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중풍 병자 치유 (마태9,1-8)

2022. 6. 29. 오후 7: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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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일 목요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중풍 병자 치유 (마태9,1-8)

   


1독서<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아모7,10-17)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화답송시편 19(18),8.9.10.11(10ㄷㄹ)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복음<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9,1-8)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아모7,10-17)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14)


앞선 10-13절에 기록된 북부 이스라엘 아마츠야의 아모스 예언활동에 대한 악의적 호도와 협박과 회유에 이어, 14절이하 17절에는 아모스의 답변이 나온다.


아모스의 첫번째 답변은 자신이 예언자가 아니라는 내용이다그런데 본문에는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하야'(haya)동사가 기록되지 않아아모스가 과거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현재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자신은 종교적 기득권에만 연연하는 당신과 같은 직업적 종교인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내용이라고 말한다또 어떤 이는 아모스가 이런 당당한 태도를 갖는 것이 예언 행위를 자신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나 직업과 관련시키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예언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다그래서 영역본 중에는 본문의 전반부를 "나는 당신같은 직업적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I'm not one of your professional prophets.)로 번역한 것이 있다.


또한 아모스는 자신이 예언자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첫째아모스가 당시 하느님의 계시와 무관하게 혈통을 따라 세습되던 직업적 종교인이 아님을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열왕기 하권 2장 3, 4장 1절등에 제시된 예언자 학교 생도(제자출신이 아니라는 언급으로도 볼 수 있다.

셋째어느 특정한 예언자 단체의 회원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아모스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직업적 예언자도 아니고훈련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예언자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이런 본문의 아모스의 주장에는 자신을 강조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나는'에 해당하는 '아노키'(anoki)가 두번이나 사용되었다.


즉 본문은 아모스가 예언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반복하여 강조하여 묘사하는 내용이다하지만 이것은 자기 자신을 다른 예언자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한 교만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예언의 신적 기원과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본절 상반절에서 자신은 직업적 예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예언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온 계시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이어지는 하반절에서는 자신의 생계를 위한 직업을 소개한다.


즉 자신이 생계를 위해서 예언 활동을 하는 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의도로 제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아모스는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므로예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생계에 지장을 줄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먼저 '목자'에 해당하는 '보케르'(boker)는 구약 성경에서 본문에서만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데여기서 사용된 원어의 표현은 '노케드'(noked)이다이는 새끼 양 십만 마리와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친 모압의 왕 메사를 언급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따라서 아모스는 흔히 생각하는 가난한 목자라기 보다는 상당한 재력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돌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밈'(shiqemim)의 원형 '샤캄'(shaqam)은 팔레스티나 저지대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sycamore-figs)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가꾸는'에 해당하는 '볼레쓰'(boles)의 원형 '빨라스'(balas)는 '모으다혹은 '관리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무화과 나무과 같은 식물들을 심고 가꾸어 자라게 했다기보다는 야생으로 자라는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서 파는 일을 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앞에서 언급한 것처럼아모스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자신을 예언자라고 소개하지 않고 목자와 농부로 소개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예언자로 부르신 사실을 부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15절에 기록된 것처럼 자신이 북부 이스라엘에 전한 모든 예언이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말씀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본문은 아모스가 주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 활동을 감당하는 자신과 사제직에 대한 소명은 없이 직업적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아마츠야를 구별하기 위한 표현이며자신이 북부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하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근거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20220630일 목요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을 몸소 행하시면서 하늘나라의 도래를 드러내 보이시고

메시아로서 당신의 정체를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기적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하늘나라의 구원과 기쁨을 이 땅에 실현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질병은 죄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졌고(레위 26,16; 신명 28,22.35 참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오직 하느님께만 있었기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마음속으로 단죄합니다.

 

이에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와 치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쉬운지 물으십니다.

사실 가치론적으로 본다면 육체의 치유가 죄의 용서보다 훨씬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라고 하신 다음,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하시니, 그가 치유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를 본 군중은 몹시 두려워하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복음서에서 들려주는 이 같은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신 기적 사건으로

우리는 죄와 질병, 고통과 죽음까지도 모두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며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하느님, 우리 구원자이십니다. 아멘.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인간의 사랑은 사라져 슬픔을 남기지만

그리스도(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한 기쁨을 줍니다.

(마태9,1-8)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성전)로 가셨다. 2ㄱ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중풍병머리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병곧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대로 신앙을 살지 못하는 죄인을 뜻합니다.

 

2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용기를 내어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중풍병자의 믿음도 아닌 그들의 믿음으로?

 

(마르2,1-4)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가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성전)의 지붕을 벗기고곧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집그 성전의 지붕은 용서의 권한이 없음을 깨닫고 그 자격없음을 벗겨낸 네 사람의 믿음인 것입니다.

네사람,(4)- 동서남북춘하추동상하좌우땅의 숫자땅의 사각형의 완성곧 땅의 구원의 완성을 뜻하는데 그 땅의 완성이 하늘의 대속 그 진리로 이루어짐을 믿는 그 네사람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한이고병자가 반성이나 어떤 보속의 행위를 한 것이 없는 사람의 규정과 교리도 한 것이 없는데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하느님의 용서를 완성하시기 위해 오신 그분의 외 아드님(독생자예수그리스도를 모르기에 모독이라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모든 이들의 죗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마태28,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우리의 모든 죄의 용서는 예수께서 대속으로 이루셨고권한이 있으신 것입니다중풍병자는 하느님의 은총은혜로 거져 용서 받은 것입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모든 죄의 용서치유는 예수님께서 짊어지심으로 나은(치유것입니다.(이사53,4-6참조)

그 말씀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는 쉼안식이기에 어느 쪽이든 쉬운 것입니다. (마태11,29참조)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병으로 누워있던 지긋지긋한 평상병이 치유 되었으니 버리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평상을 가지고 가라 하십니다.

그것은 사람은 육을 입고 사는 동안은 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그래서 그 평상의 신세를 지게될 것이라 의미인 것입니다.

 

(갈라5,17-18)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의 욕망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그래서 평상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겁니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평상의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제사와 율법과 세상의 법으로 넘어가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허시는 하느님의 사랑그 성령의 법을 기억하라고자유하라고그래서 그 지긋지긋한 평상을 들고 가라가 하신 것입니다.

 

(로마8,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코린5,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십자가)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모든 권한은 예수님 한분께 있는 갓입니다그런데 시람들용서를 주시는 분과 용서를 받는자그리고 믿는자모두를 지칭하는 것이지요그러나 용서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사람으로 보는 그들의 잘못된 모습도 보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환호송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용서)의 말씀을 맏기셨네 ``아멘.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복음(마태9,1~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4~5)


마태오 복음 9장 4절의 '아시고'에 해당하는 '이돈'(idon; knewing)의 원형은 '호라오'(horao)로 추정되는데, '보다', '주목하다', '관찰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의 마음속까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관찰하셨음을 나타내기 위해 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시편 7장 10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심장즉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으로 계시된다.

천주 성자이신 예수님께서도 전지전능하신 신적(神的속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즉시 율법 학자들의 마음을 간파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는 내용은 마르코 복음이나 루카 복음에는 없고마태오 복음사가가 첨가한 부분이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율법 학자들의 생각이 하느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보호하려는 율법의 근본정신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제2위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율법 학자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주님을 대적하는 마음은 결국 주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가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었다.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병고침의 기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죄사함의 기적이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며당신 자신이 바로 그 권세를 지니신 유일하신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원하셨음을 마태오 복음사가가 부각시키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의 일차적인 독자인 유대계 크리스챤들에게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확하게 알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한편, '어느 쪽이 더 쉬우냐?'에서 '쉽다'는 의미로 번역된 '유코포테론'(eukopoteron; easier)은 '좋다'는 뜻의 부사 ''(eu)와 '일하다', '노력하다'는 뜻을 지니는 '코포스'(kopos)의 합성어로서 '일하기 좋은'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그 의미가 확대되어 '보다 쉽다혹은 '보다 알맞다'는 비교급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가시적인 결과가 요구되는 선언이지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은 그 선언의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율법 학자들은 유다인들의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에 입각해서 죄로 말미암아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그들의 논리를 가지고 병을 먼저 치유하면그 병의 원인인 죄가 자동적으로 없어진 것이니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 9장 2절에서 '얘야용기를 내어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그 선포는 하느님만이 할 수 있고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선포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시면서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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