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6,24-28)

2023. 8. 11. 오전 8: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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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일 금요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6,24-28)

 


1독서<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신명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5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36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37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38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화답송 시편77(76),12-13.14-15.1621 (12)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저는 주님 업적을 생각하나이다. 그 옛날 당신이 이루신 기적을 생각하나이다. 당신의 모든 행적을 되새기고, 당신이 하신 일들을 묵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의 길은 거룩하옵니다. 하느님처럼 위대한 신이 어디 또 있으리이까? 당신은 기적을 이루시는 하느님, 백성들에게 당신 권능을 드러내셨나이다.

당신 팔로 당신 백성을, 야곱과 요셉의 자손들을 구원하셨나이다. 당신은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나이다.

 

복음<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16,24-28)

2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1독서 (신명4,32-40)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39~40)

 

본문에서 사용된 '하욤'(hayom) '오늘'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현재의 시점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역사가 과거에 묻혀진 고고학적인 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로 번역된 '하셰보타 엘 레바베카'(hashebothael lebabeka)에서 '하셰보타''돌아가다'란 뜻의 '슈브'(shub)의 사역형으로 '다시 돌이키다', '다시 회복하다'란 뜻이며, 전치사 ''(el)은 돌이켜야 되는 방향을 말해주고, '레바베카''너의 마음'이란 뜻이다.

따라서 '너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다'는 뜻으로 새 성경에서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로 잘 번역되었다.

이것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결코 과거 한 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고 하느님을 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항상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새롭게 마음에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땅 이집트에서 이방의 문화와 종교에 둘러싸인 채로 430년을 살아온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 역시 거짓된 이방의 신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현재라는 시점에서 마음에 항상 하느님께서 유일하신 분이란 사실을 새롭게 다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 다원 주의의 물결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명4,35)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본문에서 관계 대명사 '아셰르'(asher)'그래야(그래서) ~ 하도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셰르'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말해주기 위해 쓰인 관계 대명사이다.

한편, '잘되고'로 번역된 '이타브'(itab)의 원형은 '아타브'(yatab)로서 '좋은'이란 뜻의 '토브'(tob)와 어근이 같은 말이며, 거기에 전치사 ''(le)와 함께 쓰여서 '~에게 잘 되어가다', '~에게 기쁨이 되다'란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주어는 바로 앞에서 다룬 내용 전체, '모세가 명하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행동'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너희와 너희 자손들에게 기쁨이 되고 좋은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느님 백성의 삶의 행복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자신의 복()에 관련시키는 자기 중심적인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하느님 중심의 차원 높은 신앙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때때로 성경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말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당혹감을 줄이고 읽는 이가 받을 충격을 조금이나마 약하게 하고자 “강아지”로 표현하였지만,

오늘 복음에서 이스라엘이 ‘자녀’ 또는 ‘양’이라면,

가나안 여인, 곧 이방인을 가리킨 “강아지”는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개’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목자이신 주님께서 기르시는 양 떼로 지칭되었고(이사 40,11 참조),

이방인들은 대단한 혐오의 대상으로 흔히 ‘개’로 불렸습니다.

개는 아무리 해도 개이고 양은 어떻게 해도 양입니다. 개가 양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 그분의 개입 없이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방인인 우리는 가나안 여인처럼 ‘개’입니다.

그런데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개가 양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아마도 이것이 마태오 복음사가가, 당혹스러운 정황 설정과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메시지일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는 구원을 갈망하는 인류의 처지를

가나안 여인과 “호되게 마귀가 들린” 그의 딸로 지칭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시간으로도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시고 구원도 베푸셨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의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이전까지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들을 수 없었던 놀라운 말씀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곧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방인에 대한 멸시와 그들의 불결함과 무자격성에도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을 강조하려고

오늘 복음은 극적인 대비와 반전의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엄연히 차별이 있습니다.

선인과 악인,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

거룩한 이들과 죄인들을 구별하고 분리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늘 대단히 끈질깁니다.

스스로 열심인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일수록

자신은 선별되고 다른 이들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간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차별을 멀리하고 그것을 극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별과 민족, 나라, 종파, 소속, 학연, 지연, 빈부, 장애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방인이고 이스라엘인이 볼 때 어긋난 신앙을 지닌 사람을 상징하지만,

오히려 예수님께 참된 신앙인의 모범으로 인정받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애타게 구원을 청하여, 그것을 아무런 자격 없이 거저 받았음을 잊지 맙시다.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5,21~28)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3~24)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26~28) 


마귀가 들린 딸을 둔 부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호소한다. 


여기서 '돌려 보내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폴뤼손'(apolyson; send ~away)은 고쳐주지 않고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빨리 고쳐서 보내 버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제야' 혹은 '그러나'라는 접속사 '데'(de)로 시작되는 24절에서 제자들이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시는 예수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소리지르다'에 해당하는 '크라제이'(krazei; she keeps crying out)는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서 그 여자가 계속해서 소리질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가나안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듣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당시 유다 율법주의자들의 반발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하고 싶은데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24절에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쿠'(oiku; of the house) 원형 '오이코스'(oikos)는 일차적으로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배타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다인을 '집밖에 있는 자'와 '집안에 있는 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구별하기 위해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은'으로 번역된 '아폴롤로타'(apololota; lost)는 '~로 부터'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아포'(apo)와 '파괴하다'는 뜻을 지닌 '올뤼미'(olly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파괴하다', '죽이다', '멸망하다'는 뜻이 있는 '아폴뤼미'(apollymi)의 완료 분사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것을 표현한다.그러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잃은 양이었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서 잃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적으로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요청에 대한 거부의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한 것이다. 


한편, 26절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각각 '자녀들'과 '강아지들'에 비유되고 있다. '자녀들'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children's)은 '해산하다'(루카2,6)라는 뜻이 있는 '틱토'(tikto)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을 가리키는 매우 친밀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다. 


반면에 '강아지들'에 해당하는 '퀴나리오이스'(kynariois; to dogs)의 원형 '퀴나리온'(kynarion)은 일반적인 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퀴온'(kyon)의 작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개 가운데 작은 개나 강아지를 뜻하며, 여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런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거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안에서 기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자녀'와 '강아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선권이 유다인에게 있다는 뜻이지, 이방인이 복음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27절에 가나안 여자는 '그렇습니다'로 번역된 긍정과 동의를 나타내는 '나이'(nai; yes; truth)라는 말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이어지는 또 다른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여자는 겸손하게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누리는 혜택을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 가르'(kai gar; but even)는 앞선 문맥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관용적인 표현인데, 뒤이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로서, 이방인들 역시 유다인에 이어 하느님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당시 유다인이 이방인에 대해 심한 배타적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도10,28),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을 지니고 있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오 퀴나이,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O gynai, megale su he pistis; O woman, you have great faith!)가 바로 원문의 내용이다.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대해 너무나 감격한 예수님의 감정이 '오'(O)라는 감탄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크구나'로 번역된 '메갈레'(megale)의 원형 '메가스'(megas)는 영어에서 '큰' 혹은 '백만 배'를 나타내는  접두사 '메가'(mega)의 어원으로서 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위대한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끝으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고, 이것은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비례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 


특히 여기서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게네테토'(genetheto; be it; is granted)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가나안 여자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단번에 고침을 받는다.




2011년 8월 3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20230811일 금요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은 자기 목숨을 구하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24).

자기를 버린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보다 먼저 왜 자기를 버려야 합니까?

예전에 나치주의자들은 많은 유다인에게 기차에 타도록 회유하면서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맞은 것은 절망과 지옥의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더 태우려고 기차가 역에 멈출 때마다 진실을 예감한 유다인들은 열차에서 내려 도망쳐라.” 하고 말하였답니다.

그렇게 내린 몇몇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기차가 출발하였고,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놓인 상황과 같습니다.

분명 우리의 본성은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라는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생명으로 가는 다른 기차로 갈아타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갈아탐을 실현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리라는 말도 육신의 삶을 내팽개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는 참된 인생을 살도록 최고의 선택을 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이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이익과 뜻을 좇는 세상에서 지상의 영광과 성공과 영예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살겠다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자신을 버린다는 의미에 대하여 묵상합시다.

우리가 버려야 할 자신은 하느님께서 본디 우리에게 주신 모습, 곧 하느님을 닮은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 낸 자신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자유 의지로 지금까지 저지른 죄와, 우리를 죄로 이끄는 성향들(이기심, 교만함, 질투, 탐욕, 게으름 등)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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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

 

복음(마태15,21-28)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 마귀(魔鬼)가 들렸다는 것은 정신분열(精神分裂), 질환(疾患)을 뜻하지 않는다. 마귀 들림은 뱀의 선악(善惡)의 유혹(誘惑)을 먹고(창세3,5) 그 선악의 논리(論理)로 세운 율법(律法)과 세상 인간들의 계명, 말로 세상의 것, 사람의 일만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마르8,33) 33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로마3,19) 19 우리가 알다시피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 그 인간들의 선악(善惡)의 논리에 하늘의 선(善)이 악(惡)을 품고 죽어 생명(生命)을 주는 그 진리(眞理)의 말씀이 대답하실 수 없음이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 길 잃은 양들- 유대인들이 아닌 하느님께서 친히 세상에서 뽑아 선택(選擇)한 이들이다.

 

(요한17,6)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주님만이 아신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자기(自己)버림, 부인(否認)의 자세다. 곧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진리(眞理)를 청(請)함이다.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주님은 이 고백(告白)을 기다리신 것이다. 하느님께 선택(選擇)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코헬3,18-19)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19 사실 인간의 아들들의 운명이나 짐승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다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으며 모두 같은 목숨을 지녔다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허무이기 때문이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그래서 주인(주님)의 상(床 식탁, 제단)에서 떨어지는 빵(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존재(存在)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 참으로 큰 것’이며 구마(驅魔)의 힘, 곧 마귀(魔鬼)의 거짓 말(靈)이 쫓겨남이다.

 

오늘 본문이 어떤 말씀에서 연결(連結)됐는지 봐야 한다.~

(마태15,3.6.8-9)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또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6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너희는 이렇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9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그래서~

(요한8,43-44) 43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으로 가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들었음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창세3,5-6)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아담)은 뱀의 선악(善惡)의 유혹(誘惑)을 먹고 하느님처럼 의 삶, 곧 자기의 뜻, 의(義), 영광을 희망하며 사는, 그것이 본성이 된 ‘마귀 들린 자’로 태어난다. 그래서 코헬렛이 모든 인간은 짐승일 뿐이라 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것을 깨달아라. 주신 성경(聖經)이다. 그래서 신앙(信仰)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본문 28절에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왜? 많은 이들이 자기의 뜻, 욕망,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믿는 것이라 하기 때문이다. 곧 세상(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기에 영원한 땅속(地獄)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4,4) 4 절개 없는 자들이여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1요한2,17)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요한4,1-2) 1 사랑하는 여러분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肉)을 입고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죗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이들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 평화, 안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믿고 의탁하는 삶 또한, 그 구원자를 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 영광 드리는 신앙을 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영(靈)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罪)로 죽으셨음은 믿으나, 세상의 평화, 안식, 육신(肉身)의 건강(健康)을 주시는 그리스도라 믿으면 하느님께 속한 영(靈)이 아니다. 세상의 말을 따르며 믿는 것이다.

 

(콜로2,8)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영원한 어둠땅속을 향하게 하는 인간들의 선악에 의한 신앙이 아닌영원한 빛하늘에 들어갈 하느님의 말씀진리를 깨닫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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