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7,1-5)

2022. 6. 20. 오전 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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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0일 월요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7,1-5)

   


1독서<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2열왕17,5-8.13-15.18)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는 5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6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할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7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8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13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14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15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18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화답송시편 60(59),3.4-5.12-14(7ㄱㄷ 참조)

주님, 당신 오른팔로 도우시고 저희에게 응답하소서.

하느님, 당신은 저희를 버리고 부수셨나이다. 분노를 터뜨리셨나이다. 저희를 회복시켜 주소서.

당신이 땅을 뒤흔들어 갈라놓으셨나이다. 흔들리나이다, 그 갈라진 틈새를 메워 주소서. 당신 백성에게 모진 시련을 겪게 하시고, 술을 먹여 어지럽게 하셨나이다.

하느님, 당신이 저희를 버리지 않으셨나이까? 하느님, 당신은 저희 군대와 함께 출정하지 않으시나이다. 저희를 적에게서 구원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되옵니다.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큰일을 이루리라. 그분이 우리 원수를 짓밟으시리라.

 

복음<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7,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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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열왕17,5-8.13-15ㄱ.18)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14)


열왕기 하권 17장 3절에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많은 예언자와 선견자들이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 백성에게 하느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이어지는 열왕기하권 17장 14절은 단순히 율법을 주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많은 선견자까지 보내어 거듭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이 듣지 않고 완고하게 거부하였음을 보도하고 있다.


그래서 열왕기 하권 17장 13절의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는 17장 14절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17장 14절의 서두에 나오는 '않고'로 번역된 '웰로'(wello)는 접속사 '와우'(wau)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 ''(lo)가 결합된 형태이며이어지는 '그들은 듣지'로 번역된 '샤메우'(shameu)는 완료형 동사이다.


이와같이 부정 부사 ''(lo)와 완료형 동사가 사용된 것은 반복되는 하느님의 회개의 요구에 대해 그들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거부해 왔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17장 15절의 서두에 위치한 접속사 '와우'(wau)가 그 전후 문장이 각각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회개 요구와 이스라엘의 불순종이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러나'로 번역되었다.


한편 그들은 하느님의 회개의 명령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목을 뻣뻣하게 하다', '목을 굳게 하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과 관련해서 인간의 고집완악함교만 등을 나타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탈출34,9; 신명9,6; 2역대30,8).


특히 열왕기 하권 17장 14절에서는 목이 뻣뻣한 것을 '그들의 조상들'의 모습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는데여기서 '그들의 조상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인도하였던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느님께 대해 불순종으로 일관했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따라서 이들과 마찬가지로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스스로 목을 뻣뻣하게 한 까닭에하느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서 '그들의 조상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은 자'로 표현된다여기서 '믿다'로 번역된 '헤에미누'(heeminu)는 '지속하다', '받치다', '머물다'는 의미를 갖는 '아만'(aman)의 사역 능동형이다.


'아만'(aman)이 사역 능동형으로 사용되면 '의지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므로열왕기 하권 17장 14절은 출애굽1세대가 주님과 그의 대리자인 모세를 신뢰하지 않고 하느님의 계획에 자신들을 맡기지 않은 것처럼그들의 후손인 북부 이스라엘도 예언자와 선견자들의 권고와 하느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거기에 자신들을 맡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하느님의 약속을 저버린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20220620일 월요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좌우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하느님께 단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들을 단죄하는 그대로 우리를 단죄하실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에서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시며 모든 이를 구원에 초대하시는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기에우리 또한 이웃을 판단하거나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때로는 이웃과 갈등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쩌다 이웃의 부족한 모습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끌, 먼지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커다란 기둥, 들보는 보지 못하는 이를 꾸짖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형제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께 세상 모든 사람은 타인이 아닌 형제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아주 작은 흠은 쉽게 찾으면서도 자신의 큰 허물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 형제에게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고 말하는 기막힌 현실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위선자야!” 하시며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의 모습에서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한 다음, 맑고 따뜻한 눈으로 형제들을 다시 바라본다면우리는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닮아 주변의 형제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은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자주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어떠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전 일을 마치고, 또 잠들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고 매 순간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자녀로 살아갈 것을 새롭게 다짐해 봅시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십자가를 우상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태 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 성경 말씀을 제사와 계명의 그 율법으로그리고 선과 악의 도덕과 윤리로 보게되면 반드시 판단하게 됩니다.

그 선악의 법으로 먹으면 아담 처럼 자신부터, 이웃까지 판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로마5,12-16. 18)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은총)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거져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이 선물의(은총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한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 왔지만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은총)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십자가의 대속)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말씀(예수)을 내 뜻을 위한 제사와 윤리로 보면 심판으로그러나 하느님의 뜻인 대속의 십자가그 하늘의 진리로 받으면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다의 4단계말씀을눈에 보이는대로 보는 것.(옵타노마이그래서 ② 내 뜻을 만족시켜줄 능력의 힘으로 우상 삼아 보는(에이돈그리고 ③ 말씀의 뜻을 깨닫기 위해 여러 과정을 겪는 훈련의 단계 (블랙보우그래서 ④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는 단계(호라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성경을문자 그대로 보아 내 뜻을 만족시켜줄 사람의 규정과 교리계명으로 갖어버리면 내 눈에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하는 들보가 되는 것입니다.(마르7,7 티토1,14참조)


(지혜13,1)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의 눈으로는 좋게는 보면서 하느님의 뜻으로 보는 눈이 없는 그 무지의 들보를 빼내는 방법은 옵타노마이로 아이돈의 상태인 그 욕망의 나를 버리고 깨달음의 과정 블랙보우를 통해 호라우’, 하느님의 듯인 진리로 깨달아 돌아오는 겁니다.


(루가9,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믿는다면,~


(골로2,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내 뜻을 위해 십자가에 경배를 한다면 십자가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열왕하 18,4 참조)

십자가는 죄의 용서구원의 진리인 것입니다그 진리의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


(요한3,18) 아들(진리)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5,24) 내가 진실로진실로(거듭해서너희에게 말한다내 말을 듣고(진리로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히브10,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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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복음(마태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가 받을 것이다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마태오 복음 6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추구해야 하는 자신 스스로의 경건과 의로움과 관련된 규정을 다루었다면마태오 복음 7장 1~6절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하는 대인 관계의 규정을 다루고 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크리네테'(me krinete; do not judge)는 단도직입적인 매우 강력한 의미를 지니는 명령문이다.


여기서 '심판하지'로 번역된 '크리네테'(krinete)는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생활 습관이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할 때 사용되는데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계속해 왔던 심판하는 일을 그만두고심판을 금하는 새로운 생활 기준을 가지라는 말이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율법이나 자신들이 만든 계율로 이웃을 단죄하는 풍조가 만연했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 혹은 비판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정당한 판단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 금하는 심판(비판)은 유익하고 지혜로운 선악의 구별이 아니라 이해심이나 동정심없이 상대방을 근거없이 헐뜯는 것을 말하며절대 공의(公義)로 심판권을 행사하시는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교만한 태도를 말한다(로마2,1~3; 야고4,11.12).

그리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형제를 심판하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사실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심판을 받다'에 해당하는 '크리테테'(krithete; you are judged)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 단어에서 동작을 받는 대상은 복수 2인칭 으로서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자들이지만비판을 하는 주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 불공정하게 심판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단죄하시는 분이 바로 공의로우신 하느님이시라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보충설명이며 재강조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심판받고'에 해당하는 '크리테세스테'(krithesesthe; yo u will be judged)의 원형 '크리노'(krino)는 사사로운 단죄나 헐뜯는 것을 가리키지만판결하고 언도하는 사법적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또한 '그 되로 받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메트레테세타이'(metrethesetai; it will be measured)의 원형 '메트레오'(metreo)는 양이나 길이를 재는 것을 가리키는 '메트론'(metron)에서 유래하여 물건 거래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제적 용어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사법적 용어와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이웃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자는 동일한 처우를 받게 될 것을 강조한다.


두 단어가 모두 수동태로 사용되어 상대방을 향한 심판과 되질함이 하느님에 의해 자신에게 되돌려질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마태오 복음 7장 3절은 '형제의 눈 속'과 '네 눈 속', '티와 들보', 그리고 '보면서'와 '깨닫지 못하느냐'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는 기교적인 문장이다.


''에 해당하는 '카르포스'(karphos; mote; speck)는 '시들다'는 뜻을 가진 '카르포'(karpho)에서 유래하여 지푸라기나 왕겨 등을 뜻한다.

그리고 '들보'에 해당하는 '도코스'(dokos; the beam; the plank)는 '받치다', '지탱하다'는 뜻이 있는 '데코마이'(dechomai)에서 유래하여 건물을 받치는 기둥재목 또는 서까래를 뜻한다.


타인의 조그마한 결점을 상징하는 ''와 자신의 큰 허물을 상징하는 '들보'라는 서로 대조되는 단어를 대구시키는 과장법을 통해 교훈이 전달된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의 작은 도덕적 잘못이나 교리적 오류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예리하게 지적하지만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더 큰 잘못즉 마치 들보와 같은 결함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들보와 같은 결함은 자신이 가진 죄악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와 형제에 대하여 사랑이 없는 가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7장 1절과 2절에서는 동사가 복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는 동사가 단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이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 개개인이 바로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심정으로 단수 2인칭을 사용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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