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나병 환자 치유 (마태8,1-4)

2023. 6. 29. 오후 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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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일 금요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나병 환자 치유 (마태8,1-4)


 

 

1독서<계약의 표지로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라.>(창세17,1.9-10.15-22)

1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10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

15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라이를 더 이상 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사라가 그의 이름이다.

16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겠다. 그리고 네가 그에게서 아들을 얻게 해 주겠다. 나는 복을 내려 사라가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여러 나라의 임금들도 그에게서 나올 것이다.”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이 백 살 된 자에게서 아이가 태어난다고? 그리고 아흔 살이 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18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하고 아뢰자,

19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이사악이라 하여라. 나는 그의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하여 그와 나의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우겠다.

20 이스마엘을 위한 너의 소원도 들어 주겠다.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고, 그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그는 열두 족장을 낳고, 나는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21 그러나 나의 이 계약은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이사악과 세우겠다.”

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화답송 시편 128(127),1-2.3.4-5(4)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복음<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제1독서(창세17,1.9~10.15~22)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없는 이가 되어라." (1)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아브람이 하란을 떠난 지 24년이 되었고(창세12,4). 그의 첩 하가르가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이 되는 해였다(창세16,16). 그런데 창세기 16장의 마지막 내용인 이스마엘이 출생한 기록이 나온 후, 곧 바로 13년이나 건너뛴 것 그 동안 하느님의 계시가 아브람에게 없었던 것을 암시한다. 


이처럼 장시간 동안 하느님의 계시가 없었으므로, 아브람에게는 이스마엘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을 것이고, 그를 통한 약속의 성취를 계속 기대했을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7장 18절의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라는 아브라함의 고백에서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13년간의 침묵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새로운 하느님의 계시와 약속을 아브라함이 매우 놀라운 사건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동안 이스마엘을 중심으로 자신의 기업을 확장해 가려던 그 모든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한순간에 깨닫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의 좌절은 심각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약속이 새롭게 주어지는 것을 통해 아브라함은 그 좌절의 혼란속에서 다시금 믿음을 일깨우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나타나'로 번역된 '와예라'(wayera; appeared)는 단순 재귀형이 사용되어 '그리고 그는 자신을 보여주다'이다. 여기서 '보여주다'에 해당하는 '라아'(raah)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숙고하여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한다(창세11,5; 에제21,26; 호세9,10). 말하자면 주님께서 자신을 보여 주시는데, 아브람이 직접 경험하여 구체적으로 깨달아 알도록 보여 주신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여 주신 이유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사라이를 통한 이사악의 출생 약속이 임박했음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이다(창세16,16; 17,19).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히브리어 문장에서 주어가 어떤 단어의 접두어나 접미어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처럼 '나는'에 해당하는 인칭 대명사 '아니'(ani)가 독립적으로 사용된 경우는 바로 지금 하느님께서 자신을 공적으로 소개하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전능한 하느님' '엘'(el; '하느님') '샷다이'(shaddai)의 복합어이다. 


여기서 '엘'(el; '하느님') 어원인 '울'(ul) '능력 있다', '강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샷다이'(shaddai) '~하는 자'(she; 셰) '충분한'(dai; 따이)의 복합어로서 '충족적인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전능한 하느님' 권능이 있으면서 또한 '(자기)충족적인 하느님'임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이 명칭은 특별히 사람과 계약을 세우실 때 사용되는 하느님의 명칭이다 (창세28,3; 43,14; 48,3). 이 명칭이 주로 계약과 관계되어 사용된 것은 하느님께서 한번 맺으신 계약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신 자기 충족적이신 분이심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로 번역된 '히트할레크 레파나이'(hithhallek lepanai) 직역하면 '너는 내 얼굴 앞으로 스스로 걸으라'이다.  여기서 '히트할레크'(hithhallek) '걷다'(walk)는 뜻이 있는 '할라크' (hallak)의 재귀형이므로 '자기 스스로 걷다'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레파나이'(lepanai) '얼굴'을 의미하는 '파님'(panim) '~을 향하다'는 뜻이 있는 전치사 '레'(le)가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결정하여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느님 대전에 하는 것처럼, 즉 하느님을 의식하고 의롭게 행동해야 함을 명령한 것이다.


'흠없는 이가 되어라' 


'흠없는 이가 되어라'로 번역한 '웨흐예 타밈'(yehye tamim)은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완전하라'는 명령형이다. 그런데 '타밈'(tamim; perfect)이란 용어는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는 흠이 없는 동물을 표현할 때도 쓰였다. 하느님께서는 흠없는 제물만 받으신다(레위22,14~25). 


그러나 이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 도덕적으로 성실하고 깨끗한 자로서 하느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자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시편15장; 101,6).  


이것은 노아를 묘사할 때도 쓰인 말로서(창세6,9), 아브람은 믿음이 없는 세대 가운데서 도덕적으로 성실하고 깨끗하여 하느님과 친교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춤으로써,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이 되라고 하느님께로부터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흠없는 이가 되어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아브람이 하가르를 첩으로 취한 것이 하느님께는 완전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람의 지난 13년간의 삶을 한순간에 뒤돌아보게 하는 명령이었다. 


둘째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 대전에서 절대적인 의미로 완전할 수 없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할 것과 성숙할 것에 대한 요구이며, 아브람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복음(마태8,1~4)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2~3ㄴ)


마태오 복음사가가 산상설교가 선포된 후에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 메시야로서의 왕권을 드러내신 치유 기적 사회의 첫번째 기사로 소개한다.


예수님께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주관하는 사제도 아니고, 율법을 연구하는 랍비도, 율법을 잘 아는 바리사이들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찾은 그는 몹쓸 병에 걸려 성 밖으로 내쫓겨 격리된 나병 환자에 불과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기로 결심한 데에는 많은 군중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각오까지 한 상태였다(레위13,14장; 민수12,10.15; 2역대26,19~20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간절히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 앞에 엎드렸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을 향해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에'(kyrie; Lord)라는 호칭을 사용한 경우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자들로 구분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인정하여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본다기 보다는, 다만 예수님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을 받은 메시야적 대사로 인정하여 '주님'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기록된 나병 환자가 어떤 의미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미 행하신 치유 기적에 대해 듣거나 보고 난 뒤에 (마태4,23.24) 예수님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 7장 21~29절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구원은 별개의 문제라고 이미 밝혔다.


한편, 마태오 복음 8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신다. 율법은 부정한 물건이나 사람에게 손을 대는 사람까지도 부정하게 된다 말하고 있다(민수12,10; 욥기18,13; 레위13.14장).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것에 접촉함으로써 그 부정에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한 것을 거룩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하느님이시다. 여기서 '대시며'에 해당하는 '헵사토'(hepsato; and touched)의 원형 '합토마이'(haptomai) '대다'는 뜻 외에도 '만지다', '껴앉다'라는 뜻도 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에 해당하는 '레프로스'(lepros; a leper),  악성 피부 질환에 걸린 사람을 직접 만지신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조항이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초월적인 사랑의 성품을 소유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열왕기 2권 5장 11절에도 나오지만,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고쳤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이시므로, 다른 제 삼자의 이름이나 권위를 빌리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니'에 해당하는 '텔로'(thelo; I will)라는 말을 통하여 스스로의 이름과 권위와 의지로 병자를 고치신다.





2023년 06월 30일 금요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산 위에서의 설교(5-7)로 드러난 예수님의 특별한 권위는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여러 개의 기적 사건(8-9)을 거치며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를 통하여 말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남다른 힘과 권위를 지니신 분이심을 드러내려는

마태오 복음서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에 해당하는 오늘 복음은 나병 환자를 고치신 사건을 전합니다.

고대에 나병(악성 피부병)은 치료가 힘들고 전염력도 강하여서 매우 특별하게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3-14장은 이 병의 증세는 물론이고나병 환자라고 선언하고 그를 다루는 방법,

그리고 치유 판정을 받는 공식적인 절차까지도 아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병 환자는 특히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된 생활을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매우 놀라운 행동을 보여 주십니다.

손을 내밀어 그 부정한 몸에 손을 대셨기 때문입니다.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고칠 능력을 지니신 분께서 굳이 그 몸에 손을 가져다 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예수님의 구원 방식이 그러합니다.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몸소 사람이 되셨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려고 죄인 취급받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몸소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오늘은 부정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부정한 사람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였던 나병 환자의 아픔을 손수 어루만져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십니다.

지금 아파하는 모든 이를 어루만져 주고자 하십니다.

그 아픔에서 낫게 되기를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바라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혹시 우리 마음속에 남모를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나병 환자처럼 용기를 내어 주님께 나아갑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주님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니 저를 낫게 하여 주소서아멘.’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우리의 죗값으로 죽으러 오신 예수그분이 말씀복음입니다.

(마태 8,1-4)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5장에서 옛계명-살인간음거짓맹세를 그러나로 그 계명의 실체가 형제로남편으로 오신 예수님이며 그분이 진리임을 설교하신 후 산에서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例 (마태5,21-22)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율법계명을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그 진리로 완성하신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님께 바보멍청이 짓했다고 화내는 것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으로 그것이 살인이라는 겁니다.

또한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리로 의탁하지 못하고 여전히 법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간음이며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하는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법의 신앙으로 자기 의로움그 육을위한 신앙을 산다면 육은 멎져보일지 모르나 영은 썩어가고 있고 그 고통을 모르는 것이 나병(문둥병)입니다.


(요한6,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영적 나병임을 아는 이~그가 자신의 의로움은 개짐(똥걸레)으로 자격능력이 없음을 알고 (이사64,5) 참으로 의로움이신 주님만이 하실 것을 믿고 청하는(로마3,21~참조것입니다.

곧 주님의 이름()으로만 청하라는 것입니다.


(요한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기도는 드러내는 일인 것이지요그 영광이 죄인들을 의인으로 만드는 것하느님의 신성과 본성그 이타의 사랑그 영광이 십자가의 대속그 죽음으로 들어 있지요그것이 하느님나라의 의로움이며(마태6,33) 진리인 것(요한14,6)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 나병을 예수님께서 가져가시는 것입니다.


(이사53,4-5)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하느님께 매맞은 자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사제는 악성피부병 환자에게 정결한 새의 피를 일곱 번 뿌린다흠 없는 어린 숫양의 피를 일곱 번 뿌린다.(레위기14,1-20)

정결하고 흠 없는 피곧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그분의 죽음으로 깨끗해 짐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제사 행위를 하는 그것이 나병임을 증거하라’ 하신 것입니다.


(히브10,18-19.22)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성소(聖所)- 하느님나라를 뜻합니다성경의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진리)으로 마시지 않고 사람의 말(-)로 마시면 영원한 나병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4,13-14.23-2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물(말씀)을 주심에 감사하는 이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지금이 바로 그때다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령께서 십자가의 예수님이 진리라고 증언하셨고 그 성령을 통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그 미사(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곧 하늘의 의로움만 받으시고 사람(카)의 의로움은 안 받으십니다.


(마르10,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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