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8,1-3)

2020. 9. 18. 오전 6: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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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8일 금요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8,1-3)

 

1독서<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1코린15,12-20)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5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거슬러 증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7(16),1.6-7.815(15참조)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주님, 의로운 사연을 들어 주소서.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놀라우신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소서.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복음<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1-3)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제1독서 (1코린15,12-20)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19-20)


우리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세를 믿지 않는 것이며 현세만을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해 산다면, 희망이라는 것도 현세에서 끝나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일도 현세에서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현세의 여러 가지 즐거움과 쾌락을 포기하고, 죄와 죄의 기회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는 성도들은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시험하는 기간인 현세에서 절제와 포기와 극기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의 희망이 내세에 있고, 내세에서의 부활과 상급,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에 부활이 없다면, 그런 희망들은 모두 거짓 희망이 되고 만다.


우리는 현제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종말론적인 심판과 구원, 상급에 대해 말씀하셨지, 현세에서의 불행이나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도 약속하신 적도 없으시다. 다만 당신을 추종하는 제자들의 현세적 삶을 보장해 준다는 말씀은 하셨다.


따라서 내세를 믿지 않고 현세에서의 행복만을 바라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복음(루카8,1~3)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2~3)


루카 복음사가는 '여인들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여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당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은 시대였기에 여인과 관계된 일은 언급을 회피하였고, 굳이 언급할 때는 익명으로 처리하였다.


하지만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통례를 따르지 않고, '몇몇 여자'('귀나이케스 티네스'; gynaikes tines)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하이'(hai)라는 관계 대명사를 사용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은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를 비롯해서 많은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안나'에 대해서는 그들의 신상이 비교적 더 소개되어 있다.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 6장 14~16절에서 제자들을 소개할 때 사용한 표현방식과 다르다.

제자들을 소개할 때 단지 이름만을 나열했던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을 섬기던 여자들을 소개할 때는 이름 뿐만 아니라 내력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활동이 당시 부와 권력, 또는 성(性)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루카 복음사가의 의도 때문이다.


한편, 루카 복음 8장 2절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막달레나'(magdalene)라고도 불리웠는데, 이것은 '막달라 출신의 여자'라는 뜻이다.

'막달라'(magdala)는  갈릴래아 호수 서편, 티베리아 북쪽 약 4.8km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하느님의 탑'(the tower of god)이라는 뜻이다.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는 일곱 마귀가 들려 오랫동안 고생하던 중에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고 예수님께 헌신한 인물이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어 무덤에 묻히실 때에도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마르15,47),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무덤까지 갔으며(마르16,1), 성경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먼저 목격한 영광스러운 증인으로 묘사한다(마르16,9).


주님께로부터 치유받은 은혜가 막달라 마리아의 가슴 속에 얼마나 크게 자리하였으면, 일생 동안의 삶을 통해 그토록 일관되게 헌신할수 있었겠는가?

막달라 마리아는 한 번 치유받은 감동과 감사를 잊지 않고, 남은 여생 전부를 자신을 온전한 인간으로 회복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이제 루카 복음 8장 3절에는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가 소개된다.

'집사' 또는 '청지기'에 해당하는 '에피트로푸'(epitropu)의 원형 '에피트로포스'(epitropos)는 '돌보다' 또는 '위탁하다'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 '에피트레포'(epitrepo)에서 유래하며 '어떤 것을 돌보도록 위탁받거나 그러한 영예를 얻은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단어가 관직 이름으로 쓰였으며, 헤로데 임금의 '행정 장관' 정도의 높은 직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고관의 아내 요안나는 8장 2절에 소개된 일곱 마귀들린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신분적으로 현격하게 구분된다.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특별히 이 두 여자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대표적으로 헌신한 여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 이면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데는 지위 고하, 신분의 귀천이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함께 협력하게 됨을 강조하려는 루카 복음사가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시중을 들었다'


희랍어에는 '시중들다', '섬기다' 또는 '봉사하다'는 뜻을 지니는 다양한 단어가 있다.

'노예(종)로서의 맹목적 섬김'을 뜻하는 '둘류오'(duleuo), '자상하게 봉사함'을 뜻하는 '테라퓨오'(therapeuo)'급료를 벌기 위해 봉사함'을 의미하는 '라트류오'(latreuo), '공무에 봉사함'을 의미하는 '레이투르게오'(leiturgeo)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디아코네오'(diakoneo)는 특별히 '자원하여 봉사한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나타나는 '데이코눈'(diekonun) '디아코네오'(diakoneo)의 미완료 형태로서, 여자들의 섬김은 자원하는 마음에 우러나온 희생적 봉사였으며,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고대 순회 설교자들은 부유한 여자들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그러나 원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신의 소유 중 일부를 떼어 아무런 대가없이 자원하여 지속적으로 섬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자기 과시적으로 기분에 따라 일시적으로 재정적 도움을 준 일반적 경우들과 차원이 다르다.


복음의 여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재산은 자신의 배만 채우는것도,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는 수단도 아니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매우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었다.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은 복음 선교에 전념하시느라 생계 수단을 갖지 못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의해 구원받고 은혜받은 사람들의 재정적인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도 로마서 15장 2절에서 영적 은혜를 나누어 받은 자들은 그것을 나누어 준 성도들에게 물질적인 것으로 돌볼 의무가 있다고 말하며, 갈라티아서 6장 6절에는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2020918[연중 제24주간 금요일]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1코린15,12-20)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3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다는 것, 예수님은 우리의 죗값으로 죽으셨으니~~~

 

14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5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로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셨다고 우리가 하느님을 거슬러 증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 복음을 믿어- 용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 받는 일이 없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 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을 위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 곧 죄인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죗값으로 죽으러 오셨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분의 부활 역시 믿지 못하게 된다.

성경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받아 열심히 지키는 신앙을 살던 때~ 부활미사에서 부활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았을 때 기뻐하는 척 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그 믿음 없음을 감추기 위해 했던 것이다.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신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정작 나는 그 죄에서의 자유를 모르는 삶으로, 오히려 그 신앙이 무거운 짐이되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듯인 그분의 규정과 법규 계명, 곧 십자가의 복음 그 구원의 계약이 아닌 사람의 규정과 교리인 사람의 말, 그 인간의 계명으로 행위의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다.

 

(로마6,3-5) 3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4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5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저주가 되시어 저주의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로 죽으신 것(신명21,22), 그 예수님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높고 넓고 큰지를 몰랐기에 죄의식에 시달리는 신앙을 살았던 것이다.

 

(1요한3,19-20) 19 우리는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예수님의 십자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20 우리가 양심을 가책을 받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10,22) 22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서 나쁜 마음씨가 없어지고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씻겨 깨끗해졌으니 이제는 확고한 믿음과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00주년성서) 20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셨으니, 잠든 이들의 맏물이십니다.

= 우리의 맏물(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그 바른 양심을 찾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1베드3,21) 21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그 예수님으로 오늘 복음 (루가18,1~)의 열두제자와 함께 마리아(쓴물)가 요안나(은혜를 갚다), 그리고 수산나(경건하다)가 예수님을 따르는데 이는 열두제자들의 참모습이기도 한 것이다.(열둘- 교회의 완성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죽음)가 내 십자가(죽음) 였음을 깨닫게 될 때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구원의 힘이며 기쁨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 베풀어 주신 은총,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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