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27일 화요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7,6.12-14)
제1독서<너와 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창세13,2.5-18)
2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였다.
5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도 양과 소와 천막들을 가지고 있었다.
6 그래서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과 프리즈족이 살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9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0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11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요르단 들판의 여러 성읍에서 살았다. 롯은 소돔까지 가서 천막을 쳤는데,
13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
14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을, 또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
15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16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자, 일어나서 이 땅을 세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고 가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여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18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화답송 시편15(14),2-3ㄱ.3ㄴㄷ-4ㄱㄴ.5(◎1ㄱ) ◎주님, 당신의 천막에 누가 머물리이까?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라네. ◎
○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
○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
복음<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7,6.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13,2.5~18)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8~9)
'한 혈육'으로 번역된 '아나쉼 아힘'(anashim ahim)을 직역하면, '형제들의 사람들'이다. 즉 '한 형제'라는 말이다.
'아힘'(ahim)의 원형 '아흐'(ah)는 기본적으로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한 형제를 말하며 (창세4,2; 신명13,6; 시편50,20), 두번째는 이복 형제를 가리키고(창세39,14), 세번째는 한 조상에게서 태어난, 먼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창세29,15; 민수16,10; 25,6). 그리고 넓게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레위25,46; 신명3,18).
창세기 13장 8절에서는 세번째의 의미, 즉 한 조상으로부터 나온 삼촌과 조카라는 친척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롯은 주님의 약속을 따라 움직이는 신앙 공동체에 속했던 자였으므로, 아브라함은 그를 혈연 관계로서의 가까운 사이라는 표면적인 사실을 넘어서 영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동반자 의식을 가지고 그를 친밀하게 대하고 있다고 본다.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8)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제발', '원컨대'(창세12,13; 탈출33,18)로 번역될 수 있는 '나'(na)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나'(na)는 '하야'(haya; to be)동사의 미완료형 '테히'(thehi)와 함께 쓰여 정중하게 허락을 요청하는 의미가 있다(탈출4,18; 이사5,1; 1열왕1,12; 민수20,7).
동시에 이 말이 일회적인 부정(不定)의 의미가 있는 '알'(al)과 함께 쓰여 애원의 뜻과 더불어 결정을 촉구하는 단호함까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창세13,8).
당시 아브라함은 연장자로서 거주지 선택에 있어서 우선권이 있었고, 롯을 보호할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혈육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롯에게 간청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것을 보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평화를 사랑하는 온유의 사람, 또한 겸손의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9)
'갈라져 나가라'로 번역된 '힙파레드'(hippared)는 '나누다', '구별하다'라는 뜻을 가진 '파라드'(parad)의 재귀 명령형이므로, '스스로 분리해라'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제발', '원컨대'로 번역되며 앞절에서도 나온 '나'(na)가 또 등장한다.
따라서 창세기 13장 9절은 명령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애원에 가까운 간곡한 권유로 보아야 한다(창세12,13; 24,2; 민수20,12).
또한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지대가 높은 베델에서 넓은 팔레스티나 지역을 내려다 보며, 놀라운 겸손과 양보 정신을 발휘해서 조카 롯에게 거주지 선택의 우선권을 주며 분가(分家)를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보다 손아래 사람인 조카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는 아브라함의 성숙한 모습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먼저 '하느님과 나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대신(代神)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첫번째 가치로 둘 뿐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평화로운 관계를 이루기 위한 온유와 겸손의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니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로마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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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것이란 어떤 것일까요? 원래는 구별된 것, 따로 몫을 지어 떼어 놓은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많지 않아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값이 제법 나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써, 가장 거룩한 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있고, 이웃과 함께 머무는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영화로 소개되어 우리를 잔잔하게 울린 소록도의 두 천사 이야기를 아시나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동정녀 회에 입회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간호사가 되어 동양의 맨 끝 나라인 한국에, 그중에서도 가장 버려진 천형의 섬, 소록도에 있는 나환우들을 찾아온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두 천사의 이야기입니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환우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맨손으로 약을 발라 주었던 동정녀들, 그리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의료 지식보다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아침마다 따뜻하게 우유를 데워 주고, 소박한 생일잔치를 열어 주는 것을 훨씬 소중하게 생각했던 두 사람은, 진정으로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이들입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두려움 가운데에서도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해 주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고, 장갑이 아닌 서로의 손을 잡고 대화하는 것, 이것들은 쉽지 않은 좁은 문이지만, 하느님께 이르게 하는 거룩한 문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진리(길)는 하나다. 하늘의 길을 땅의 길로 착하지 말자.
(마태7,6-14)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거룩하고 진주(보석)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짐승, 다른 민족들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인가? 그러면 전교는 누구에게 해야 하나. 그런 말씀은 아닐 것이다.
먼저 앞 5절에서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인간이 그 욕망과 선악의 눈으로 살아가는 짐승이라 하신다.
(코헬3,18)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 그러나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알고 그 짐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청했을 때,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씀도 주셨다.
(마르7,26-28)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마태15,28)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개, 돼지 짐승인 뿐임을 아는 그 자기부인이 된 여자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씀이시다. 본문에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는 말씀은 ‘거룩한 진주를 짐승의 것으로, 그들의 말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의로움, 욕망을 세워주는 선악의 말, 그 계명으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구원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그 자기부인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기부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되기에 거룩하고 진주인 좋은 것, 성령을 청하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찰하여 그분의 올바른 가르침, 깨달음으로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힘 이신 성령이시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생명의 말씀)을 청하는데 돌(선악의 법)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거짓말)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 좋은 것,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 성령이시다.(루가11,13)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 “그러므로”가 아주 중요하다.
앞 (마태5,1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5장 17절과 본문 7장 12절 사이의 모든 계명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다 완성혔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그대로 ‘예수님께 해 드려야 한다,’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며 황금율인 것이다.
예수님이 내 소원을 들어 주시는 구원자가 아닌, 영의 구원을 위한 길, 진리로 믿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임을 믿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의(義), 열심을 길로 믿고 의지했던 그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만을 길, 진리로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께서 바라시는 대로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문자 그대로 사람의 지혜로 보고, 우리의 열심한 윤리의 삶으로, 남에게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는 것이 신앙(황금율)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도 다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사람의 도리(道理)이지 신앙(信仰)이 아닌 것)
사람이 사람에게 원하고 받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황금율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하늘의 생명, 구원, 그 황금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윤리가 아닌 하느님의 덮으심,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로 얻는 용서, 생명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도덕과 윤리의 삶으로 열심히 살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자’가 하느님의 진노(震怒)를 산 바벨탑 사건이며 카파르나움 이었다.(창세11,4- 루가10,15참조) 그렇게 살면 다른 민족들의 칭찬도 받고 영광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가르친다.
그 많은 이들이 옳다고 가는 길은 넓은 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넓은 길이 영원한 멸망의 길이라 하신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란, 많은 이들의 욕망의 눈에 어리석게 보이고(1코린1,23) 인간의 열심, 의로움을 기각해 버리시는, (마태6,33 로마3,24. 이사64,5 참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이 진리(眞理)임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이 협착(狹窄, 좁고) 그 비좁은 길을 가기 싫어한다.
(요한12,43) 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께 선택받은 이들(죄인)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억지로라도 끌고 가신다.
(요한21,18)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그때 그 하느님의 이끄심이 매(枚, 채찍)로, 곧 우리에게 시련(試鍊)으로 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 사랑의 손짓이라는 것이다.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멘)
☨ 하느님의 힘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복음(마태7,6.12~14)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6)
마태오 복음 7장 1~4절은 타인에 대한 무책임한 심판(비판)을 금하고, 마태오 복음 7장 5절은 자신의 과오를 먼저 해결한 후에 사랑을 가지고 타인의 결점을 지적하여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 7장 6절은 비록 상대방에 대한 무책임한 비판을 금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죄악에 대해서까지 묵인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죄와 구별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개들'에 해당하는 '퀴신'(kysin; dogs)의 원형인 '개'로 번역된 '퀴온'(kyon)은 팔레스티나에서 야생 상태로 생활하는 사납고 더러운 짐승이다.
성경에서는 구원의 진리를 모르는 이교도들이나(마태15,26; '강아지들') 신도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유다인들(필리3,2; '개들') 또는 거짓 예언자들을 (묵시22,15; '개들') 개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태오 복음 7장 6절에서도 타락하여 복음을 훼방하며 진리는 안중에도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시 완고하며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다고 본다.
개들이 '거룩한 것'에 해당하는 '토 하기온'(to hagion; what is sacred; what is holy)의 가치를 모르는 것과 같이, 이들 역시 복음의 가치를 몰라서 진리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훼손하려 들 것이므로, 이들에게는 복음조차 전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는 문장도 앞의 문장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반복되는데, 그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는 문장의 기교가 사용되었다.
'너희의 진주'에 해당하는 '투스 마르가리타스 휘몬'(tous margaritas hymon; your pears)는 '거룩한 것'에 해당하는 '토 하기온'(to hagion; what is sacred)과 같은 의미이며, '돼지들'에 해당하는 '토 코이론'(to choiron; pigs)은 '개들'에 해당하는 '토이스 퀴신'(tois kysin; dogs)과 같은 의미이다.
돼지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로 취급되어 식용이나 사육이 금지되었기에, 여기서는 야생 상태의 맷돼지로 볼 수 있다.
팔레스티나의 야생 맷돼지들은 매우 사나워서 사람들을 어금니로 받고, 발로 짓밟아 해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7장 6절은 진주와도 같은 고귀한 천국의 복음을 그 가치도 모르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사나운 자들에게 전하면, 돼지와 같은 자들은 복음을 팽개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전하는 자들까지 해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진리의 가치를 모르는 타락한 자들에게는 아예 복음을 전하지도 말라는 명령을 거듭 내리고 있는 것이다.
2023년 06월 27일 화요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이 말씀은 황금처럼 빛나는 규율이라고 해서 ‘황금률’로 불립니다.
산상 설교(5―7장)의 주요 부분을 갈무리하는 지점에 나오는 이 말씀은 이전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구실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시고(5,17 참조)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충만한 뜻을 여러 가르침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모든 가르침을 관통하는 근본정신, 곧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황금률로 압축하여 표현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서 후반부에 언급되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계명 다음에도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22,39-40 참조).
그렇다면 황금률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남(이웃)이 너희에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남(이웃)에게 하라는 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사랑하듯 하라는 계명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황금률(黃金律)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로마 13,10 참조).
남이 나에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그 많은 것이 결국 하나의 단어로 모두 수렴되는 듯합니다.
‘사랑’, 우리는 결국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랑을 누군가는 주고 있을 것입니다.
받는 존재로만 머물지 말고 주는 존재도 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상호적인 사랑을 강조하신 듯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제는 우리가 남에게 사랑을 줄 차례입니다.
황금률을 다음과 같이 각색하여 보면 어떨까요?
‘남이 너희를 사랑하여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을 사랑하여라.’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천주의 성령님 이재와 저희 죽을 때 이 죄인을 위해 기도해 주소서
(마태 7,6-7.11-14)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영원히 변치 않는 소금, 그 소금 계약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탈출30,35 민수18,19참조)
그리고 계약(스타오로스)은 기둥이라는 뜻으로 십자나무를 뜻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더러운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그 피로 다 씻으시어 양심까지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시는 계약의 말씀인 것이지요(히브10,10.22참조)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참 진리임을 성령께서 증언하십니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 소중한 성령의 법, 진주를 개, 돼지. 하느님의 적대자들의 것, 곧 그릇된 세상의 법으로 주지 말라시는 말씀입니다.(요한16,8참조)
그래서~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 좋은 것-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좋은 성령으로-루가11,3)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 이 ‘그러므로’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무시해 버리면 인간의 계명으로, 사람의 이야기로 듣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계명(진리)을 거스르는, 곧 사람들에게 하늘의 생명, 구원을 주지 못하는 그 잘못(죄)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를 빼서도, 무시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접속사는 앞의 원인과 뒤에 결과를 연결 시키는 것이니 산상수훈의 결론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앞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하신 그 결론이 12절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신 것’인데 5장 22절에서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 형제이신 예수님께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것이 살인인 것이고,~
그 구원의 진리(예수님)와 하나 되지 못하고 육의 욕망을 위한 그 음욕의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간음이다. 그러니 십자가 그 진리를 올바로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진리로 구원을 주는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를 하라시며 올바른 하느님의 듯, 하늘의 양식을 구하는 주님의 기도를 주신 후~그 올바른 양식(말씀)을 먹는 올바른 단식으로, 올바른 눈과 재물로 걱정하지 마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이도 심판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신 것이죠.
(로마8,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이 結論, 구원의 말씀을 믿음으로 완성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본문12절이 ‘그러므로’ 시작되는 것인데~‘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그 남, 곧 십자가의 길을 우리의 구원의 진리로 주신 성령께,
너희도 그대로 그 성령께 ‘믿음과 감사로 보답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10,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인간의 계명으로, 그 인간의 의로움으로 이웃에게 잘해 주는 것, 그것은 인간에 도리이지 구원의 진리가 아닙니다. 자신의 뜻, 원함을 받기 위해 남에게 잘해 주는 것, 그것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도 아닙니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땅의 인간들의 법, 계명으로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는 칭찬, 자기 의로움의 길은 옳게 보이지만,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니 가지 말라시는 것이지요(루가16,15 참조)
그러면 생명을 주는 비좁은 길은? 당연히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는, 그래서 가지 않는, 믿지 않는 십자가의 의로움, 그 복음의 길인 것입니다.
(1코린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런데 왜 어리석음으로 보이는가~
(요한12,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좋아하는, 그 죽음을 부르는 진짜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천주의 성령님 이재와 저희 죽을 때 이 죄인을 위해 기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로마8,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