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목요일]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르8,27-33)

2022. 2. 17. 오전 12: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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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17일 목요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르8,27-33)

   

 

1독서<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야고2,1-9)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7)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복음<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마르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야고2,1~9)


"나의 형제 여러분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1~4)


야고보서 2장 2~13절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사람을 외적 조건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되며진심으로 자비심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메 엔 프로소폴렘프시아이스; me en phrosophlempsiais)에서 '차별하다'의 의미로 번역된 '프로소폴렘시아이스'는 '얼굴'(마태6,16), 혹은 '외모'(마태22,16), '용모'(루카9,29)란 뜻의 '프로소폰'(phrosophon)과 '취하다'(마태15,26)라는 뜻의 동사 '람바노'(lamba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사람의 외적인 모습을 보고 그것만을 중시하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본질적인 면을 중시하기보다는 그의 신분이나 직업성별경제적 능력 등 여러 외적 조건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창세1,26~28)로서 존재 자체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나 사회적 신분혹은 지위만을 기준으로 삼아 차별하는 편파적인 태도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야고보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예배에 참석하러 회당에 오거나 법적 소송을 할 때가난한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부자들만 편파적인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성도들간의 그러한 태도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부합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의 구절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힌다바로 그들이 영광스러운 우리 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구속 사업을 이루셨다즉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은 유다인이나 부자나 고위 관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나 가난한 자들이나 소외된 계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를 믿는 자가 사람을 차별해서 되겠는가외적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우해서 되겠는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의 대상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광'은 동격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누리고 계시지만지상에 계실 때는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서 억압받는 가난한 자들을 돌아 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고 취하는 가치관과 결코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2)


여기서 '모임'으로 번역된 '쉬나고겐'(synagogen)의 원형 '쉬나고게'(synagoge)는 '함께', '더불어'란 의미의 전치사 ''(syn)과 '데려오다'(사도25,6), '인도하다'(요한10,16)란 의미의 동사 '아고'(ag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함께 모이는 집회소'란 의미를 가지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회중이 모여서 율법을 읽고 예배드리는 처소인 회당을 가리킨다.


유다인들의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이 회당은 유다인들의 거주지에 생겨나기 시작했으며점차 확산되어 A.D.1C 당시는 유다인 거주지마다 회당을 찾아볼 수 있었다그래서 초대교회 시대 그리스도교의 선교와 예배는 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후에 유다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의 회당 출입을 금하게 됨으로서 그리스도교 선교와 예배는 회당에서 벗어나 각 개인의 가정에서 이루어지게 되었고이것이 '교회'(에클레시아; ekklesia)의 기원이 되었다.


야고보서 2장 2절에서 야고보는 초대교회 모임 안에 두 사람이 들어온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나타나는데권세있는 관리나 유력한 부자가 금가락지를 손에 끼고 화려한 옷을 입고 모임에 들어와 자신들 지위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그러한 면에 사람들이 압도당하기를 바라는 허세를 부린다반면 또 다른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서 더럽고 낡고 남루한(누추한옷을 입었다.


그런데 야고보서 2장 3절에서 야고보는 회당에 들어온 두 사람이 신자인지 아니지를 언급하지 않고모임에 모여있는 성도들이 들어온 자들에게 보인 반응의 차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에서 '여러분이쳐다보고서는'에 해당하는 '에피블렙세테'(ephiblepsete)의 원형은 '에피블레포'(ephiblepho)이다.


이것은 '향하여'란 뜻의 전치사 '에피'(ephi)와 '보다'란 뜻의 동사 '블레포'(blepho)가 합하여져 '유심히 보다','주목해서 보다','관찰하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이 동사의 사용은 오로지 금가락지를 손에 끼고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만 주목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6절에 나타난 당시 유다인의 관습상잔치상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는 랍비들이 차지하였는데이러한 관습이 초대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회중들이 부자들에게는 이런 류의 높은 자리를 권하고반면에 가난한 자에게는 자리는커녕 홀대를 서슴치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3)


지시 부사 '저기'(에케이 ; ekei)는 회당에 모인 자들이 가난한 자가 자신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있기를 원하는 표현이다또한 '발판'(발등상휘포포디온; hypophdion)은 '~아래란 뜻의 전치사 '휘포'(hypo)와 ''(마태4,6)이란 뜻의 명사 '푸스'(phus)의 합성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발 아래 까는 '발판'(footstool)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 아래 앉으라는 것은 자신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발판에 발을 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발판에 앉는다는 것은 굴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야고보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대하는 이러한 대조적 행동을 지적함으로써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태도가 야고보서 2장 1절의 언급처럼 사람의 차별대우임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


비단 이런 태도는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돈과 학벌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 주지만반대로 가진것이 없어 가난하고 무식하고 헐벗은 사람 혹은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어 부자유한 자들에게는 무관심인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 (4)


여기서 '차별하는 것'과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은 의미상 일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생각을 가진'(디알로기스몬; dialogismon)의 원형 '디알로기스모스'(dialogismos)는 '~을 가지고'란 뜻의 전치사 '디아'(dia)와 그 자체로 이미 '계산하다', '심사숙고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로기조마이'(logizomai)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같이 숙고하고 추론하여 얻은 생각'을 의미한다.


즉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이해 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부자와 빈자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 지를 판단해서 다르게 대우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이것은 사악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모든 사람의 영혼은 소중하고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동일하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스스로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행할 태도이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들으십시오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고 그들이 아닙니까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5~7)


야고보서 2장 5~7절에서는 성도들이 가난한 자를 차별하고 멸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로서 하느님 편에서의 가난한 자에 대한 옹호 및 부자에 대한 경계를 권고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5)


'세상의'(토 코스모; to kosmo)로 번역된 뜻은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in the eyes of the world)라는 의미이다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가난한 자들은 틀림없이 초라하고 힘없는 자들이며 세상은 그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다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선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믿음 안에서 부요해지기 위해서는 심령으로 가난해져야 한다는 점이다(마태5,3).

이런 측면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 전혀 없음을 알고전적으로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깨닫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기 쉬우며 또한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는데 보다 좋은 여건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강조하며야고보는 '가난한 자'를 신앙심이 깊은 경건한 자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로 묘사하였다이러한 사람들은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으로 하느님께 구원을 받는다.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6~7)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자에게 치욕적으로 대했음을 표현하고 있다그리고 교회 성도들이 떠받드는 부자들은 실상 그리스도인들을 압제하는 이들이다부자들은 빈번하게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박했다또한 야고보는 채권이나 채무관계에 얽힌 그리스도인들을 부자들이 잔혹하게 법정으로까지 끌어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있다(예레7,6; 아모4,1; 8,4).


여기서 '끌고가는'에 해당하는 '헬쿠신'(helkisin)의 원형 '헬퀴오'(helkio)는 칼을 빼는 것과 같이 '날카롭게 잡아끌다'라는 의미가 있다부자들은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법적인 힘을 빌어서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며 법정으로 끌어내었던 것이다(5,1~3).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부자들을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본 단락에 나오는 부자는 불신자라고 볼 수 있다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교에 대한 약간의 관심을 가지지만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는 자들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8~9)


여기서 '지고한 법'에서 '지고한'(바실리콘; basilikon)의 원형 '바실리코스'(basilikos)는 '왕의', '왕에게 속한'(사도12,20), '고상한', '숭고한'이란 뜻으로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고 한 '율법'(노모스; nomos)이 임금이신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법이며그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법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신적 명령임을 야고보는 분명히 하고 있다이 최고의 법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지칭한다.


그리고 '범법자'에 해당하는 '파라바타이'(pharabatai)의 원형 '파라바테스'(pharabates)는 '~에 대항하여', '~에 거슬러'란 의미의 전치사 '파라'(phara)와 '발걸음'이란 뜻의 명사 '바시스'(basi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정해진 길이 아니라 곁길로 가는 자'란 의미를 지닌다.

율법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소홀히 하는 자에 대하여 율법이 정한 길을 걷지 아니하는 자로 유죄 선언을 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범죄 행위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는 재판할 때 가난한 이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라는 탈출기 23장 6절의 말씀과 잠언 14장 21절의 말씀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짓는 사람이고라는 구절을 염두에 두면서 그들의 행동이 율법에 비추어 범죄임을 강조하고 있다.




  

 

20220217일 목요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르코 복음 전반부가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분의 정체를 알아 가는 여정이었다면

이제 그 종착지에 다다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제자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칭찬은커녕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제자들은 아마도 승리와 영광의 빛으로 둘러싸인 메시아,

곧 놀라운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한 해방을 안겨 줄

그러한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전혀 다른 메시아의 모습을 소개해 주십니다.

그는 강력한 힘을 통하여 정복함으로써구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정복당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무력함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는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가는 여정은 이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후반부는

그분은 어떤 메시아이신가?’를 알아 가는 여정으로 꾸며집니다.

이는 우리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성자이신 분의 호칭으로 사용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 하나의 짧은 신앙 고백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습관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정작 그분이 어떤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는지는 까맣게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영원할 하늘없어질 땅입니다. 


(마르 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와 귀엽고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시고또 죽었던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후에도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육의 치유자로 잘못 알려져죄들의 용서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라 분명하게 고백했는데 왜그리스도인 당신에게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것도 엄중히 말씀하셨을까요?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죄인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신 그리스도 이십니다.(마르10,45)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이십니다.(1요한2,2)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뜻을 위해 이땅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하늘의 의로움진리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요한3,16. 14,6) 그래서 많은 죄인들에게 그 대속의 십자가로 하늘의 생명을 박데 해 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요한1,4)

오늘 죄인들을 위한 그 당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구원의 복음 그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주심입니다그동안 주님께서 하셨던 치유와 기적의 모든일이 용서의 기적 이였음을감추어져 있었던 하늘의 신비 였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골로1, 20.26-27)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그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강조해 알려 주십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직역하면 꾸짖다야단치다.’ 랍니다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던 그의 속셈이 드러남 입니다베드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위해 주님을 따랐습니다.

육의 욕망을 위한 그리스도로 따랐던 것입니다육의 욕망을 위한 그리스도로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뜻을 못했는데 이루지도 못했는데 믿고 따랐던 그 기적의 스승께서 죽으신다 하시니 기가 막혔던 것이지요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감이 들었던 겁니다그래서 순간이성을 잃고 반박으로 예수님을 야단 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모르고아니 오해로 착각하고 따랐던 베드로입니다그 그리스도로는 절대 말하지 말라 엄중히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오해와 착각으로 헛된 신앙을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하십니다. (루가18,8 필리3,18참조)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육을 위한재물명예건강신앙까지사람을 위한 그 일을 하는 것사탄입니다.

 

(루가4,5-6) 5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사탄은 죄인들의 죗값을 위한 십자가를 믿지 못하도록그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내 십자가임을 깨닫지 못하도록그래서 그 십자가의 예수님과 한 몸이 되지 못하도록 그 대속으로 받은 용서하늘의 생명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세상의 영광명예재물에 취하게 합니다하늘의 생명평화 그 복을 주러오셨는데 땅의 목숨평화 그 복을 위해 신앙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생각 그 길을 사람의 생각 그 길과 같다고 유혹합니다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을 인간들의 계명으로 만들어 버리게 합니다하느님의 계명은 용서구원을 위한 대속의 십자나무입니다.(탈출15,25)

그러나 인간들의 계명은 죄의식을 주는 선악의 법입니다그 인간들의 계명은 진리를 저버린 죄입니다.(티도1,14참조)

그 인간들의 계명으로 하늘의 진리를 거스리는 잘못그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세 번 가르치시고(예고그 죽음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기 위해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당신의 대속용서로 우리를 하늘의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사5,8.12) 8 불행하여라빈 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해 가고 밭에 밭을 늘려 가는 자들너희만 이 땅 한가운데에서 살려 하는구나. 12 그들은 비파와 수금손북과 피리 소리와 더불어 술을 마셔 대면서 주님의 업적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주님의 손이 이루신 일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로마8,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오늘 마음이 하늘을 향하게 합시다그러면 지금부터 하늘로하늘의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 아멘 -*^^*-

 

 


연중 제6주간 목요일 복음(마르8,27~33)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33)


마르코 복음 8장 3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고 나온다베드로는 마르코 복음 8장 31절의 주님의 수난 예고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로 믿고 있던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시고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통해 얻을 것으로 고대했던 모든 영광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르코 복음 8장 21절의 '반박하기 시작하였다'에서 '반박하다'에 해당하는 '에피티만'(epitiman; to rebuke)의 원형 '에피티마오'(epitimao)는 '경고하다', '경계하다', '책망하다', '꾸짖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르코 복음 8장 33절에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라고 하시며 엄중히 꾸짖으시는 것을 감안할 때이미 어두움의 세력에 붙잡힌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매우 거칠게 대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서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진 채 예수님을 향한 그릇된 열심과 애정으로 불타고 있는 베드로의 마음을 이용했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 8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막아서는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고 하신다. '사탄아'에 해당하는 '사타나'(satana; satan)은 '적대자'를 뜻하는 '사타나스'(satanas)의 호격이다.

신약 성경의 36회 용례 중에서 34회가 모두 그리스도와 하느님 자체또는 그분의 일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영적 세력인 '사탄'을 일컫는 말로 쓰였고나머지 2회는 여기와 그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23절의 '베드로'에 대해 쓰였다.


베드로도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서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주님의 적대자였다고 할 수 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던 자가 너무나 쉽게 주님의 적대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최종목적인 아버지의 인류 구원 사업을 위해서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거칠게 대드는 사탄의 조정을 받고 있는 베드로의 기운에 조금도 눌리지 않으시고무서울 정도로 단호하고 담대하게 그를 뿌리쳐 버리신다.

그리고 '내게서 물러가라'에 해당하는 '휘파게 오피소 무'(hypage opiso mu; get behind me)에서 '물러가라'로 번역된 '휘파게'(hypage)는 '휘파고'(hypag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너는 지금 당장 내 뒤로 가라'는 뜻이며사탄의 도구가 된 베드로에게 상징적으로 스승이신 예수님 당신을 따라야 하는 제자로서의 본분과 위치를 지키라는 뜻이다.

즉 제자란 예수님 당신을 따르는 존재이지이끄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며제자가 스승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권한이 없음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다.


한편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23절에는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라는 말이 더 첨부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스칸달론 에이 에무'(skandalon ei emu; you are an obstacle to me; you are stumbling block to me)에서 '걸림돌혹은 '넘어지게 하는 자'에 해당하는 희랍어 '스칸달론'(skandalon; an offence)은 '올무', '함정'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모케쉬'(moqesh)와 '걸리다', '거치다', '장애물'이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미크숄' (mikshol)에 대한 70인역(LXX)의 역어로 '길에 놓여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어떤 장애물' (걸림돌혹은 '다른 이를 범죄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의 베드로의 행위가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셔야 할 구원의 길을 방해하는 걸림돌로서 하느님의 뜻을 어기도록 유도하는 범죄의 행위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을 수 없다며 극구 만류하는 베드로의 말과 행위는 예수님의 공생활초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탄의 유혹의 목적과 같이 예수님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는 것이다.

끝으로 '너는 ~생각지 하고'에 해당하는 '프로네이스'(phroneis; you do have in mind)의 원형 '프로네오'(phroneo)는 '마음에 두다', '중히 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단지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바로 이것에 집착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고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일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하느님의 일임을 나타낸다.

또한 이 구절은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현재의 진행중인 동작을 나타내고 있기에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까지도 베드로의 마음이 오로지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낸다.

 




 

2022년 2월 17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운명(運命사랑)이다.

 

복음<(마르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그리스도구원자(救援者), 곧 죄인(짐승)들의 양식으로 오신 영혼의 구원자시다.(루가2,11-12참조죽음의 법인 율법(제사윤리)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구원의 진리시다.(요한1,17) 우리의 생명참 빛이시다)요한1,9) 영원한 생명이시다.(요한17,3 로마8,10)

당신의 피(대속)로 우리를 깨끗하게거룩하게거저 의롭게 하실 분이시다.(로마3,24 히브10,10) 하느님과 함께 평화를 살게 하실 분이시다(로마5,1) 더라운 죄의 우리를 새 것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실 분이시다.(2코린5,17)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실 분이시다.(2코린5,21) 창조이전부터 이미 예비되셨던 구워ᅟᅩᆫ자시다(에페1,4 1베드1,20 히브4,3참조우리의 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랑이시다(에페3,19) 하느님의 지혜지식곧 보물이시다(골로2,3) 우리의 대사제로 오셔서 대속으로 죽으시고 세우신 새 계약이시다.(히브9,11-15)

없음인 우리를 있음의 하늘이 되게하실곧 우리와 혼인하실 우리의 신랑이시다(마태22,2 25.1)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어졌다” 하실 그리스도시다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그 영의 신랑구원자 그리스도를 육의 구원자곧 자신들의 뜻소원을 들어주시는 그리스도로 알았기에 말하지 말라 엄중히 경고하신 것이다.

 

3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새 계약의 구원자(救援者) 그리스도로우리의 죄()로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復活)하신 것이다.(로마4,25)

 

(골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로마7,4) 4 나의 형제 여러분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덕분에 율법과 관련해서는 죽음으로써다른 분 곧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꾸짖기)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반박(反駁했다.- 앞에서 확인 했듯이 베드로는 자신의 소원(所願)을 채워줄 능력의 예수가 필요했지()을 구해주실 그리스도가 필요(必要)했던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을 반박(反駁)한 것이다.

생각(生覺프레시스-애정과 관심), 사탄은 세상의 일사람의 일에 애정(愛情)과 관심(關心)을 갖게 한다곧 하늘의 구원(救援)에는 애정과 관심이 없고 땅의 내 뜻소원을 위한 신앙으로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한다.

()의 구원자(救援者),, 그리스도가 아닌 육()을 위한 예수께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그 능력(能力)의 예수를 열심히 따르도록 가르친다.(마태24,24) 또 선악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착하게 살아야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하게 한다.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을 진리(眞理)라고 거짓된 가르침을 준다그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신 피의 새 계약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받는 용서구원을 믿지 못하게 한다구원의 약속그 하느님의 말씀을 잘라 버리게 한다사탄의 거짓 유혹(誘惑)을 먹은 이들이 자신의 구원자 예수님을 반박(反駁)한다.

 

(1요한4,5)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로마1,3-4.6)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코린3,23. 12,27) 3,23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히브3,5-6) 5 모세는 하느님께서 장차 말씀하시려는 것을 증언하려고, “으로서 그분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었습니다.” 6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집안을 맡은 아드님으로서 충실하신 분이십니다우리가 그분의 집안입니다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확신과 긍지를 굳게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우리의 운명사랑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분을 더욱 애정과 관심으로 함께하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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