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하느님과 재물 (루카16,9ㄴ-15)

2022. 11. 6. 오전 5: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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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05일 토요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하느님과 재물 (루카16,9ㄴ-15)

   

 

제1독서<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4,10-19)

10 여러분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마침내 다시 한 번 보여 주었기에,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줄곧 나를 생각해 주었지만 그것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11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 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 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5 필리피 신자 여러분, 복음 선포를 시작할 무렵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여러분 외에는 나와 주고받는 관계에 있는 교회가 하나도 없었음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16 내가 테살로니카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두어 번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습니다.

17 물론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18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에파프로디토스 편에 보낸 것을 받아 풍족합니다. 그것은 향기로운 예물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화답송시편 112(111),1ㄴㄷ-2.5-6.8ㄱ과 9(◎ 1ㄴ)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네.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복음<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루카16,9ㄴ-15)

9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제1독서(필리4,10~19)

 

"여러분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마침내 다시 한 번 보여 주었기에,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0~13)

 

필리피서 4장 10절에서부터 20절까지는 필리피 신자들의 재정 후원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감사와 축복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필리피 신자들은 사도 바오로가 옥고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여 전달했고, 그러한 재정적 도움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의 호의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에서, '나는 기뻐합니다'로 번역된 '에카렌'(echaren; I rejoiced)는 '즐거워하다', '기쁨으로 가득차다'라는 뜻을 지닌 '카이로'(kairo)의 직설법 부정 과거형으로서 기뻐했다는 과거의 사실을 나타낸다.

그는 '크게'라는 부사를 사용하여 자신의 기쁨의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크게'로 번역된 '메갈로스'(megallos; greatly)는 '크게', '대단히 많이', '격렬하게'라는 뜻을 가진 부사인데, 사도 바오로는 이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마음이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찼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이러한 큰 기쁨 역시 '주님 안에서'(en kyrio; in the Lord)이루어졌다고 표현했다.

즉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이 기쁨이 세속적 측면이 충족된 것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일치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임을 밝히고 있으며, '주님 안에서'의 기쁨은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그 무엇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이 자신을 돕다가 중단한 후 다시 시작한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있다.

 

'사실 여러분은 줄곧 나를 생각해 주었지만 그것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투옥 소식을 전해 들은 필리피 신자들은 한동안 사도 바오로에게 선물을 보낼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사도 바오로가 밝히듯이 필리피 교회가 잠시 사도 바오로에게 후원하는 것을 중단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의가 없거나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후원금을 가지고 사도 바오로에게 갈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았든지, 또는 갈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되지 않았던 듯하다.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로 번역된 '에카이레이스테'(ekaireisthe)는 '아카이레오마이'(akaireomai)의 미완료 과거형으로 과거에 지속된 행동을 나타낸다.

즉 이 말은 필리피 신자들의 사도 바오로를 향한 관심이 표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좋지 않은 환경, 즉 카이사리아 혹은 로마에 이르는 멀고도 힘든 여행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고, 또한 여행하기에 좋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이 그런 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이제 에파프로디포스 편으로 보내 온 헌금으로 입증되어(필리4,18),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한 것이다.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리피 신자들이 에파프로디포스 편으로 보낸 헌금에 대해 사도 바오로가 이처럼 기뻐하는 것은 단지 궁핍한 상태에서 도움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궁핍'으로 번역된 '휘스테레신'(hysteresin)의 원형 '휘스테레시스' (hysteresis)는 '결핍', '곤궁', '가난'이란 뜻인데(마르12,44), 사도 바오로는  이때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경제적 궁핍과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본문에서 '궁핍해서 무엇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즉 사도 바오로는 물질적 선물로 인해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굳이 궁핍함으로 인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것(필리2,25.30; 2코린11,9)에 대해 필리피 신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자신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임을 밝힌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처지'는 원문으로 볼 때, 명사가 아니라 영어의 be동사와 같은 상태 동사 '에이미'(eimi; I am)로서 처해 있는 상태와 상황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처지에서도'로 번역된 '엔 호이스 에이미'(en hois eimi)는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무엇이든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만족'으로 번역된 '아우타르케스'(autarkes)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대명사 '아우토스'(autos)와 '넉넉하다', '충분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르케오'(arkeo)의 합성어로서, '자기 스스로 충분히 만족하는'이란 의미이며,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사용된 단어이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성행하였던 스토아 철학의 모토라고 할 수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기 의지의 힘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어떤 환경도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즉 내면은 외부의 환경이나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자족 그 의미에 있어서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같을지라도, 그 근거에 있어서는 그들과 같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의 자족의 근거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아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고(콜로2,3),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성도들에게 주려고 예비하고 계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기에(1코린2,9) 언제 어느 때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할 수 있었다.

 

'배웠습니다'로 번역된 '에마톤'(emathon)의 원형 '만타노'(manthano)는  '행동이나 경험을 통해서 배우다', '습득하다'(1티모5,4.13)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부정 과거형으로 사용되어 사도 바오로가 삶을 통해 이미 이것을 체득하였다는 의미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과 그 고난에 동참하는 경험을 통해서 (필리3,10),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였고, 그로 인해서 외적 환경으로부터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비천하게 살 줄'로 번역된 '타페이누스타이'(tapeinusthai)는 '타페이노오'(tapeinoo)의 수동태 부사이다.

원래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저수지의 수위를 낮추거나 산의 높이를 낮춘다는 의미가 있으나 성경에서는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겸손해지다','비천해지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마태18,4; 2코린12,31).

 

사도 바오로는 복음 선교를 하는 가운데, 주림, 목마름, 추위, 헐벗음, 육체의 고난과 정신적 박해를 겪는 등 갖가지 비천에 처하면서도 그 가운데 적응해 나갔고, 또한 자족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수동태로 쓰인 것은 그러한 비참함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적 환경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풍족하게 살 줄'로 번역된 '페릿슈에인'(perissyuein)는 '페릿슈오'(perissyuo)의 부정사이다.

'페릿슈오'는 '꽉 찬 양으로 존재하다','풍부하게 갖추다','충분히 소유하다' 라는 의미이다. 본문은 영적인 측면의 풍요함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린 것을 가리킬 것이다.

 

물론 사도 바오로는 회심 전에는 물질적으로 풍요했었으나, 본 문맥에서는 그때의 상황이 아니라 복음 전파자로서의 삶을 말하고 있기에, 사목자로서 살아갈 때 물질적으로도 부요했던 때가 있었음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의 자족함은 비천하든 풍족하든 그 환경에 연연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삶의 풍요로움에 목표를 두고 나아가는 것과는 달리, 사도 바오로에게는 이런 외적환경에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는 오직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십자가를 짊어지려고 하는 순교자의 영성으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처한 환경은 그를 기쁘게 하거나 혹은 슬프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로 번역된 '엔 판티 카이 엔 파신'(en panti kai en pasin; in everything and in all things)에서, '엔 판티'와 '엔 파신'은 각각 단수와 복수라는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단어로서, '모든 것과 모든 일들에서'라는 말이다.

또한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메뮈에마이'(memyemai)의 원형인 '뮈에오'(myeo)는 '비법을 전수시키다', '성스러운 비밀을 가르치다'라는 의미가 있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수동태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그 비법을 전수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암시한다.

11절 '만족하기를 배웠습니다'에서 '배우다'란 의미로 사용된 '에마톤'이 체험을 통해 배운 것을 의미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배움은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전수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모든 환경에서 자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비결을 터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모든 환경에 적응해 나간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이것이 가능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힘을 주시는'으로 번역된 '엔뒤나문티'(endynamunti)의 원형 '엔뒤나모오'(endynamoo)는 동사의 서두에 붙어서 그 의미를 강조하는 접두어 '엔'(en)과 그 자체로 이미 '힘을 주다', '강하게 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뒤나모오'(dynamoo)의 합성어로서, '능력을 주다', '원기를 돋우다', 활기를 불러일으키다' 등의 강한 뜻이 있다.

 

이 단어는 주로 예수님의 권능적인 활동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에페6,10; 1티모1,12; 2티모2,1; 4,17). 본문에서는 현재 분사로 사용되었으며, 그리스도의 그 능력을 부어주심이 항상 현재적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안에서'에 해당하는 전치사 '엔'(en)은 일차적으로 '~안에'라는 뜻을 갖는데, 여기서도 주님 안에서 거주함으로써 비로소 능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전치사 '엔'(en)이 '말미암아', '통하여'(through)와 같은 방편의 의미로도 쓰이기에, '주님을 통하여'라는 뉘앙스를 가진다면, 이것은 역으로 주님 밖에서는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된 '이스퀴오'(ischyo)는 '힘'(마르12,33; 에페1,19)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명사 '이스퀴스'(ischys)에서 유래하여 '건강하다' (마르9,12; 마르2,17), '능력을 가지다','위력을 발휘하다'(사도19.16), '할 수 있다'(마태8,28; 마르5,4; 루카6.48; 사도6,10)라는 의미를 지닌다.

 

본문에서는 현재 직설법으로 쓰였으며, 일반적 현재로서 관습적 동작이나 일반적 진리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항상 그러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초월적인 전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어떠한 행동도 하느님 안에서 다 용납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쁨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 즉 자족에 관한 표현이다.

 

그는 약할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으며(2코린12,10)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할 수 있었다(2코린4,8). 사도 바오로가 이처럼 모든 처지 가운데서도 자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던 그 능력 때문이다.(필리3,9)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모든 것을 채워주는 지혜와 용기와 힘의 원천이신 것이다.

이처럼 본 문맥을 통해서 사도 바오로가 어떠한 처지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과 자신이 함께 일치하여 있기 때문임을 밝힘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절대적인 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22년 11월 05일 토요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어제와 오늘 복음을 관통하는 주제는 ‘재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재물에 관하여 어떤 입장입니까?

먼저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곧 재물이 이 세상을 그것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는 부정적 의미에서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애덕 행위를 강조하는 의미까지 폭넓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는

‘재물을 소유하고 있던 이가 죽을 때’ 또는 ‘세상의 종말이 닥칠 때’라는 의미로 풀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는

‘너희가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여질 것이다.’로 의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함께 묶어, ‘세상의 종말이 닥치게 될 때,

너희가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여질 것이다.’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영원한 거처로 맞아 주시는 분’은 간접적으로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한편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는 구절에서

‘섬기다’라는 표현은 종교적 의미로 ‘노예살이를 하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그 결과, 오늘 복음 내용은 엄격한 의미에서 재물에 대한 일반적 가르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재물을 대할 때와 하느님을 대할 때 각각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비교하며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에 각각 얼마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합니까?

혹시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찬양과 흠숭을 하느님이 아닌 것에 쏟아 붓고 있지는 않습니까?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하느님의 불의한 재물?

 

 복음(루카16,9-15)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 먼저 생각(生覺)해 보자. 인간들 중에 누군가를 영원한 거처(居處)로 맞아 들일 수 있는 이가 있나? 없다. 하느님, 예수님 뿐이시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여기에서 친구(親舊)는 하느님, 예수님이시다.

 

(요한15,13)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불의(不義)한 제물로 우리 죄인(罪人)들을 위해 목숨을 내 놓으시고 친구(親舊)로 삼아 주셨다. (2코린5,21참조) 그렇게 예수님의 공로(功勞)로 친구까지 된 우리가 그분의 친구로서 행(行)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의 다른 친구들, 곧 앞 15장 4절 이하~ ‘길 잃은 양들을 찾는 일, 또 그분의 목소리(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들을 찾는(요한10,16참조), 그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그 일을 하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친구 사귐, 곧 친구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그 친구 사귐의 행위를 내 놓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라 하신다.

그 말씀은 너희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그 ‘친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데, 불의한 재물(財物)로 친구를 찾는, 사귀는 일이다. 곧 불의(不義)의 재물(財物), 내 목숨과 같은 이 세상 재물을 희생하여 친구를 사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의 것을 ‘불의한 재물’이라 하신 것일까? 하늘의 것(재물)만 의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물’이 하늘의 뜻(일)을 위해 사용되었을 때, ‘의(義)의 재물(財物)’이 되는 것이다. 보이는 우주(宇宙)만물(萬物)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진리)을 깨닫는 것이 선(善), 새 창조의 새 사람이 되듯 말이다. 그 모든 것이 의로우신 분, 예수께서 불의한 재물로 돌아 가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본문에서 재물이 없어질 때, ‘에클리퍼’는 ‘쇠하다. 죽다. 멈추다’라는 뜻을 지닌 ‘에클레시포’의 가정법 동사로 ‘호탄’과 함께 재물이 다하여 없을 때, 곧 더 이상 세상 재물을 사용할 수 없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거처(居處)’라는 대비적 표현을 볼 때 없어질 때란, 내세(來世)에 들어 갈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 영원한 거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힘인 재물이 우리가 추구(追驅)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아낌없이 사용하여 친구(親舊)를 만들어 내는 데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 힘(재물)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그 힘을 사용하여 다른 이의 유익(有益)을 구(求)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인(원수)인 우리(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 친구가 되어 주셨듯 말이다. 그렇게 아직 깨닫지 못한 그분의 또 다른 친구(親舊)들을 찾아 드려야 한다.

 

10 아주 작은(세상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하늘)일에도 성실하고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친구사귐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 세상 재물(財物)에 집착(執着)하고 이기적(利己的) 이어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참된 것, 곧 하늘의 재물(힘- 생명)을 맡기겠느냐? 하신다.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 세상 재물도 우리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것이다.

 

(1코린4,7) 7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의 것, 힘을 잘 사용할 줄 알아야, 친구를 만들어야, 하늘의 몫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세상의 힘(재물, 명예, 의)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을 더 원하며 사랑하는가?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 돈(만모나스)- ‘돈의 신(神)’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힘, 곧 세상의 명예, 의로움이 큰, 그 부자(富者)를 뜻한다. 성경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돈’이라 한 곳이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돈보다, 목숨보다 더 중(重)하게 생각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은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란~ ‘세상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곧 ‘인간의 지혜, 지식, 명예, 의로움, 지위’ 등이다. 바리사이들은 세상의 재물로 자신의 의로움을 위한 친구를 만들었지 하느님의 의로움을 위한 친구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그리스도인’ 이면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과 관계없는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들이 많기에 하신 말씀이다. 성인전(聖人傳)을 읽다보면 그리스도의 의로움, 복음과 관계없는 그 사람의 의로움을 전하는 내용들이 간혹 있다. (성인이 그랬다 라기 보다 성인전을 쓴 사람들이 그렇게 전한다는 것이다)

그렇듯 재물로 친구를 사귈 때, 조심해야 한다. 곧 자기(自己) 의로움으로 쌓이지 않게,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 받지 않도록, 말이다. 재물(財物)로 친구를 사귈 때,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을 주는 사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독서 로마서(16,3-27) 에서도 “3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8주님 안에서, 9그리스도 안에서, 13주님 안에서‘ 22절 주님 안에서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아멘.“ 하고 마무리 한다.

 

(로마16,2) 2 성도들의 품위에 맞게 그를 *주님 안에서 맞아들이고그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도와주십시오.

 

(1코린1,31)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코린9,2) 2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사도입니다여러분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의 증표입니다.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페2,13.21) 13 그러나 이제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요한3,18) 18 자녀 여러분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2요한1,1) 1 원로인 내가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인사합니다나는 그대들을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나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3요한1,1) 1 원로인 내가 사랑하는 가이오스에게 인사합니다나는 그대를 *진리 안에서 사랑합니다.

 

(골로1,28)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친구를 사귈 때 하느님의 선, 의로움을 드러낼 줄 알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6,9ㄴ~15)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9)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자구대로 들으면 당황된다.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주님께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라고  하시니 말이다. 윤리 신학의 기초와 원칙은 목적이 선하면 수단 방법도 선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은 성경과 양심에 근거한 이런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 구절의 앞에 나오는 약은 집사(청지기)의 비유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한다.   

 

주인의 재산을 충성과 성실,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관리해야 하는 집사가 주인 모르게 재산을 불의하게 탕진한 것이 드러나 해고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는 또 한번 주인의 채무자의 빚을 자기 마음대로 탕감해 주면서 해고당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앞날을 준비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의한 약은 집사를 칭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를 가끔 이용해서 당신의 메세지를 전하신다.

그가 저지른 불의와 불의한 방법에 촛점이 있는 게 아니고, 해고 이후의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제빠르게 준비하는 그의 민첩성을 본받으라는 데에 비유의 촛점과 핵심이 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복락)과 영원한 멸망이 달려 있는 그야말로 정말로 심각한 구원의 문제인데, 이스라엘은 너무나 이 문제를 우습게 취급하고 무시하면서 자기 식의 율법적 종교 생활을 하면서 오신 메시아를 몰라 뵙고, 이 세상과 돈과 육의 문제에 매몰되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관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식으로 살아간다면, 불보듯 뻔한 그때 그 시간이 반드시 올 때 주님 대전에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 시간은 개인적 죽음으로도 언제 올 지 모르는 것이고,  또한 시체가 있는 곳에 솔개가 달라들듯 필연적으로 오는 종말의 심판으로도 점점 임박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관이신 주님 대전에 회개하지 않고 애써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살면서 무사 안일과 불신앙적 완고함과 무딘 태도를 끝내 고수해서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손해인가?하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로'에서 '불의한'으로 번역된 원어는 '아디키아스'(adikias)인데, '불의한 재물'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을 하고 있다.

하나는 의롭지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재물을 의미하고, 두번째는 꿈란 전통에서  '천국의 보화'(마태6,20)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아 듣는다. 말하자면, 가치 중립적인 '세속적 재물'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 속에서만 활용 가능한, 효용 가치의 한계적 속성(1티모6,17)을 나타내는 재물이란 의미이다.

우리는 바로 이 두번째의 의미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일때 말씀을 해석하는 데 의문이 없어진다.

세속의 사람들이 자신의 출세와 명성과 지위와 안정을 위해 재물을 가지고 인맥을 넓혀가듯이, 그런 열정과 그런 민첩성과 그런 지혜로움으로 하느님 나라와 영생과 영원한 복락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17,3)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 단어인 '기노스코"(ginosko; I know)는 단순한 지성적 인식이 아니라 안 만큼 자유 의지로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필리3,8ㄱ) 태도를 지닐때,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주님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통해 일하시고, 나도 주님의 일에 충성을 다해 협력하는 친교와 일치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숨쉬는 이 공기처럼 살아계시는 주님을 이 땅에서부터 성령 안에서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내세의 천국을 보장받고 구원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11월 남은 달력 한 장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 회개의 의미를 담아보는 시간을 갖으면 좋겠다.

 



 

  


2022년 11월 05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재물복을 깨달아야

 

복음(루카16,9-15)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친구(親舊), 일차적으로 하느님이다누군가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일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시다곧 이 세상(재물이 영원하지 못한 허무임을 깨닫는 그 버림으로하늘의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와 그분과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다.

 

(요한15,13-14)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그 이타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놓는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더러운 나를 친구로 삼아주신 것이다그렇게 친구가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하느님의 백성이며 예수님의 다른 친구들인 죄인들을 찾아가 그 죄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여 친구로 삼아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하나가 되어 영원한 거처(居處하느님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재산(휘파르콘탄평판명성소유)인 그분의 자비사랑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며 구원의 완성이다.(어제묵상 참조)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작은 일하늘아래 세상(우주만물 안에그리고 인간들의 모든 일(사건안에 큰일인 하느님의 구원의 뜻과 그분의 재산곧 하느님의 자비사랑이 들어 있음을 깨닫는 그 성실함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심이다.(로마1,20 8,28-29)

또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묵상연구하여 문자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진리를 깨닫는 성실함도 있어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세상의 모든 것을 잘 다루며 관찰하여 그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재물복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2코린4,17-18) 17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남의 것곧 이웃의 죄의식아픔시련 등을 외면하게 되면그래서 목숨을 내놓고 친구가 되어주신 그리스도를 전해주지 못하면, ‘하늘의 복(), 생명이 어찌 너희에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심이다.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재물(財物)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늘의 재물(바라크생명)을 깨달으라고 주신 교육용 교재다그런데 이 세상 재물을 목적삼아 애착을 갖게 되면 하늘의 재물(생명)에는 관심이 없게 되어 영원한 땅속(죽음)에 갇히게 된다.

 

⁜ 사제(司祭)께서

우리의 욕심이 죄를 잉태하고그 죄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욕심은 우리 눈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하고정작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동시에 마찬가지로 놓아야할 때 놓지 못하게 합니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바리사이들은 재물을 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성경은 왜 그들이 돈을 좋아한다.’고 하셨을까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의(), 영광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이다그래서 율법(제사윤리)을 열심히 지키며 하느님을 잘 섬겼다곧 자신들을 위한 종교행위에 열심을 부린 것이다.

그 많은 행위들을 부자로돈으로 비유하신 것이다()은 인간의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건강재물명예학위직위영광 등~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결론(結論), 본문 앞 1하느님의 재산을 낭비한 불의한 집사가 바리사이율법주의자들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열심한 종교행위가 하느님의 자비사랑을 낭비하고 있음을 깨달아라.’ 하시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어찌 깨닫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마음과 귀를 열어주시어 말씀을 올바로 듣고 간직하는 신앙의 삶 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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