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토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 (루카11,27-28)

2020. 10. 10. 오전 5: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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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0일 토요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 (루카11,27-28)


1독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 3,22-29)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2-3.4-5.6-7(8참조)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 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복음<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행복하다.>(루카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제1독서 (갈라3,22-29)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27.29)


'하나되는'에 해당하는 '에이스'(eis)는 기본적으로 '~안으로'(into)란 뜻을 지닌 전치사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속하여'(1코린10,2), '~와 연결하여'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례'는 단순한 외적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유'로 말미암아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서  '자기 육을 그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갈라5,24.25).


이처럼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인격적 관계에 들어간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한 새로운 관계를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13,14)


또한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 인간을 입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페4,23.24)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29)


'그리스도께 속한다면'(그리스도께 속한 자)에 해당하는 '크리스투'(christu)는 '크리스토스'(christos)의 소유격으로서 문자적으로는 '그리스도의'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것'이란 뜻이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이며, 인종이나 신분이나 지위나 성별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 곧 그의 진정한 영적 후손이 된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된다.


본문에서 '상속자입니다'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모이'(kleronomoi)는  '상속자'를 뜻하는 '클레로노모스'(kleronomos)의 복수형으로 갈라티아서 3장 18절의 '상속 재산'(유업)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미아'(kleronomia)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따라서 '상속자'(유업을 이을 자)란 말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에 참여할 자'란 의미를 갖는다.


갈라티아서 3장 12절부터 계속 되어온 모든 진술들을 통하여 사도 바오로는 율법과 믿음의 차이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모세 율법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진정한 영적 후손으로 만들지 못한다. 또한 우리를 그 상속자로 만들지도 못한다.


이것을 이루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약속뿐이다. 그것은 믿음이요,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세례이며, 결코 율법이 아니다.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1,27~28)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27.28)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의 베엘제불 논쟁을 마치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축복하였다.


그녀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축복한 이유는 그 어머니를 축복함으로써 그 자식을 축복하고 찬양하는 유대 관습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예는 예수님을 수태한 마리아를 축복한 엘리사벳의 찬양에도 나타난다(루카1,42.43).


또한 이 여자의 외침은 당시 예수님을 적대하던 일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능력의 말씀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그때 모인 군중들 대부분의 감정을 대표해서 나타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배었던'으로 번역된 '바스타사사'(bastasasa; bare)는 '옮기다'를 의미하는 '바스타조'(bastazo)의 부정 과거 분사이다.


여기서는 '태어나게 했던'(that bare; gave you birth)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등장하고 있는 한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을 낳은 어머니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으며, 이것은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라고 노래한 마리아의 찬양(루카1,48)이 직접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11장 27절의 한 여자의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11장 28절에서 참된 행복의 조건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음을 밝혀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는 '듣다'를 뜻하는 원형 '아쿠오'(akuo)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단순하게 듣는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몰두하여 듣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지키는'에 해당하는 '퓔랏손테스'(phylassontes; keep it; obey it)는 '지키다', '보호하다'를 뜻하는 '퓔랏소'(phylasso)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참된 행복이라는 것은 육적 혈통이나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루카 복음 11장 28절에 나오는 '오히려'에 해당하는 '메눈'(menun; rather)이라는 단어는 그 여자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의 이야기 즉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참된 행복의 조건이 오히려 영적인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 자신이 결국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단지 예수님을 낳고 양육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켰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타당한 진실인 것이다



20201010[연중 제27주간 토요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

(루카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젖과 말씀이 대조를 이룬다. 젖을 낸 가슴보다 말씀을 가슴(마음)안에 지킨, 간직한 그가 복()이라는 것이다.

 

(1코린3,1-2)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을 영적인 말씀으로, 곧 하느님의 뜻으로 받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인간의 뜻으로 받는 그 적인 사람, 그는 진리와 비 진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어제 묵상 했듯 육적, 그 인간의 뜻을 위한 가르침이 더 멋져 보이고 진짜 같아 보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말씀을 공부하는 신자(마리아)보다 바쁘게 활동하여 예수님을 시중드는 그(마르타)가 사람의 눈에는 더 진짜 같아 보인다.

 

(히브5,12-13) 12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 그래서 어미()의 젖을 떼야 하는, 곧 그 젖을 떼는 것이 잔치를 할 만큼 기쁜일 인 것이다.

 

(창세21,8)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시편131,1-2) 1 <다윗의 노래>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저는 거창한 것을 따라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 2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저에게 제 영혼은 젖 뗀 아기 같습니다.

= 육의 그 욕망의 자리를 버리고(떼고), 오롯이 하느님 아버지만을 의지하게 되어 아버지로 얻는 마음의 평온, , 안식을 고백하는 것이다. 제사, 기도, 활동 등 나에게서 나가는 나의 종교행위를 의지한다면 육의 젖을 먹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구원의 진리, 그 약속의 말씀으로 내 안에 있다면~하늘의 용서로 하늘의 자유, 평화, 그 복을 누리는 영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젖은 기름을 뜻하기도 하고, 그 기름은 성령을 뜻한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스이는 젖의 단어가 가나안이다.

 

(레위20,24) 24 너희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할 것이다. 내가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겠다.나는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려낸 주 너희 하느님이다.

=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말씀)을 젖과 꿀로 주신다. 곧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삶은, 젖의 축복의 삶이 되는 것이고, 꿀 같이 내 입맛에 맞는 곧 내 열심, 내 의로움이 진짜 같고, 맞는 것 같아 그 자기의 뜻()을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렇듯 말씀을 축복과 저주로 주셨다.(신명11,26~참조) 그러니까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뜻(지혜)으로 읽으면 제사와 윤리, 그 법이 되어 죄(저주)의 심판을 줄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읽으면 죄의 덮으심, 대속,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 용서와 구원(축복)의 판결을 받는 것이다.

 

(야고2,12) 12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 제사와 윤리, 그 육의 젖을 먹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십자가)의 법을 말하고, 그 자유의 법을 의지하고 누리는 삶을 사는 그 실천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실행인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약속), 그분의 마음, 그 사랑이 흘러나와 이웃에게 전해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아멘!!!

~♡ ♡ ♡~

원죄없이 잉태된, 의 자리, 그리고 천주의 모친이신 그 의 자리에 성모님이 아닌, 쓴물(마리아)이 십자나무의 대속을 진리로 받아 마음에 지킨, 그래서 단물(은총)이 되신 성모님!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당신을 사랑합니다. 천주의 성령님 그 마리아처럼 되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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