 품어 새 것으로 만드시기 때문이다.(2코린5,17) 곧 누룩의 가르침이 인간의 뜻으로 하느님의 뜻, 말씀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하늘의 빵을 없음으로 만드는 여자의 뜻인 누룩을 버리고 하느님의 씨, 말씀을 진리로 먹는, 곧 하느님의 뜻인 부정한 죄를 품는 예수님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는 오늘의 복음 멧세지다.
(아모스4,5-6) 5 누룩 든 빵을 감사 예물로 살라 바치고 큰 소리로 자원 예물을 공포하여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런 것들이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6 “나도 너희의 모든 성읍에 끼닛거리를 없애고 너희의 모든 동네에 먹을거리가 모자라게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이다.
사제☞ *틈만 나면 하느님에게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나약한 죄인이지만 하늘나라는 그 죄인인 나로부터 시작하는 나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회개(悔改)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 오늘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둘이서 건넜습니다. 혼자서는 못했을 다리입니다. 둘다 아프고 부족합니다. 함께 하는 힘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며 힘, 지혜이신 주님과 성령께서 함께라면 이 고난의 삶, 시련의 삶 안에 아바지의 뜻이 이루어 지겠지요. 보호자 성령님!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