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마태15,21-28)

2023. 8. 9. 오전 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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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일 수요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마태15,21-28)

 


1독서<그들은 탐스러운 땅을 업신여겼다.>(민수13,1-2.25-14,1.26-30.34-35)

1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 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 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 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 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화답송 시편106(105),6-7ㄱㄴ.13-14.21-22.23(4)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조상들처럼 저희도 죄를 지었나이다. 불의를 저지르고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저희 조상들은 이집트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그분의 업적을 어느새 잊어, 그분의 분부를 따르지 않았네. 사막에서 그들은 탐욕을 부리고, 광야에서 하느님을 시험하였네.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 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 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복음<,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마태15,21-28)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제1독서 (민수13,1-2.25-14,1,26-30.34-35)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주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27-29)

 

'나에게 투덜거리는'으로 번역된 '말라님 알라이'(mallanim allai)에서, '투덜거리는'이라고 번역된 분사 '말라님'(mallanim)의 원형인 '룬'(lun)은 '불평하다', '(거스려)반역하다'라는 뜻이 있다.

 

또한 '나에게'라고 번역된 '알라이'(allai)의 정확한 의미는 '나를 대항하여'(against me)가 된다.

따라서 본문은 '나를 대항하여 불평하는'이란 의미이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가시적인 현상만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항하는 직접적인 도전이며 반역인 것이다(민수14,9).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로 번역된 '아드 마타이 라에다'(ad mathai laeda)에서, 하느님의 분노의 일차적인 대상은 바로 일반 백성의 대표로 이루어진 '회중' 즉 '에다'(eda)이다.

 

새 성경은 이것을 '공동체'로 번역했는데, 여기서 '에다'(eda)의 의미는 민수기 14장 2절과 3절에 나오는대로, 하느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서 일반 백성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인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백성들을 하느님께 불평하고 반역하도록 선동하고 주도했기 때문이다.

 

민수기 14장 33절에서 35절에 나오는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지도자(우두머리; 수장) 스스로도 하느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지도를 받는 사람들까지도 하느님의 진노 아래로 밀어넣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아드 마타이'(ad mathai)는 '언제까지이냐?' 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원망을 내가 들었는데, '어느 때까지 들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하느님의 이 질문 속에는 이 세대의 반역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그것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출애굽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세이상으로 사열을 받고 (인구조사에서 등록되고) 투덜댄 자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민수14,29-30), 새 세대만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주님의 말이다'이라고 번역된 '네음 예흐와'(neum yehwa)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말', '말씀'에 해당하는 '네음'(neum)은 '선언', '판결'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로서 성경 전체에 약 360회 쓰인 단어이다.

 

이 단어는 대부분 '주님'을 주어로 취하거나 소유격으로 취하는 하느님의 발언(판결)에 쓰여진다(이사3,15; 에제5,11; 아모2,11).

따라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발언하는 자와 언급된 내용의 권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네움'(neum)은 이 선언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구별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예레9,22).

그러므로 이 단어가 여기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의 크기와 엄중함을 느끼게 한다.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주겠다'  (28)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로 번역된 '임 로 카아셰르 띱바르템 베오즈나이' (im lo kaasher dibartham beoznai)에서, '띱바르템'(dibarthem; you have spoken)은 '너희가 말한' 이라는 뜻이다.

 

여기 맹세의 문맥에서 '임'(im)은 부정의 뜻을 나타내지만 게다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어 '로'(lo)가 덧붙여져  '임 로'(im lo)가 되면, 반대로 강한 긍정의 뜻을 가지고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 는 단호한 의미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귀에 대고 한 말은 민수기 14장 2절의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온 공동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이라는 내용이었다.

 

하느님의 징계 아래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우리는 하느님 대전에서 하는 말에 유의해야 한다. 전지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해주겠다'에 해당하는 '에에세'(eese; I will do)의 원형 '아사'(asa)는  기본적으로 '행하다', '성취하다', '형성하다'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이 단어가 하느님께 사용되었을 때에는 자주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행하신 일은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되심을 증거해준다(여호23,3).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계를 초월하시는 절대자이실 뿐 아니라 역사 안에 내재하시면서 당신의 목적을 주도적으로 이루시는 분이시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너희는 시체가 되어'  (29)

 

원문은 '너희의 시체가 이 광야에 쓰러질 것이다'이다.

'너희의 시체'에 해당하는 '피그레켐'(pigrekem)의 원형 '페게르'(peger)는 동물의 시체가 아닌 사람의 시체를 가리킨다. 방금 죽은 시체가 아닌 부패하여 악취를 풍기는 시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씀을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을 때, 그들이 떠올린 것은 광야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자신들의 송장이었을 것이다. 하느님을 떠나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는 그렇게 처참한 것이다.

 

하느님께 대해 반역했던 그들의 삶은 광야에서의 비참한 죽음으로 마감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하느님의 귀에 대고 한 말, 즉 이스라엘이 '우리가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죽었더라면! 아니면 이 광야에서라도 죽어 버렸으면!' (민수14,2)이라고 말한 것의 응답인 것이다.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공정과 정의를 이루셨다.


1독서(민수13,1-2.2514,1.26-30.34-35)​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 가나안은 하느님나라를 모형(模型)한다.

 

(탈출3,8) 8 (야훼)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젖과 꿀이 흐르는 땅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 숫자 4는 땅의 숫자로 40은 우리 인생의 전 생애(生涯)를 뜻하는 것으로 그 한 생애동안 하느님나라를 정찰(偵察)하라는 말씀이다. 곧 영적전쟁, 투쟁(鬪爭)을 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현세(現世)의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 하느님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다. 땅에 숨겨진 하느님 나라를 깨달아 ‘보는 것’이 신앙(信仰)이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 인간의 생각, 곧 세상의 지혜(智慧)의 관점(觀點)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볼 수도, 깨달을 수 없는 곳이다.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 자신의 생각으로 갈 수 없는 곳이다. 그 자신의 고집(固執)을 버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오신 그 예수님을 믿고 따라 가면 갈 수 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 칼렙은 자신의 생각을 믿은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아 믿었기에 해낼 수 있다고, 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 칼렙과 달리 자신들의 뜻, 생각을 고집하며 불가능 하다고 판단(判斷)하는 모습이다.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 죄(罪)를 대속하시고, 덮으시는 하느님의 말씀, 계명(誡命)을 인간의 말, 법, 계명으로 받아 절망(絶望)하고 실망(失望)하는 것이 악(惡)이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내가 살아 있는 한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 ‘할 수 있습니다.’ 말하면 할 수 있게 해주고, ‘하느님 정말 불가능 합니다.’ 말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말씀이다. 곧 마음 안에 간직한 하느님의 계약, 약속, 그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의탁한다면 불가능(不可能)을 가능(可能)하게 하신다.

 

(루가1,37)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그 날수대로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곧 인간의 뜻, 고집을 버리지 못한 이들을 죽이시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正義), 공정(公正)이다. 하느님 앞에 죄, 더러움, 어둠이 공존(共存)할 수 없기에 그것들을 없애시는 것은 당연(當然)한 것이다.

 

(아모5,6-7) 6 너희는 주님을 찾아라그러면 살리라그러지 않으면 그가 불처럼 들이쳐 요셉 집안을 삼켜 버리리니 베텔에는 그 불을 끌 자 없으리라. 7 아 너희공정을 쓴흰쑥으로 만들어 버리고 정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자들아!”

= 공정과 정의, 그리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죽음에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기에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의 속죄(贖罪) 제물(祭物)로 내주셨다.

그래서 죽어야 할 우리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다 씻겨, 깨끗하고 거룩한 자로 예수님을 따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예수님의 대속(代贖)으로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공정과 정의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히브1,8) 8 아드님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당신의 왕좌는 영원무궁하며 당신의 왕홀은 공정의 홀()입니다.

= 가족에게 짜증을 낸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이 없는 것이다. 이웃에게 화(禍)를 낸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새 계약)이 없는 것이다. 가족(家族), 이웃에게 말씀을 주지 못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필립3,12)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 영원한 보호자, 보증이신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依託)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15,21-28)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3~24)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26~28)

 

마귀가 들린 딸을 둔 부인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호소한다.

여기서 '돌려 보내십시오'에 해당하는 '아폴뤼손'(apolyson; send ~away)은고쳐주지 않고 쫓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빨리 고쳐서 보내 버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제야' 혹은 '그러나'라는 접속사 '데'(de)로 시작되는 24절에서 제자들이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거부하시는 예수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소리지르다'에 해당하는 '크라제이'(krazei; she keeps crying out)는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서 그 여자가 계속해서 소리질렀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요청을 한 것은 가나안 여자가 불쌍해서가 아니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듣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며, 당시 유다 율법주의자들의 반발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서 잠시라도 휴식을 하고 싶은데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24절에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쿠'(oiku; of the house) 원형 '오이코스' (oikos)는 일차적으로 '건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배타적 의미를 지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다인을 '집밖에 있는 자'와 '집안에 있는 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구별하기 위해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은'으로 번역된 '아폴롤로타'(apololota; lost)는 '~로 부터'라는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아포'(apo)와 '파괴하다'는 뜻을 지닌 '올뤼미'(olly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파괴하다', '죽이다', '멸망하다'는 뜻이 있는 '아폴뤼미'(apollymi)의 완료 분사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의 결과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것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로부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잃은 양이었고, 지금도 영적으로 죽어서 잃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들을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적으로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때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요청에 대한 거부의 뜻이 있는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한 것이다.

한편, 26절에서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각각 '자녀들'과 '강아지들'에 비유되고 있다.

 

'자녀들'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children's)은 '해산하다'(루카2,6)라는 뜻이있는 '틱토'(tikto)에서 유래하여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을 가리키는 매우 친밀감이 느껴지는 용어이다.

반면에 '강아지들'에 해당하는 '퀴나리오이스'(kynariois; to dogs)의 원형 '퀴나리온'(kynarion)은 일반적인 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퀴온'(kyon)의 작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개 가운데 작은 개나 강아지를 뜻하며, 여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런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나라에 거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안에서 기르는 개라고 할지라도, 자녀들과 동일하게 대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굳이 '자녀'와 '강아지'를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복음에 대한 우선권이 유다인에게 있다는 뜻이지, 이방인이 복음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27절에 가나안 여자는 '그렇습니다'로 번역된 긍정과 동의를 나타내는 '나이'(nai; yes; truth)라는 말로써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이어지는 또 다른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가나안 여자는 겸손하게 집안에서 기르는 개가 누리는 혜택을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카이 가르'(kai gar; but even)는 앞선 문맥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관용적인 표현인데, 뒤이어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로서, 이방인들 역시 유다인에 이어 하느님의 은총에 동참할 수 있다는 소신을 밝힌다.

 

당시 유다인이 이방인에 대해 심한 배타적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도10,28),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지각을 지니고 있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오 퀴나이,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O gynai, megale su he pistis; O woman, you have great faith!)가 바로 원문의 내용이다.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대해 너무나 감격한 예수님의 감정이 '오'(O)라는 감탄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크구나'로 번역된 '메갈레'(megale)의 원형 '메가스'(megas)는 영어에서 '큰' 혹은 '백만 배'를 나타내는  접두사 '메가'(mega)의 어원으로서 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위대한 믿음을 칭찬하신 것이다.

 

끝으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네가 바라는 만큼 네게 이루어질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고, 이것은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비례하는 큰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뜻이 된다.

 

특히 여기서 '될 것이다'에 해당하는 '게네테토'(genetheto; be it; is granted)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법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에 따라 가나안 여자의 딸은 바로 그 시간에 단번에 고침을 받는다.

 




 


 

20230809일 수요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예루살렘 남쪽에는 오늘날까지도 옹기장이 밭”, “피밭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이 사제들에게 건넨 돈으로 산 땅이라 일컬어지는 곳입니다(27,3-10 참조).

사실 그 지역은 이스라엘의 몇몇 임금들이 우상 숭배를 하고 이방 신에게 제사를 바쳤던 곳입니다(2열왕 23,10 참조).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은 유다에게 받은 돈으로 그 지역을 사 이방인들의 무덤 터로 삼았습니다.

이른바 더럽고 불결한이방인들은 죽어서도 아브라함 후손들의 지역에는 묻힐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이방인 혐오와 차별은 오래된 전통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자신의 딸을 구하여 달라고 애타게 도움을 청합니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제껏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온 이방인에 대한 멸시와 그들의 불결함과 자격 없음을 환기시키는 이전까지의 이야기는, 사실 이 말씀(결론)을 강조하여 극적으로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방인에게 지니는 태도를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보여 주시고,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함으로 초대되고(5,48 참조), 모두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깨달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낫고 선하며 거룩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사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희망이 그다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21,31).

함께 걷는 순례의 길에서 우리가 차별하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동료는 없는지 돌아봅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

 

복음(마태15,21-28)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 마귀(魔鬼)가 들렸다는 것은 정신분열(精神分裂), 질환(疾患)을 뜻하지 않는다. 마귀 들림은 뱀의 선악(善惡)의 유혹(誘惑)을 먹고(창세3,5) 그 선악의 논리(論理)로 세운 율법(律法)과 세상 인간들의 계명, 말로 세상의 것, 사람의 일 만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마르8,33) 33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로마3,19) 19 우리가 알다시피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 그 인간들의 선악(善惡)의 논리에 하늘의 선(善)이 악(惡)을 품고 죽어 생명(生命)을 주는 그 진리(眞理)의 말씀이 대답하실 수 없음이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 길 잃은 양들- 유대인들이 아닌 하느님께서 친히 세상에서 뽑아 선택(選擇)한 이들이다.

 

(요한17,6)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주님만이 아신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자기(自己)버림, 부인(否認)의 자세다. 곧 선이 악을 덮어 생명을 주는 그 진리(眞理)를 청(請)함이다.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주님은 이 고백(告白)을 기다리신 것이다. 하느님께 선택(選擇)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음이다.

 

(코헬3,18-19)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19 사실 인간의 아들들의 운명이나 짐승의 운명이나 매한가지다짐승이 죽는 것처럼 인간도 죽으며 모두 같은 목숨을 지녔다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모든 것이 허무이기 때문이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그래서 주인(주님)의 상(床 식탁, 제단)에서 떨어지는 빵(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음을, 존재(存在)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 참으로 큰 것’이며 구마(驅魔)의 힘, 곧 마귀(魔鬼)의 거짓 말(靈)이 쫓겨남이다.

 

오늘 본문이 어떤 말씀에서 연결(連結)됐는지 봐야 한다.~

(마태15,3.6.8-9)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또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6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너희는 이렇게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9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그래서~

(요한8,43-44) 43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으로가 아닌 사람의 뜻을 위한 말씀으로 들었음이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창세3,5-6)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아담)은 뱀의 선악(善惡)의 유혹(誘惑)을 먹고 하느님 처럼의 삶, 곧 자기의 뜻, 의(義), 영광을 희망하며 사는, 그것이 본성이 된 ‘마귀 들린 자’로 태어난다. 그래서 코헬렛이 모든 인간은 짐승일 뿐이라 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그것을 깨달아라. 주신 성경(聖經)이다. 그래서 신앙(信仰)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본문 28절에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왜? 많은 이들이 자기의 뜻, 욕망,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믿는 것이라 하기 때문이다. 곧 세상(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기에 영원한 땅속(地獄)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4,4) 4 절개 없는 자들이여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1요한2,17)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요한4,1-2) 1 사랑하는 여러분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肉)을 입고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죗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모든 이들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 평화, 안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믿고 의탁하는 삶 또한, 그 구원자를 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 영광 드리는 신앙을 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영(靈)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罪)로 죽으셨음은 믿으나, 세상의 평화, 안식, 육신(肉身)의 건강(健康)을 주시는 그리스도라 믿으면 하느님께 속한 영(靈)이 아니다. 세상의 말을 따르며 믿는 것이다.

 

(콜로2,8)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영원한 어둠땅속을 향하게 하는 인간들의 선악에 의한 신앙이 아닌영원한 빛하늘에 들어갈 하느님의 말씀진리를 깨닫는 신앙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내버려두지 마소서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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