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7-62)

2020. 9. 30. 오전 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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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30일 수요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7-62)

1독서<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욥기9,1-12.14-16)

1 욥이 친구들의 말을 받았다.

2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 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3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4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을 옮기시고 분노하시어 그것들을 뒤엎으시는 분.

6 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7 해에게 솟지 말라 명령하시고 별들을 봉해 버리시는 분.

8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

9 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신 분.

10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11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12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14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15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

16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


화답송 시편 88(87),10ㄴㄷ-11.12-13.14-15(3참조)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온종일 당신께 부르짖으며, 당신 향해 저의 두 팔을 쳐드나이다. 죽은 이들에게 당신이 기적을 이루시리이까? 그림자들이 일어나 당신을 찬송하리이까?

무덤 속에서 누가 당신 자애를, 멸망의 나라에서 당신 진실을 이야기하리이까? 어둠 속에서 누가 당신 기적을, 망각의 나라에서 당신 의로움을 알리리이까?

주님, 저는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아침에 드리는 저의 기도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주님, 어찌하여 제 영혼을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나이까?


복음<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62)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제1독서(욥기9,1-12.14-16)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뵙지 못하네." (11)


앞선 5-10절은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우주적 주권과 위엄에 대한 욥의 고백이었다. 이제 11-14절에서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스런 재난과 관련해,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그분의 역사하심에 전혀 깨달을 수 없는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서술한다.


새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은 이 새로운 단락을 '보라' 란 뜻을 가진 감탄사 ''(hen)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hen)은 앞으로 말할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대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런데 ''(hen)은 문맥에 따라 '만일'(if)이란 조건 접속사로서의 역할도 한다.(욥기40,23 ; 이사54,15 ; 예레3,1 ; 다니2,5.6 ; 3,15.18)


본문의 ''은 이 두가지의 의미를 다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감안하면, 먼저 본절은 자신 앞에서 절대자이신 하느님이 무언가를 행하시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 '그분께서 지나가셔도', '지나치셔도' 란 표현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루어진 모든 비극적인 일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즉 자신에게 이루어진 이 모든 재난의 원인이 하느님께 있으며, 거기에 특별한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나타내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만일' 의 의미도 포함된다. 즉 만일 하느님께서 자신의 앞을 지나가시며 지나치신다 해도, 자신은 그것을 감지할 수 없으며, 더 구체적으로 지금 자신에게 이루어진 모든 일에 대해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답답한 탄식의 말을 내뱉는 것이다.

이것은 본절에서 '나는 알아채지' 에 해당하는 '아빈'(abin)이 지닌 의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단어의 원형인 ''(bin)'이해하다', '지각하다', '식별하다' 란 뜻을 지니며, '이해로 이끄는 분별력' 의 개념을 포함한다.


그래서 이 동사는 단순한 자료 수집을 넘어선 종합적이고 체계화된 '지식'(knowledge)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성경에서 대개 '알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동사는 '야다으'(yadah)인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bin)은 이때 얻은 지식의 진위를 기리는 판단 능력과 예민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서 욥이 ''(bin)을 사용한 것은 그가 하느님의 자기 현현 곧 그분의 계시를 감지할 만한 판단 능력이 부족함을 고백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본문에서 욥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오셔서 그가 당한 고난에 대한 비밀을 계시하려고 하실지라도, 자신에게는 그 계시를 받아 이해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욥이 하느님의 현현을 말하며, 그 계시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이 왜 이같은 극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음을 한탄하는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친구들 역시 욥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당시 욥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재산의 상실이나 육체적 고통, 더 나아가 친구들의 몰이해가 아니었다.


사실 욥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욥은 설혹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찾아오신다고 하더라도 깨달을 수 조차 없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에게 이러한 재난을 내리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모르는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친구들 앞에 호소하며, 그들이 자신을 섣불리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합당치 못함을 증거하고 있다.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복음(루카9,57-62)


유랑의 영성~~^*^ zucchero123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곳 저곳 피정 강론을 다니다 보면, 항상 머무는 곳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카페 관리때문에 꼭 와이파이가 있어야 하고, 비교적 말이 안나가고 성직자, 수도자를 잘 이해하는 집안에서 머물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는 교우집에 머물러도 대개 3일이 지나면 그 댁에 부담을 주는 느낌이 든다.

제일 속 편한 곳이 호텔인데, 숙박료도 먹는 것도 만만치 않다. 물론 적재적소에 주님께서 다 마련해 주시지만, 어서 피정집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서울 하늘 아래 우후 죽순으로 솟은 빌딩들과 건물들을 보면서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9,58)는 말씀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주님 구원 사업의 협력자이기에 예수님처럼 유랑의 영성, 유목민의 영성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가나안처럼 농경 사회는 정착의 생활이니 자신의 소유지와 타인의 것 사이에 금을 긋고 한군데서 살지만, 광야와 사막에서 유랑의 영성을 살아야 하는 유목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집이 없지만, 공동이 함께 사용하는 공원들을 기도하며 산책할 때에는 유랑의 영성가들에 주어지는 최고의 자유함과 평화를 만끽한다.


어린 시절 8남매 집안에서 내 방이 없어 대청마루 한켠에 책상을 놓고 공부하던 나는 우리 집 앞의 2층집을 부러워하며 늘 도화지에 그렸다.

   그런데 수도 사제가 되어 수도원 복도를 거닐며 기도하면서 '이 좁은 한국 땅에서 나처럼 이렇게 큰 집과 넓은 공간을 확보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 방이 수도원 2층에 화장실이 딸린 방임을 깨닫고 어린 시절의 그 꿈이 이루어졌음을 알고는 깜짝 놀랬던 기억이 난다.


개인 소유가 없는 청빈과 가난의 삶을 지향해야 하는 수도자들은 늘 유목민처럼 자연 친화적일 수 밖에 없고, 집착에서 벗어나 있으며, 하루 하루를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에 맡길 수밖에 없다.

늘 움켜잡고 있는 것이 없는 빈 손이고 주님께 빌어야 하므로 기도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물리적이고 장소적이며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있는 당신과의 영적인 관계, 영과 진리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요한4,23~24)를 원하시기에 '광야와 사막의 영성', '유목민의 영성', '유랑의 영성'은 수도자들에겐 필수다.



 

2020930[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9,57-62)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곧 죄인들의 죗값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확실한 진리의 길이다,

그러나 오를 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모르고 따르겠단다. 그저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라 생각한 것이다. 신앙의 목적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의 진리임을 모르는 신앙생활을 한다.


(1베드1,9)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모르면서 성당에 다닌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를 모르고 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구원, 하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모르고, 그러니 자기 열심, 자기 의로움으로 복을 얻기 위해 열심을 부린다.


58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 가난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그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로 구원의 진리로 믿는이가 없다는 것이다.


(콜로1,18)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코린6,15)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신앙의 올바른 목적지부터 찾으라하신다. 헛된 신앙생활를 버리라하시는 것이다.

과녁을 벗어나다- 하마트리아-()


59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 앞절, 그 신앙의 목적지, 과녁을 벗어난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59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외면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를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그 죽은 이, 곧 죄인을 살리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신앙을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의 생명(진리)을 갖지 못한 사람을 어둠()으로 죽었다고 한다.(갈라3,22참조) 그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이다.


(마태4,23)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모두 용서로 살려 주셨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복음,

(이사53,4-5) 4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루가4,18-19.21)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61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쟁기에 손을 댄 사람~


(집회38,25) 25 쟁기를 다루면서 막대기 휘두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황소를 몰면서 *자기 일에 몰두하며 송아지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겠느냐?

= 자기일,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 곧 제사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황소, 송아지는 제물) 하늘의 구원의 지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제사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는 자,

(창세19,17.26) 17 그들(천사)(화려한 삶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신앙을~ *그 헛된 죽음의 신앙을~ 그리고 *세상이 주는 편안의 삶을 돌아보면 재앙이다. 곧 하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길, 그 생명의 말씀() 신앙에서, 제사 그 피의 신앙으로 돌아가면 재앙이다. 그것이 물이 피로 변한 곧, 생명이 죽음이 된 이집트의 첫째 재앙이다.(탈출7,14~)


(갈라3,3)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생명)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죽음)으로 마칠 셈입니까?

= 그 죽음의 문화, 죽음의 신앙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돌아보면 인된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죽으셨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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